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1960년 동아일보의 충격적인 '학살'보도

기록하는 사람 2009. 10. 1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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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기사 하나를 소개한다. 동아일보 1960년 5월 22일자 3면에 보도된 기사다.

제목은 '남녀 모두 옷 벗겨서 살해'라는 주제목 옆에 '수십 명씩 한꺼번에 묶어 수장 떠오르면 또 총질'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명패는 '통영 양민학살 사건의 상보'이며, 이 기사를 보도한 기자는 '충무시에서 김영호 부산분실 기자 21일발'로 되어 있다. 지역의 뉴스를 사회면인 3면에 두 번째 머릿기사로 올린 것도 요즘엔 보기 힘든 일이다.

이 기사는 얼마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마산 위령제 때 쓸 자료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구유족회 이광달 회장이 보관해오다 제공한 자료를 검토하던 중 발견한 것이다. 이는 동아일보 PDF를 통해서도 재차 확인한 것이다.

다음은 당시 동아일보의 기사 전문이다. 한자는 한글로 고쳤으며 띄어쓰기와 일부 맞춤법도 고쳤다.

스크랩 : 대구유족회 이광달 회장 제공.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비밀 속에 잠겨 있던 통영 양민학살사건의 진상이 11년만에 밝혀져가고 있는 이곳 충무시는 21일부터 벌써 유족들의 흥분된 공기가 감돌고 있다.

통영수산고등학교 교감을 지내고 어장을 경영하다가 학살당한 안승관 씨의 미망인 탁복수(47) 여사가 주동이 된 학살 희생자 유가족들은 그 당시 희생된 가족들의 명단과 살인범들을 조사하고 있으며, 학살을 감행한 헌병 문관들이 아직도 충무시내에 거주하고 있어 지난 10년 동안 그들을 만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해오던 이들은 이제는 원수를 갚는다고 흥분하고 있다.

죄없는 양민들을 잡아다가 창고(현 해무청 충무출장소 창고)에 감금하고는 남녀 할 것 없이 옷을 벗게 하고 그들을 강제로 정교를 맺도록 명령하고는 몽둥이로 난타한 후 20명 내지 40명씩 '로프'로 묶어 큰 돌을 달아 바닷물에 던져 수장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물위에 떠오른 사람들에게는 총을 쏘아 죽인 만행이 오늘에 와서 비로소 폭로되고 있어 더욱 유족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생일날 아침에 붙잡혀 가서 죽은 신성철 씨의 미망인 안금연(33) 씨는 딸 셋을 데리고 10년 동안 채소장사를 하면서 원수 갚을 날을 기다려 왔다고 하며 남편이 수장된 구이포를 바라볼 때 물결치는 파도소리가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슬퍼하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가족들은 현재 시내에 거주하고 있는 당시 문관들과 방위대원들 중에 누가 그들의 가족을 죽였다는 확증까지 잡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당시 문관들의 현거주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구종근 ▲공학수배 ▲하대원 ▲이양조 ▲황덕윤 ▲김기향 외 수 명

당시 동아일보의 이 보도대로 '남녀 할 것 없이 옷을 벗게 하고 강제로 정교를 맺도록' 한 뒤 수장했다면 그 반인륜성이나 잔혹성이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정도다.

동아일보보다 하루 늦은 1960년 5월 23일자 부산일보 보도에서도 "당시 헌병대 유치장으로 사용되었던 현 해무청 충무출장소 옆 해산회사 창고에 끌려 들어간 남녀는 옷을 벗기우고 난타당하여 매일 밤 20~30명 씩 발동선으로 실어다 버렸다는 것이다. …… 양민학살을 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한 앞잡이들은 착실한 가정부인들을 위협해 강제로 몸을 바치게 했는데…"라는 내용이 있다.

무엇이 진실이든 한국의 민간인학살이 나치의 유태인학살 못지 않은 반인륜, 반인권 범죄임은 틀림없는 일이며, 그것은 동아일보 보도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과거사는 파지 말자는 2009년 9월 8일자 동아일보 사설.


그런 동아일보가 요즘은 어찌된 일인지 이런 역사의 진실규명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보도를 일삼고 있다. 조중동 중에서도 동아일보가 특히 심하다. 그래서 관련 인권단체가
동아일보 보도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낼 정도였다. 이제 세월이 그만큼 흘렀으니 이런 엄청나고도 충격적인 일을 그냥 묻어버리고 지나가자는 말인가?

아직 언론에 보도되진 않았지만, 최근 진실화해위는 동아일보가 1960년 보도했던 그 통영지역 학살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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