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밥상이 세상을 바꾼다는 색다른 주장

김훤주 2009. 12. 2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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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밥상은 힘이 세다? 

날마다 마주하는 밥상, 집집마다 자리잡고 있는 밥상, 밥상은 아무런 힘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도 밥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고 합니다. 참 어렵게 여기실 수도 있지만 사실은 조금만 생각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밥상에 미국산 쇠고기가 올랐다 칩시다. 그러면 미국 거대 축산기업이 살고, 거기 납품하는 미국 업체들이 살고, 미국에서 여기까지 실어오는 운송업체가 살고, 실어오는 도중에 변질되지 말라고 방부제 따위를 만들고 뿌리는 업체가 살고, 우리나라 수입업체가 살게 되겠지요.

대신 국산 쇠고기를 밥상에 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우리나라 축산업체가 살고, 우리나라 운송업체가 살고, 사료나 약품을 만들거나 수입하는 업체가 살게 됩니다. 미국 사료가 많이 들어오니까 미국 그 업체도 당연히 살겠지요.

쇠고기 대신 야채 따위를 올려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농약 치는 관행 농업 대신 유기농으로 기른 야채를 밥상에 올리면 또 그에 걸맞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나아가 자기 사는 지역에서 나는 야채를 올려도 같은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밥상 혁명>은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의 두 기자 강양구·강이현이 2006~2008년 세 해 동안 세계 여러 나라(미국·영국·인도·일본·프랑스·캐나다 따위)를 돌아다니며 '먹을거리를 둘러싼 현실'을 바꿔 보려고 애쓰는 이들을 만난 보람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둘이서 찾은 답은 해결책은 '지역 먹을거리(local food)'와 '식량 주권(food soveregnty)' 두 가지였다고 합니다.

2. 지역 먹을거리를 먹으면 

"먹을거리가 원거리를 이동하면 낭비되는 에너지는 심각하다.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상추가 8772km를 이동해 런던으로 보내진다면, 상추는 자신이 제공하는 에너지보다 127배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먹을거리를 비행기로 운반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낭비되는 에너지도 많아졌다. 대부분이 물인 채소·과일·화훼는 원거리 이동이 가장 잦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조앤 구소 교수는 '물을 운반하기 위해 석유를 태우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지역 먹을거리를 먹으면 이런 에너지 낭비가 없어집니다. 변질을 막는 방부제라든지 별도 처리도 쓸모가 없어집니다. 게다가, 지역 먹을거리는 대부분 제철 먹을거리여서 몸과 마음에 더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3. 식량 주권과 식량 안보의 차이 

"식량 안보는 식량 확보에 초점을 맞춘다. 자급이든 수입이든 먹을거리만 공급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한국 정부가 멀쩡한 논밭을 없애면서 '외국에 식량기지를 건설하자'고 얘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90년대 쿠바로 눈을 돌려보자. 당시 쿠바는 설탕을 소련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 수출하고 석유·식량의 대부분을 수입해 썼다. 1989년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가 잇따라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쿠바는 위기에 직면했다. 식량·비료·농약 수입이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석유가 없어서 트랙터 같은 농기계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쿠바의 농업 생산은 계속 떨어졌다.


심각한 고갈 사태는 도시에서 발생했다. 시골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인구 70%가량이 모여 사는 도시로 옮길 방법이 없었다. 농산물의 저장·운반을 다 석유에 의존해 왔으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결국 농촌에서는 생산한 농산물이 썩고, 아바나 같은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굶주리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식량 안보는 농업을 포기하게 만들지만 식량 주권은 나라 나아가 지역을 퐁성하게 만듭니다. 뉴시스 사진.


반면 식량 주권은 지역 먹을거리가 기반입니다. 단순히 '확보'에만 관심을 두는 식량 안보와는 크게 다르답니다. 식량 안보 관점으로 일을 하면, 1990년대 쿠바에서 보듯이 '확보'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겠지요. 이런 식량 주권은 "건강·지역·문화·환경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 됩니다.

"식량 주권의 문제 의식은, 내가 발 딛고 선 땅에서 직접 먹을거리를 생산하자, 내가 먹는 먹을거리의 질을 스스로 통제하자는 것이다."


4. 소농이 소중한 까닭 

농업이 대형화·공업화되면, 당연히, 지역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먹기가 쉽지 않아집니다. 농업이 대형화·공업화되면, 당연히, 먹을거리가 안전한지 어떤지 알기도 어려워집니다. 농업이 대형화·공업화되면, 당연히, 생산과 유통에서 독점이 이뤄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독점이 이뤄지면 가격 등에 대한 대중의 통제는 어려워질 것이 뻔합니다.

소농이 만든 지역 먹을거리는 지역을 살리는 지렛대입니다. 뉴시스 사진.


소농은 지역 먹을거리를 담보하는 주체입니다. 소농은 뿌리뽑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소농은 목적이 이윤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생산이 꾸준히 이뤄질 뿐더러 먹을거리가 수출 따위로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일도 드뭅니다.

그래서 소농은 지역 먹을거리를 담보하는 주체인 동시에 식량 주권을 담보하는 주체이기도 하답니다.
 

그러나, 소농이 살아나면 농업만 바뀌고 지역 먹을거리만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살아납니다.

소농이 살아나면 대형화·공업화된 농업을 통해 서울이나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돈이 지역에서 돌게 됩니다. 소농이 살아나면 그 자체로서 실업이 줄 수밖에 없습니다. 소농이 살고 실업이 줄면 당연히 빈곤이 끝장납니다. 실업이 줄고 빈곤이 끝장나면 지역 경제와 문화도 살아납니다. 그러니까 밥상의 힘이 이토록 세다는 것입니다.

이제 세상을 바꾸는 데는 총칼이 쓸모가 없어졌다고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들판에서 총 대신 보습을 들고' 지역 먹을거리를 만드는 이들이, 그리고 '장터에서 칼 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지역 먹을거리를 사 먹는 지역민들이, 세상을 바꿉니다.

이처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밥상 혁명'의 실체가 담겨 있는 책이 바로 <밥상 혁명>이랍니다. 물론 이미 이렇게 살고 있는 이를 제가 여럿 알기는 합니다만, 그렇게 사는 것의 힘을 알리는 데는 이 책이 적격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하하.

살림터. 296쪽. 1만3800원.

김훤주
밥상 혁명 - 10점
강양구, 강이현 지음/살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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