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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군경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 당했던 1950년, 기껏해야 한 두 살, 많아야 열 살 안팎이었던 아이들이 성장하여 60·70대 노인이 됐다. 이른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유족들이다.
그들이 생전 처음으로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 가서 기자회견이라는 걸 했다. 오늘 오후 2시에 약 20분 간 진행한 기자회견 관련 기사가 연합뉴스와 뉴시스, 노컷뉴스 등에 뜨는 걸 보니 나름대로 회견은 잘 된 것 같다. 아마 오늘 저녁엔 지역방송에도 나올 것이고, 내일쯤엔 경남도민일보를 비롯한 지역신문에도 나올 것 같다.
보름 전 쯤이었다. 마산유족회 노치수 회장이 찾아왔다. 16일(금) 오후 마산지역 합동위령제를 하는 날 마산시청에 가서 유족들의 요구사항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날 여러 지역의 유족회장들도 위령제에 참석하니, 함께 가서 공동기자회견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산유족회 노치수 회장이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박일호 기자
그러나 내가 생각할 때, 위령제 당일 기자회견을 할 경우, 그 내용은 위령제 기사에 묻혀버릴 게 뻔했다. 또한 금요일인 16일은 다음날인 토요일자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곳도 있는데다, 설사 토요일자 신문에 나온다 하더라도 그날은 뉴스 열독율이 높지 않아 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왕 기자회견을 할 것 같으면 위령제보다 이틀 전인 14일, 서울지역신문 기자들도 함께 상주하고 있는 경남도청에서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드렸다. 그러면 이틀 뒤에 열릴 위령제에 대한 사전 홍보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노치수 회장이 동의했고, 지난 주에 다시 만나 기자회견 내용과 방식 등을 논의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경남도청 공보관실에 전화를 하여 기자회견 예약을 해드렸다.
오늘 기자회견은 그리하여 이뤄졌다. 나는 일부러 회견장에 가지 않았다. 대신 우리 신문사 조재영 기자에게 노인들을 잘 좀 챙겨달라고 부탁을 해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경유족회 김광호 회장이 생각보다 진행을 잘 했다고 한다.
다행히 기자들도 기사의 방향을 잘 뽑아 준 것 같다. "진실 화해위원회의 권고사항인 '공공유해안치시설' 설치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공공유해안치시설은 광역 자치단체 단위로 설치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유족들의 바람도 잘 전달되었다.
※노컷뉴스 : 민간인학살 유해 '컨테이너에 방치'
※연합뉴스 :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 더 이상 방치 마라"
※뉴시스 : 떠돌고 있는 민간인학살 유골, 대책마련 호소
아래는 노치수 회장과 함께 작성하여 오늘 기자들에게 배포한 회견문이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경남지역 유족회
합동 기자회견문
합동 기자회견문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59년 전인 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국군과 경찰로부터 아무런 법적 절차와 재판도 없이 불법적으로 집단학살된 분들의 유가족입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전시라는 혼란을 틈타 자신의 영구집권에 방해가 될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전국적으로 최소 수십 만 명, 최대 100만 명이 넘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무참히 학살했습니다.
이 같은 대학살은 2차 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유태인학살이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능가할 정도이기도 했지만, 반세기가 지나도록 이토록 철저히 은폐되어 온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1960년 4·19혁명 직후 마산을 비롯하여 전국 곳곳에서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가 잇따랐으나, 이듬해 5·16쿠데타 세력은 유족회를 강제해산시키고 간부들을 구속시켰으며, 유족들이 어렵게 찾아 안장한 합동묘를 파헤쳐 유해마저 없애버리는 부관참시까지 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가족들은 국가권력에 의해 입도 벙긋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45년이 지난 2005년 마침내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제정되고 '진실화해위원회'가 발족해 그야말로 55년 만에 진실규명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경남에서도 마산과 진주, 김해, 산청, 함양 등 곳곳의 민간인학살 사건이 진실규명 결정과 함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위령사업 등 후속조치에 대한 권고가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국가기구인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과 권고에도 불구하고, 경남도를 비롯한 자치단체는 위령사업과 유해안치시설 설치 등 권고사항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유해가 경남대의 컨테이너 속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으며, 2008년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에서 발굴된 270여 구와 올해 진주에서 발굴된 유해 등이 죽어서도 고향땅에 묻히지 못하고 머나먼 충북대 임시안치소에 보관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현 정부 역시 남아 있는 미해결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의지를 전혀 보이고 있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기간 연장과 법에 규정된 '과거사 연구재단' 설립에도 미온적인 태도만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경남지역 유족회 대표와 회원들은 2009년 10월 16일(금) 마산 공설운동장 올림픽기념관에서 열리는 마산지역 합동위령제를 앞두고, 경상남도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첫째,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대로 경남도와 시·군 자치단체는 경남지역 민간인 집단희생자에 대한 공공유해안치시설을 설치하고, 국민통합과 화해를 위한 위령사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라!
둘째, 정부는 과거사 기본법에 규정된 '과거사 연구재단'을 하루빨리 설립하여 미신청자와 미해결 사건의 진실규명과 유해발굴을 적극 지원하라!
세째, 정부와 국회는 반인권 국가범죄에 대한 소멸시효를 배제하고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에 대한 배·보상 특별법을 즉각 제정하라!
네째, 불법 집단학살을 자행한 국군과 경찰은 지역별로 열리는 합동위령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진심으로 사과하라!
2009년 10월 14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경남지역 유족회
대표 및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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