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씩씩한 남자가 되면 무엇이 좋을까

김훤주 2009. 9. 25.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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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민족, 국가 등 근대 이후 갖은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뤄온 박노자가 이번에는 남성성을 정면으로 헤집었습니다. 국민 민족 국가 이데올로기가 개인을 얽어매고 억눌렀듯이 남성성 이데올로기도 같은 노릇을 했다는 결론입니다.

알려진대로 이데올로기란 특정 사실(들)을 바탕으로 지배계급의 이해 관계에 따라 덧칠된 생각이기도 하고, 그런 생각들의 조합이기도 하답니다. 이데올로기는 또 어떤 경우에는 사실 그 자체로 오인되기도 합지요.

박노자의 <씩씩한 남자 만들기>에 달린 부제는 '한국의 이상적 남성성의 역사를 파헤치다'라고 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첫머리에 '소년 남자'라는 노래가 나옵니다.

"무쇠골격 돌근육 소년 남자야 애국의 정신을 분발하여라. 만인대적萬仁大敵 연습하여 후일 전공 세우세. 절세영웅 대업이 우리 목적 아닌가". 1909년 7월 도쿄 유학생들로 구성된 야구팀이 도쿄에서 대회를 치르면서 부른 대회가(大會歌)랍니다.

박노자는 이런 노래를 여럿 거론한 다음, "1900년대 후반 재일 조선 유학생들이 근대의 이상적 남성의 특징을 무엇으로 상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또 "성차性差(젠더)적·연령적·계급적 차원을 도외시하면 안 된다. '도쿄 주재 조선 유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남성이었고, 상당수가 10대 후반 또는 바로 그 위 연배로서 상류 및 중류층 집안 출신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우상은 그들 자신의 모습의 투영이었다."는 것입니다.

박노자가 여기서 읽어낸 '이상적 남성'은 이렇습니다. 첫째, 국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개인입니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개인이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정신적인 '힘'과 신체적인 '힘', 양자 모두의 구현입니다. 그러면서 사내다운 힘은 애국심과 나란히 제시되며 외부 지향적 폭력으로 드러날 잠재성을 명백히 포함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셋째 통제, 규제와 규칙에 대한 복종이 강조됐다고 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복종은 '필요'악 정도겠지만 당대 계몽주의자들에게 복종과 통제는 '절대'에 가까운 핵심 개념이었다는 것입니다.

넷째 성공과 공훈에 대한 칭송이 동반된다고도 했습니다. 튼튼한 몸과 함께 선호된 또 하나의 가치가 명예와 명성이라는 얘기랍니다. "'명예'만 사랑하는 모습은 전통 사회 같으면 소인배 기질이겠지만 각자 '몸값'을 알아서 높여야 하는 자본주의에서는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런 의심이 들지 않습니까? 근대 이전 전통 사회에서는 '이상적 남성성'이 그렇지 않았다는 말일까? 박노자는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조선 지배층의 실제 일상생활에서는 폭력이 남성다움의 증거로 요구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적인 남성이라면) (평민들 사이에서는) 용맹성과 거친 성격은 필수였지만, (그렇다 해도) 그 반대편에서 노련한 사회성과 핵심적인 유교적 가치의 준수를 통해 균형을 잡아주어야 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비상한 학습 능력으로 어른들을 놀라게 하는 명석한 두뇌와 칭송받을 만한 고상한 몸가짐, 폭력 없이도 원칙을 지키는 행동을 통해 자신의 의무감과 정의감을 표현할 수 있는 균형과 절제를 갖춘 남자가 바로 그들의 대장부였다." 여기서 의무감과 정의감의 내용은 바로 효와 충이겠지요.

물론 19세기 말 체제 위기 시기에 접어들자 왕실은 '대표적 사대부'보다 폭력 능력이 좋은, 좀 더 '거친' 인물들을 적극 기용하기도 했습니다. 매천 황현의 <매천야록>에 나온답니다. '준걸스럽고 말 잘하는 사람', '기세를 부리거나 큰소리치는 사람', '술이나 마시고 도박이나 하는 무뢰배들' '상투를 아름답게 튼 사람', '장구를 잘 치는 사람' '해학을 잘하는 사람' 등등.

