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자신을 스스로 징계한 황당한 도지사

기록하는 사람 2009. 1. 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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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경남도지사가 '3개월 감봉' 징계를 자처했다. 경남에 있는 남강댐 식수를 부산시민에게 공급한다는 정부의 계획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남강댐 물을 부산에 주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문제는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정부의 이같은 계획을 미리 알고도 시치미를 떼고 있다가, 뒤늦게 반발하는 여론이 터져나오자 자신도 반대하는 제스춰를 썼다는 것이 들통난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이런 자신의 잘못이 도의회에서 밝혀지자 김태호 도지사는 '앞으로 3개월간 봉급의 3분의 2만 받겠다'며 자신을 징계하면서, 실무국장과 과장에 대해서는 '직위해제'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도지사 봉급의 3분의 1이라는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른바 선출직 단체장이 스스로 '감봉 3개월'이라는 징계를 자기에게 내리는 것은 정말 코웃음을 자아내는 개그가 아닐 수 없다.


경남도민일보 표세호 기자가 찍은 영상. 손석형 도의원의 추궁에 김태호 지사가 해당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

선출직 또는 정무직 공직자를 일반 기업으로 치면 '임원'이나 같다. 알다시피 임원은 고용된 사원이나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사회나 주주총회에서 '해임'하지 않는 한 사규에 따른 징계를 받을 수 없다. 굳이 징계를 해야 할만한 과오나 정책실패가 있다면 스스로 사퇴하거나 해임을 당하면 된다. 그럴 정도가 아니라면 사원과 주주들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
 
이번 김태호 경남도지사의 과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자신을 믿고 뽑아준 경남도민에게 '사과'를 하거나, 아니면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 될 일이다. 그게 선출직 공직자의 기본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중대한 잘못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과하는 대신 스스로 감봉 3개월을 자처한 것은 정말 희대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법적으로도 자신이 받지 않겠다고 해서 법에 정해진 공무원 봉급을 깍아 지급하는 게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김태호 경남도지사의 연두 기자회견. /경남도민일보


또한 봉급을 적게 받겠다는 것은 그를 선출해준 유권자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내가 재직 중인 회사에서도 한때 외부에서 영입돼 사장으로 선출된 분이 '임기동안 월급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적이 있다. 나는 당시 이 회사에 재직하고 있는 사원으로서 그 말을 모욕적으로 들었다. '댓가 없이 사장으로서 봉사하겠다'는 순수한 뜻일 수도 있지만, 이를 다르게 생각하면 '나는 충분히 먹고살만한 재산이 있으니, 자원봉사하는 심정으로 경영을 해주겠다'는 시혜적 태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입한 사장이 월급을 받지 않고 일한다면 그에게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회사 경영에 전념하지 않고, 적당히 자원봉사하듯이 일하더라도 비판하기 어렵다. 그 사장은 결국 의사를 철회했다.

김태호 경남도지사도 마찬가지다. 경남도민들은 대우에 걸맞는 책임을 져달라고 그를 선출했다. 그런데 상황이 불리해지니까 경남도민에게 사과하는 대신 '내 봉급 좀 적게 받아가면 될 것 아니냐'는 식으로 나온 것이다.

비겁하다. 실수나 무능보다 더 나쁜 건 비겁한 것이다. 명색이 도지사쯤 되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비겁하면 안 된다.

※관련 기사 : 김태호 경남도지사 '감봉 3개월' 징계 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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