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언론노조 지부장 5명의 고민 들어보니…

기록하는 사람 2009. 8. 21. 12:01
반응형

한나라당의 신문법·방송법이 시행되면 지역신문과 지역방송에는 어떤 변화가 오게 될까? 그리고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재의 지역언론이 제역할을 다하면서도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게 요즘의 내 화두이다. 물론 이런 고민을 가장 치열하게 해야 할 사람들은 나같은 일개 지역신문 기자가 아니라, 지역신문과 그 종사자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경영진과 노동조합 간부들일 것이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 예측과 고민을 하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른바 '미디어법' 논란 과정에서 방송의제가 아닌 신문, 그 중에서도 특히 지역신문의 운명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진지한 분석이나 전망이 나온 것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찾자면 조중동의 불법 경품과 무가지 살포와 관련된 신문법 10조2항과 신문고시 정도였다.)


혹자는 '신문-방송 겸영허용에 따른 방송시장의 재편'이라는 방송의제에 '묻혀' 신문의제가 가려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가려질 신문의제라는 게 형성이라도 된 적이 있는지 의문이다.

내가 요즘 [PD저널]이나 우리 신문, 그리고 이 블로그를 통해 연달아 '지역신문의 운명'과 관련한 비슷비슷한 글을 계속 쓰고 있는 것도, 일단은 '의제' 내지는 '논제'라도 제기해보고자 함이다.


그런 차원에서 명승은 기자의 화답(미디어법 사태 이후 지방지 위기, 돌파구는 없나)은 반갑고도 고맙기 짝이 없다. 명승은 기자가 그 글에서 제기한 '왜 지방지들이 살아남아야 하는지', '현재의 지방지가 과연 도태되지 않을만큼 차별화된 경쟁력 요소를 갖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조만간 내 생각을 밝혀보겠지만, 그 전에 그동안 지역에서 '언론악법 저지 투쟁'을 이끌어온 언론노조 지역신문·지역방송 노조 지부장 다섯 명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들이 예측하는 지역언론의 미래를 듣기 위해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①한나라당의 언론관련법이 시행되면 지역신문·지역방송은 어떻게 될 것인가. ②지역방송과 지역신문이 서울언론에 종속 또는 장악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그들(특히 신문 쪽 지부장)들은 얼마 전 내가 경남도민일보에 썼던 관련 칼럼을 읽어본 듯 했다. 그래서인지 그 예측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견들을 내놨다. (사실은 내 생각과 다르거나, 내가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좀 아쉬웠다. 기대했던 것 보다 구체성도 다소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들이 생각하는 지역신문·지역방송의 미래에 대해서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데에는 도움이 될 것 같다.

경남도내 지역일간지와 지역방송의 노동조합 지부장들은 한결같이 "좁은 지역광고 시장을 놓고 지역신문과 지역방송간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며, 서울일간지의 지역신문시장 진출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지역방송은 광고시장을 기준으로 인위적인 권역별 통폐합의 길을 걷게 되거나 서울종속성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왼쪽부터 이일균 경남도민일보 지부장, 오정남 마산MBC 지부장, 이학수 경남신문 지부장, 박종인 KBS창원 지부장, 강진성 경남일보 지부장.


◇이일균(전국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 지부장)

① 당장 악영향을 받을 것이다. 지역신문의 경우 신문법 14조 복수소유가 허용되면 바로 서울지(소위 '중앙지')가 지역신문을 체인화 또는 계열사화하려 할 것이다. 지역방송의 경우 이미 MBC 민영화라든지 지역방송 매각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② 지역소식이 신문지면이나 방송에 나오는 비중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이미 <인천경향> 등의 사례에서 보듯 (서울지가 내는 지역신문은) 인력 자체가 적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지면을 전국지의 내용으로 커버하게 될 것이다.

◇오정남(전국언론노조 MBC본부 마산MBC 지부장)

① 지금도 어렵지만 고사(枯死)하게 되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효율성이 강조되는 존재방식을 강요받게 된다. 특히 현재의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체제가 해체되고 민영미디어렙이 되면서 방송 광고의 (서울 프로그램과의) 연계판매가 사라지면 지역방송은 30% 이상의 광고가 줄어들게 된다. 그 30%는 조중동이 하려는 종합편성채널을 계산하지 않고 산출한 수치인데, 조중동 방송이 생기면 더 어려워지게 될 것은 뻔하다. 그러면 결국 지역방송은 서울 종속이냐, 민영화냐 두 가지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지역신문의 경우, (질문자가) 더 잘 알겠지만, 아마도 서울지역 일간지들이 지역신문을 인수하거나 창간하려 하지 않겠느냐.

② 그렇게 되면 과연 지역의제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방송에서 지역성을 구현하기 위해선 부족하나마 지금의 MBC 체제가 가장 적합한데, 광고시장을 기준으로 인위적인 권역통폐합이 되면 현재의 '지역네트워크' 체제는 와해되고 서울종속이 심해져 지역에선 사건·사고나 채워주는 정도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학수(전국언론노조 경남신문 지부장)

① 신문의 경우 M&A를 예상해볼 수 있지만, 당장 방송 진출에 전념하고 있는 조중동이 지역신문시장 장악까지 나설지는 좀 더 두고봐야 겠다. 만일 서울지가 지역신문을 창간하거나 인수한다면 10면 정도만 로컬기사로 채우고 나머지는 본사 기사로 제작할 것이다. 그러면 사업성이 있을 것이다. 방송의 경우 당장 민영미디어렙이 문제인데, 연계판매가 사라진다는 건 지역방송의 숨통을 끊는 결과가 될 터이므로 얼마나 지원책을 만들어줄지 지켜봐야 겠다. 어쨌든 지역신문과 지역방송이 지역광고를 놓고 쟁탈전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② 서울지가 지역신문시장에 진출하면 아무래도 소위 '중앙지'들이 지금까지 보여왔던 의제설정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서울의 관점으로 지역을 보는 방식이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잘했거나 못했거나 지역신문과 방송이 지역의제를 담으려 노력해왔던 것들이 무력해질 것이다.

◇박종인(KBS노동조합 창원 지부장)

① 조중동이 종합편성채널을 갖게 되면 한정된 시장에서 경쟁이 심화되고 당장 방송의 재정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그 영향으로 논조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KBS도 MBC보단 좀 낫지만 2TV라든지 광고문제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민영미디어렙 자체가 경쟁체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② 신문이든 방송이든 재원의 대부분을 광고에 의존하고 있는데, 광고에 목을 매달게 되면 비판이 무뎌지고 뉴스가 연성화할 것이다.

◇강진성(전국언론노조 경남일보 지부장)

①지역방송이 먼저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민영미디어렙이 되면 생존을 위해 지역신문과 방송이 경쟁을 벌일 것이고 서로 힘들어진다. 또한 신문고시를 존치하기로 했긴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아예 단속이 되지 않는 걸 보면 폐지와 다름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또한 '중앙지'가 자회사 형태로 지역신문을 창간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몇몇 '중앙지'가 지역시장을 다 먹기 위해 그런 구상을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② 아무래도 처음에는 지역을 위하는 것처럼 파고 들겠지만, 지역신문시장을 장악한 후에는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특히 지방분권과 자치 의제에 있어서는 기존 '중앙지'의 프레임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지역의 보수신문이라도 지역의제에 있어선 분명한 목소리를 내왔지만 그런 게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