이런 전통 사회의 이상적 남성성은 1900년대 들어 바뀝니다. 충성과 효도(그러니까 왕조와 가정) 대신 민족과 국민이 가장 높은 가치로 인정이 되면서 근대화되는 것입니다. 당시 주류들이 '이상적 남성성의 민족주의적 재구축'을 하는 과정에서, '이순신' '을지문덕' 같은 전통을 빌려 쓰는 바람에 현대 사람들이 '전통 사회도 그랬으리라'고 착각하고 있기 십상이기는 하지만요.

창원 용남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이순신 장군상.


그러나 새로운 남성성은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답니다. 충분 조건은 '정기적인 훈련과 규율'이었습니다. 민족과 국민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명하는 대로 '규율'하도록 만드는 '훈련'이 사람들 마음 속에 갖춰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문명적 남성성'은 운동장의 철저하게 규범화된 경쟁 속에서만 키워져야 한다는 관념"이 1900년대에 일어나 1920년대에 확고해진 것이랍니다. 이를테면 "정기적인 훈련을 통해 스포츠나 전투를 할 준비가 돼 있고 주어지는 명령의 정확한 수행이라는 기준으로 자기 가치를 측정하는 남성"이 이상으로 자리잡았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그 뒤로도 계속 중심에 남았답니다. "식민지 남성은, 기댈 조국이 없다는 점 때문에 늘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열등감이 만연한 상황이었던지라 '체육을 통한 구국' 담론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우파든 좌파든 남성의 힘 키우기, 몸 만들기를 중요시했다."

박노자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훈련된 몸'은 '문명'을 상징하는 하나의 징표다. 훈련에서 '힘 키우기', '공격과 방어 능력 배양'이 강조되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징병 기간이 7년에서 10년이나 되는 '또 하나의 코리아' 이북의 '표준적 남성성'은 어떠한가? 똑같은 특징들이 더 부각될 뿐이다. 요컨대 '훈련주의'는 남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근대성' 자체의 문제다."

박노자는 아울러 지금은 담력·체력이 남성에게 더이상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현상도 짚습니다. '명문대 졸업생'이라는 높은 '학력 자본'과 '대기업 엘리트 사원'이라는 좋은 '경제 능력'을 갖춰야 훌륭한 남자입니다. '밤샘 학습'에 '밤샘 잔업'을 할 줄 아는 남성이라야 대한민국에서 '철인鐵人'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은 것은? 그야 바로 '훈련'이지요.

그래서인지 박노자는 한국 남성의 '경제화'가 담력·완력을 키우는 '훈련'에 대한 선호와 묘하게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낍니다. 겉으로는 무관해 보이지만, "'경제력 우선론'과 '훈련주의'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훈련'이 궁극적으로는 남성의 심신을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에 안성맞춤으로 가다듬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박지성

학교의 갖가지 공식·비공식 훈련, 군대에서의 기나긴 훈련, 직장에서의 '극기 훈련'과 '합숙 훈련' 등등. "'국가' 안에서 주도권을 잡아버린 대기업들은 국가가 더이상 중요시하지 않는 '국민적 신체 다듬기'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다."

"극기 훈련 캠프에서 윗사람의 구령에 따라 신체를 움직여본 사원이라면 명령 수행 차원에서 뛰어날 것이다. 또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세계 최장에 가까운 노동시간과 업무 강도를 참아내기도 어렵다."

박노자는 말미에서 "'국민', '민족의 1분자', '수출 전사', 금전거래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는 향락주의적 남성"을 대신하는 '씩씩한 남성상'으로 '배려하는 남자', '돌봄을 할 줄 아는 남자'를 내세웁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지금 현실에서 씨알이 먹힐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박태환·박지성·박찬호의 '고도로 훈련된 육체와 마음'에서, 그리고 그이들을 '태극 전사'로 떠받드는 현실에서, 근대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저는 고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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