가본 곳

사람이 살고 있어 더 좋은 낙안읍성

김훤주 2010. 3. 2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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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사람이 안 살면 이런 풍경은 없다

낙안읍성에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놀러 또는 쉬러 오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복원한 마을이기는 하지만, 거기 집집마다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3월 12일 낙안읍성을 찾았을 때는, 지금과 달리 매화랑 산수유가 조금만 피어 있었고 바람도 꽤나 쌀쌀했지만, 곳곳에서 사람이 사는 냄새와 색깔이 느껴졌습니다. 사람 사는 마을이라는 데에 낙안읍성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저는 두 가지가 좀 걸리기는 했습니다. 하나는 동네에서 지주 노릇을 한 으리으리한 집이 없다는 점입니다. 아시겠지만 어지간한 시골 마을은 땅 가진 지주와 그 땅을 부쳐먹는 소작인들로 짜입니다.

물론 자기 땅 자기가 부쳐먹는 자작농도 많이 섞여 있습지요. 그런데 낙안읍성에는 그런 지주집이 없었습니다. '낙안읍성의 농토 대부분은 낙안에 있지 않고 순천이나 광주 같은 데 있는 부재 지주 소유였겠구나' 생각할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마름' 노릇을 하던 사람의 집이라도 있어야 할텐데, 제가 눈이 어두워서인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시는대로, 마름은 지주를 대신해 소작료를 매기고 거둬들이는 구실을 합니다. 어떤 때는 지주보다 더 악질이었습니다.

양반집이 아니라 관아입니다. 멀리 산이 멋집니다. 전라도 산은 부드럽기만 하리라는 선입견이 여기서 깨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초가집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입니다. 지리산 의신마을에 가면 옛날 숯을 굽던 사람이 살았던 집이 있습니다. 거기서 식구 아홉이 한 방에서 잠을 잤다는데 그야말로 코딱지만합니다. 세 칸짜리 초가인데 끝에서 끝까지 열 걸음도 채 되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데에 견주면 여기 초가는 아주 크고 또 화려합니다. 물론 전시용이 아니라 주거용이기 때문에 옛날 방식 그대로 복원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사람에 따라서는 옛날 같지 않고 크고 화려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초가지만 집들이 크고 반듯합니다. 저는 초가가 'ㄱ'자 모양을 한 것은 여기서 말고는 함양 안의 허삼둘 가옥만이 그랬습니다.

읍성 안팎에 집이 있습니다. 집이 다들 비슷합니다. 겹겹이 에워싼 산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앞에서 든 이 둘만 뺀다면, 낙안읍성은 아주 좋았습니다. 낙안읍성이 아주 좋은 까닭은 기본이 바로 '사람이 살고 있었네'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을씨년스러웠을 것입니다.

관광객용 시설물.

관광객용 시설물 앞에 놓인 관광객용 안내판.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지금 이 낙안읍성에서 볼 수 있는 풍경 가운데 중요한 대목은 사라질 것이고 어떤 대목은 아무 의미도 띠지 못할 것입니다.

소나 말 개 따위는 사람이 살지 않으면 있지도 않을 것이고 저기 감나무나 꽃나무나 탱자나무 따위도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입니다. 대나무도 아무 갈무리를 받지 못했을 것이 붙명합니다.

사람이 안 살면 이런 풍경도 있지 않겠지요.


낙안읍성의 팔자 늘어진 개.


여기저기 널려 있는 텃밭에서 자라는 나물들도 아마 없어졌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기 살면서 씨를 뿌리고 가꾸고 솎아주지 않았다면 저기 저렇게 초록으로 곱게 빛을 뿜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쯤 낙안읍성에 가면 제가 스무 날 즈음 전에 갔을 때보다 훨씬 따뜻하고 훨씬 더 초록으로 빛나는 풍경들을 훨씬 더 질리도록 눈에 담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12일에는 이런 매화만 사람을 맞았습니다. 지금은 많이 다르겠지요.

골목 안쪽에 산수유가 노랗게 꽃을 피웠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또다른 증거.


경남에서 자동차를 몰고 가자면,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줄곧 달리다가 순천 나들목에서 빠져 나와 길거리에 서 있는 표지판대로 움직이면 됩니다. '한글만 제대로 알면' 누구나 손쉽게 갈 수 있습니다. 하하.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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