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59년만에 국방부 사과받은 유가족들

기록하는 사람 2009. 10. 1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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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에 의해 마산 앞바다와 인근 산골짜기에서 무참히 학살된 2000여 명의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이 마침내 국가의 공식 사과를 받아냈다. 사건이 일어난 지 59년 만의 일이다.

지난 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안병욱)'가 마산형무소 재소자 717명이 국가권력에 의해 불법적으로 살해됐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계기로 결성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마산유족회(회장 노치수)'는 지난 16일 오후 1시 30분 마산 종합운동장 올림픽기념관에서 '제59주기 제2차 합동위령제'를 열었다.

이날 위령제에 이어진 추모식에서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향토사단의 마산대대장인 강재곤 중령이 대독한 사과문을 통해 "6·25전쟁의 와중에서 군·경에 의해 일어난 불행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안타까운 희생을 당하신 영령들의 명복을 삼가 빌며, 유가족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유족회 대표들이 국방부 장관의 조화가 놓인 제단에서 희생자들의 신위에 잔을 올리고 있다.


김 장관은 이어 "당시의 사정과 사건의 본질이 여하하였던지 간에 많은 분이 피해를 보신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며 유감의 뜻을 담아 국방부 장관의 화환을 근정한다"며 완곡한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이처럼 국방부 장관의 사과는 '유감'이라는 미적지근한 표현에 그쳤지만, 유족들은 그나마 처음으로 사건 자체를 인정하고 직접 사과문을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했다.

국방부장관 외에도 황철곤 마산시장은 김영철 부시장을 대신 보내 추모의 뜻을 전달했으며, 노판식 마산시의회 의장은 직접 낭독한 추도사를 통해 "59년이 지났지만 너무나 원통하고 애절한 죽음으로 아직도 영면에 들지 못하고 계실지도 모르는 원혼들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빈다"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이주영·안홍준 국회의원은 추도사를 보냈지만 참석하진 않았다.

왼쪽부터 황태수 도의원, 김오영 도의원, 강재곤 중령, 노판식 마산시의회 의장, 김영철 마산시 부시장.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범국민위)' 김영만 공동대표는 "황철곤 마산시장과 마산의 국회의원 두 분이 직접 참석하여 아직도 누울 자리를 찾지 못한 원혼들을 위한 추모공원 조성을 약속해 주기 바랐는데, (참석하지 않아) 아쉽다"며 자치단체와 정치인의 노력을 촉구했다.


김정호 전국유족회 상임대표도 "진실 규명된 사건에 대해 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서 그에 따른 후속조치를 해주어야 함에도 이런저런 핑계로 손 놓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앞서 안병욱 진실화해위원장도 김진수 대외협력팀장이 대독한 추모사를 통해 "적법한 절차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던 평범한 민간인을 보도연맹원으로 소집, 잡아 가두어 집단살해한 것은 인륜에 반한 것이며,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침해한 것은 물론 무엇으로도 변명이 되지 않는 국가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이라며 "정부당국과 지방자치단체의 신속하고 성의있는 권고사항 처리를 통해 유가족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족들이 추모시가 낭송되는 동안 눈물을 훔치고 있다.


진주와 산청, 경산 등에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작업을 해온 경남대 이상길 교수는 "마산에도 구산면 해안가에 묻혀 있는 희생자의 유해가 일부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에 대해서도 유족회와 의논해 이른 시일 내 발굴작업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범국민위 서봉석 운영위원(전 산청군의원)의 사회로 진행된 위령제와 추모식에는 200여 명의 마산지역 유족 외에도 김종현 전국유족회 상임대표, 김광호 전국유족회 집행위원장, 이광달 대구유족회장, 김태근·강병현 진주유족회 전·현직 회장 등이 참석해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눴으며, 김무철 전 마산 부시장과 김오영 경남도의회 의원, 허정도 전 경남도민일보 사장 등 차기 마산시장 출마예상자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황태수 도의원도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한편, 위령제 비용은 국방부와 마산시가 공동 지원했지만, 진실 화해위의 권고사항 중 위령비 건립과 공공 유해 안치시설 설치 등은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다.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불교의 천도독경.

마지막까지 남은 유족들이 추모식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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