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지율스님이 봉쇄수녀원을 찾아온 까닭

김훤주 2009. 12. 25.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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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1) : 낙동강과 천성산과 수정만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 관통 반대를 위해 다섯 차례에 걸쳐 300일 넘게 청와대 등에서 단식을 했던 지율 스님. 2006년 6월 대법원 도롱뇽 소송 기각을 전후해 경북 영덕 산골 토막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 뒤로 스님은 조선일보 상대 10원 소송 등 재판에만 신경 쓰며 조용히 지내왔습니다.

지율 스님이, 12월 14일 저녁 STX 수정만 매립지 진입을 반대하는 마산 트라피스트 수녀원을 찾아 강연을 했습니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여태까지 숱한 강연 요청을 뿌리쳐 왔지만 '같은 여성 수도자로서' '같은 생태로 아픔을 겪는 처지'여서 이번은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강연을 마친 지율 스님을 만나 1시간 40분남짓 얘기를 들었습니다. 두 차례로 나눠 그 내용을 소개하려 합니다. 말한 순서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요세파 수녀와 지율 스님.


2009년 3월부터 낙동강 줄기를 따라 걸었어요. 이런 저를 보고 누군가 '강가를 걸으면서 무엇을 봤느냐?'고 묻데요? 그래서 이런 대답을 했어요. "눈이라도 빼서 보여주고 싶다."고요…….

강가 현장에 서 있으면 그 막연하기가 말도 못할 지경입니다. 그래도 저는 현장에 있어야 합니다. 옛날에는 (제가) 감성이었다면 지금은 몸처럼 느껴집니다.

운하 문제에 남이 가라 해서 간 것이 아니예요. 저는 처음부터 운하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스스로 들어갔습니다.

낙동강 천성산 수정만, 다 같은 문제다

사람들은 천성산과 관련이 없는 듯 여기지만 그렇지 않아요. 4대강 살리기에서도 천성산 얘기가 꼭 들어가는 거예요.

찬성쪽이든, 반대쪽이든. '중년 하나가 들어서 국책 사업을 망쳐 먹었고 그래서 어마어마한 돈이 날아갔다.', 이런 식으로……. 그래서 우리 문제 풀려면 운하 문제를 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돈에 관련된 것이든 그냥 얘기든.

(해설 : 천성산에 터널을 뚫은 논리나 원리가, 이른바 '4대강 살리기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관통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스님은 이런 얘기도 했는데요, 아마 이런 현실을 상징하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과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을 지낸 정종환이라는 사람이 지금 국토해양부 장관으로 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워요."

정종환은 2003~2004년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원해-그것도 엉터리로- 이를테면 비구니 하나 때문에 2조5000억 원을 날렸다는 식으로 지율 스님을 공격해 댔습니다.)

(경북) 영덕에 있는 집을 나올 때 집을 '딱' 정리했어요. 영덕 산에서 3년을 살았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람으로 생각하라고 했어요. 발을 한 번 내딛으면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나와서 (경북) 상주에 머물렀습니다. 머문지 한 달 남짓 됐는데, 상주·영주·안동에서 저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인연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모임이 꾸려집니다. 그래서 1박2일로 낙동강 순례를 하자고 했습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상주에서 안동까지 순례길을 하자는 것입니다.

경북에 자리를 잡은 까닭이요? 구미시 위 쪽로 자연 훼손이 덜 됐더라고요. 그리고 해평 습지에서 안동구담까지 하루 일정에 둘러볼 수도 있어요. (낙동강을) 왜 지켜야 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동은 한 목적으로 수렴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4대 강 살리기 사업 이것은 안 하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4대 강 살리기 사업을 하게 된 과정을 빤히 들여다 보자는 것입니다. 하게 된 과정을 들여다보면 공동의 책임을 느낍니다.

저는 대단한 흐름에 올라 서 있습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엄청나게 도도한 흐름 같아요. 옛날에는 천성산 운동 할 때는 무엇을 거슬러 오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 저는 흐름을 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흐름을 타고 흘러가면서, 하게 된 배경을 살피고 생기는 피해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나중에라도 돌이켜야 되는 지향점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자는 얘기지요.

제 명함을 들고 있는 지율 스님.

수정 문제는 수정만의 단일한 문제가 아닙니다. 낙동강 살리기 또한 낙동강만의 단일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시대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그랬는데, 오늘 트라피스트 수녀원에 와서 비밀 얘기를 많이 했어요. 봉쇄 수녀원이니까 얘기가 밖으로 안 나가잖아……. 그래서 마음 놓고 했어요. 하하.

(해설 : STX의 무지막지한 수정만 진입을 불러온 원리나 욕심, 천성산에 구멍을 내는 원리나 욕심, 낙동강을 비롯한 이른바 4대 강을 모조리 헤집고 토목공사를 해대는 원리나 욕심이 한결같다는 얘기입지요. 이런 원리나 욕심이 주류가 돼 있으니까, 누구 공동의 책임을 느끼고 함께 풀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나아갑니다.)

