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동의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해 낙심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김주완입니다. 뭐 기분이야 좋을 리 없지요. 하지만 낙심은커녕 별로 서운한 마음도 들지 않으니 어찌된 일일까요?
아마도 그건 애초부터 제가 편집국장 자리를 원한 것도 아니었고, 이후 마음을 바꿔 사장의 지명을 받을 때부터 이미 결심한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장은 "당신 스스로 책에서도 썼듯이,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중간에라도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저는 그 때 이미 부결되는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부결되면 깨끗하게 떠난다.'
28대 30, 참 절묘한 결과입니다. 우리 조직의 현 상황을 이처럼 잘 나타내주는 숫자가 있을까요? 제가 지명을 받은 후 우리 구성원들에게 들은 가장 많은 이야기는 '너무 급격한 변화에 대한 우려'였습니다.
심지어 제가 급진 좌파여서 편집국장은 안 된다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청문회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나와 답변은 했지만, 정작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아예 청문회에 참석도 않았더군요. 아울러 사장이 그동안 추진해온 '변화'에도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하는 이가 적지 않더군요.
1999년 1월 경남도민주주신문 창간추진위원회 창립대회.
그 과정에서 저는 이번 국장투표야말로 우리조직의 보수성(保守性)이 어느 정도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가장 극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 직감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수성이란 정치적인 진보-보수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변화하기는 죽기보다 싫고, 그러면서도 더 많은 월급은 받고 싶고, 기자로서 어디 가서 폼도 잡고 싶고, 기존에 누리던 익숙함과 편안함도 절대 포기하기 싫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물론 20대 80이라는 법칙도 있듯이 그런 사람들은 도민일보뿐 아니라 다른 어느 조직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조직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거나 '주도'할 정도라면 그 조직은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몇 년 전부터 말해왔듯이 종이신문, 특히 지역신문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그대로 하면 100% 죽습니다. 지금도 이미 근근이 '연명'하는 수준입니다. 서서히 죽어가고 있지만, 그걸 자각하는 사람은 적고 월급만 많이 받고 싶은 사람은 늘어만 갑니다. 자각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누군가 몇 십 억 들고 와서 구원해주기만을 바라는 이들이 도민일보 내에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해 새 사장 선임과정에서 얼치기 토호들의 이름이 거명될 때 이 조직을 떠나기로 결심한 바 있습니다. 그들 중 누가 되더라도 떠날 생각이었고, 그 이야기를 몇몇 동료들에게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의외의 인물이 우리 사장으로 왔고, 그가 바로 한겨레 출신 서형수 사장이었습니다. 제가 볼 땐 서형수 사장이야말로 경남도민일보를 살리고 지역신문의 미래를 열어줄 구세주였습니다.
그가 우리 사장으로 결정되던 날, 저는 떠나겠다던 결심을 접었습니다. 뉴미디어분야에서 다시 열정을 불태워보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회사의 좀비들은 끊임없이 서 사장의 개혁에 저항했고, 급기야 노동조합을 뒤흔드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편집국장으로 지명됐고, 사장은 혁신과 소통을 요구했습니다.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어차피 자리에 대한 욕심과 미련이 없는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부결되면 깨끗이 떠난다'고 다짐했고, 우리 조직원들은 그런 저를 자유롭게 해주신 겁니다.
저는 떠나지만 변화의 중심에 설 분들은 또 있습니다. 주제넘지만 한 말씀 드리자면, 서형수 사장은 다음 편집국장 지명에서 김주완보다 더 파괴적으로 연공서열을 깨지 않으면, 마지막 남은 변화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걸 통해 더 확실한, 더 근본적인 개혁의 칼을 빼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형수 사장은 절대 사임하시면 안 됩니다. 후배들은 서 사장을 끝까지 잡아야 합니다. 그것만이 도민일보가 살 길입니다.
부결 이후 사내 게시판은 격렬한 논쟁의 장이 되었습니다. 이제 변화와 개혁의 대상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저를 계기로 묵은 종기가 드러났다고 생각하니 흐뭇하기도 합니다.
떠나면서 가장 미안한 사람들은 (이 말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많겠지만) 개혁신문 도민일보에 기꺼이 살점을 떼준 6300여 명의 주주들입니다. 특히 저를 통해 피같은 돈을 내놓은 500여 명의 주주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빕니다. 이 글은 그런 주주님들께 드리는 경과보고이자 사과문이기도 합니다.
이제 바깥에서 경남도민일보의 개혁을 지켜보며 응원하겠습니다. 경남도민일보는 반드시 살아야 할 신문이지만, 사내 좀비와 토호들에게 헌납할 신문은 절대 아닙니다.
2010년 2월 19일 김주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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