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신라유적 경주, 수학여행이 뚝 끊긴 이유

기록하는 사람 2009. 9. 2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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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한국사회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신종플루 때문에 지역의 축제나 행사를 취소 또는 연기'하는 겁니다. 물론 정부가 당초 '연인원 1000명 이상이 참석하고 2일 이상 계속되는 행사는 원칙적으로 취소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가 번복하여 다소 완화시켰다곤 하지만, 이미 상당수 지역축제나 행사가 취소된 뒤였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축제라고 하여 취소시켜야 한다면,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의 도심 같은 곳은 사람들을 소개(疏開) 또는 분산시켜야 할 것이며, 지하철이나 버스도 모두 운행중지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만에 하나 지자체의 행사로 인해 신종플루가 확산될 경우 책임지지 않으려는 공직자의 보신주의에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게다가 지난 7월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월드콰이어챔피언십(그냥 세계합창대회라고 하면 될 것이지)을 무리하게 치렀다가 홍역을 치른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 행사의 경우 실내 공연행사였고, 신종플루가 만연되고 있던 동남아지역 외국인들을 대거 초청했으니 당연히 욕먹을 일입니다.

분황사에서 본 가족단위 여행객들. 그러나 수학여행객은 단 한 팀도 없었다.


하지만 김태호 경남도지사의 오판이 옥외에서 열리는 전국 모든 지역의 축제까지 취소시키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특히 지난 18~19일 경주에 가보니 정말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예년같으면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수학여행객이 집중적으로 몰릴 시기이지만, 이틀동안 모든 유적지에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은 단 한 개 팀도 보지 못했습니다. 간혹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단위 여행객들 말고는 정말 눈을 씼고 봐도 없더군요.

매표소 직원이나 인근 식당 주인들에게 물어보니 한결같이 "신종플루 때문에 올해 경주관광업계는 죽을 쒔다"고 울상을 짓더군요.

요즘 경주의 웬만한 유적지에는 이런 손 세척기가 설치되어 있다.


다녀온 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한국관광공사 이참 사장도 "미국과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태국, 홍콩, 대만, 호주 등 신종플루가 만연하고 있는 각국에서 국제 행사나 지역 축제 등 관광 관련 행사가 취소된 사례가 거의 없다"며 정부와 지자체의 보신주의에 볼멘 소리를 했다는군요.


사실 그럴겁니다. 학교 교장이나 교사들도 자칫 단 한 명이라도 여행 중 환자가 발생하면 책임질 일이 두렵겠지요. 그러나 좀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경주의 웬만한 유적지나 관광지에는 들어가는 입구에 손 세정기가 마련되고 있는 등 나름대로 위생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수학여행에서 전염될 위험이나, 학교의 교실에서 전염될 위험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전국의 모든 학교가 수학여행을 취소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성적 판단이라기 보다는 교육관료와 교장, 교사들의 보신주의에서 기인한 탓이 큰 것 같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신라밀레니엄파크에서 손을 씼고 있는 블로거 커서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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