낮에 수정 마을을 둘러봤습니다. 예전에 와본 마을이 아닙니다. 옛날 모습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뒷사람들은 지금 이렇게 매립돼 있는 이것이 자연인 줄 알겠구나…….

낙동강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까닭도 아마 같겠다 싶어요.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고 그에 따라 뒷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사진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지요.

이 정부는 2008년 12월부터 한 번도 공사를 멈춘 적이 없어요. 진짜예요. 함안보가 지금 착공식을 했다는데, 이미 2009년 4월에 다 돼 있었습니다. 땅에 박을 철근은 길이가 맞춰진 채로 와 있었고, 축대도 돼 있었고, 길도 닦여 있었습니다. 보(洑)라고 할만한 것만 쌓지 않고 있었을 뿐입니다.

안타까워서 이런 얘기를 했지만 운하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강으로 오지 않는 거예요. 오지 않으니까 모르는 겁니다. 저는 걸으니까, 자동차를 타고 돌아보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는 거지요.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안으로 깊이 들어갑니다. 그러면 보입니다.

드는 생각은 이런 거예요. 생태공원 승마장 골프장 관광자원관 이런 것을 정부가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파서 쌓아 놓은 것은 더 엄청납니다. 6m 깊이로 파서 정비한 땅입니다. 이걸 그대로 두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농사를 짓게 하겠어요? 저는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강을 강이 아니게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수질 오염이나 홍수 따위 수치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과학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정부에서도 하지요. 그러나 과학으로 쓸 수 없는 것들은 못합니다. 그대로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보 둘레에 무엇이 들어설는지는 모릅니다. 이렇게 '꽃단장'을 하고 운동장 여섯 개가 한꺼번에 들어서도 모르는 일입니다. 요즘은 이런 모양이더라고. 길이 먼저 닦이고 다음 시설이 들어서고 마지막으로 아파트 단지 따위가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왜 이럴까, 생각을 해 봤어요. 부산 광안리 불꽃놀이에 70만 명이 모였다네요. 사람이 문제지요. 이런 식으로 이벤트 몇 개 만들어 버리면 사람들 마음이 오그라들지요. 저 쪽은 이런 것까지 계산하고 할 텐데요. 정부가 내놓지 않은 것을 봐야 보는 겁니다. 내놓은 것만 봐 가지고는 보는 게 사실은 없는 것입니다.

(해설 : 사람들이 저마다 마음 속에 많든적든 갖고 있는 '물신숭배'를 두고 하는 얘기 같았습니다. 정부가 이런 물욕을 노골적으로 불러일으키고 많은 이들이 거기 박자에 맞춰들어가는 현실을 연민으로 직시하는 것 같은 느낌……. 아니면 물신숭배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조건에 대한 안타까움 같기도 하고요.)

지금 상주 빈집에 들어가 살고 있는데요. 그런데 4대강 살리기에 대한 운동은 집중이 안돼. 왜 그런지 생각했는데 현장이 없고 베이스 캠프가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상주에 거점을 마련한 셈이지요.

앞으로 1년 동안 상주에서 안동까지 1박2일 낙동강 순례길을 운영하자고요……. 사람들이 와서 안으로 아래로 들어가 보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건강은 어떠신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좋은지 나쁜지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따져보면, 나쁜 게 정상 아닌가요?

(해설 : 좋은지 나쁜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말씀에 저는 꽂혔습니다. 스님은 몸이 좋지는 않을 것입니다. 목숨 건 단식을 다섯 차례나 했는데 그것도 다 더하면 300일이 넘을 정도로 했는데 어찌 몸이 성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말은 자기 한 몸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지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고 만다면 울림이 그리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스님은 좋다 또는 나쁘다 하는 구분을 넘어서 있을 것입니다. 스님 사고법에는 좋다 나쁘다 하는 나눔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세상을 진보와 보수로 구분해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너는 진보야 또는 너는 보수야 이러면 그 사람이 그게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고요,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지는 것이지요. 좋음 속에는 언제나 나쁨이 있고 나쁨 한가운데도 언제나 좋음이 들어 있게 마련이거든요.

그리고, 그런데 따져보면 나쁜 게 정상 아니냐는 말에 저는 쓰러질 뻔했습니다. 세상 만물과 통하고 있으면서 한 마디 툭 내뱉는 무심함이 느껴지는 바람에요.

맞습니다. '따져보면' 어떻게 건강이 좋을 수 있겠습니까. 너와 나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아프고 병들어 있는데, 세상 만물이 더럽혀져 있고 찌그러져 있는데, 자기 한 몸 성하면 오히려 이상한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김훤주

지율, 숲에서 나오다 - 10점
지율 스님 지음/도서출판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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