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지역MBC 지부장에게 파업 이유 물어봤더니…

기록하는 사람 2008. 12. 2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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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MBC 전면파업 총대 멘 오정남 지부장

이번 언론노조 총파업 현장에는 김주하·박혜진 앵커와 오상진·나경은·문지애·손정은 아나운서만 있는 게 아니다. 마산 MBC의 간판 아나운서였던 오정남(41) 씨도 있다.

게다가 그는 56명의 조합원을 이끌고 파업을 진두지휘하는 노조지부장이기도 하다. 지난 26일 오전 6시부터 파업에 돌입한 마산 MBC 조합원 41명은 버스를 전세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파업 집회에 다녀왔다.

추위 속에서 6시간에 걸친 마라톤 집회를 마치고 그들이 다시 마산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40분이었다. 막 도착해 피곤함에 절어 있는 오정남 지부장을 마산 MBC 5층 노조사무실로 끌고(?) 올라갔다.


불빛 아래에서 그를 자세히 보니 아나운서 출신답게 참 잘생긴 얼굴에다 인상도 부드러웠다. 하지만, TV화면에서 보던 얼굴과 달리 하루쯤 면도를 못한 탓인지 수염이 거무스름하게 자라고 있었다.

말투도 부드럽긴 했지만, 참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하지만, 방송 관련 전문용어가 많아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 많았다. 그래서 인터뷰 도중 본의 아니게 "좀 간단히, 단순하게 말해 어떻다는 말이냐"는 추궁 아닌 추궁을 자주 했다.

-아나운서가 노조 집행부 간부를 맡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지부장을 맡게 됐나.(그는 지난 3월부터 지부장을 맡고 있다.)
△선입견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 같은데, 실제 노조 간부를 맡아 하는 아나운서도 많다. 예전에 손석희 선배도 집행부 간부였고, 지금 진주 MBC 남두용 아나운서도 간부를 맡고 있다. 나도 이전 노조에서부터 민실위 간사와 사무국장 등을 맡아 참여해왔다.

-마산 MBC도 오정남 지부장 말고, 이번 파업에 참여하는 아나운서들이 있나?
△아침뉴스를 진행하던 김형신 아나운서와 9시 뉴스의 배수진 아나운서가 모두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 때문에 아침 로컬뉴스는 아예 없어졌고, 9시 뉴스는 원용관 국장이 대신 맡아 진행하고 있다.

-이번 파업으로 차질을 빚는 프로그램도 있을 것 같은데….
△사전에 제작해놓은 프로그램 외에는 모두 방송이 안 될 것이다. <생방송 전국시대>나 <얍! 활력천국> <일요광장> <생방송 건강클리닉> 등이 그렇다.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편성될 것이다.


-서울집회에 참석해보니 어땠나.

△공식집회를 마치고 자연스레 한나라당 당사 앞으로 갔다. 이미 경찰이 물대포까지 동원해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당사 건물에 계란을 던졌더니 경찰이 선무방송을 통해 "그래 한 번 던져 보세요. 저희는 잘 찍어 놓겠습니다"라고 비아냥거리더라. 이게 바로 현 정권이 국민을 대하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대포를 쏘아서 해산시키겠다"는 협박도 하던데, 무섭다는 생각보다 황당하더라. 국민이 뭐라고 해도 비아냥거리고, 물대포로 진압해서라도 밀어붙이겠다는 태도였다.

국민소유 전파 재벌과 조중동에 넘길 수 없다

-조선일보나 중앙·동아일보 같은 보수언론에서는 이번 방송 파업을 '밥그릇 지키기'라고 비판하던데, 실제 그런 요소가 있는 건가?

△우리가 지금 월급 올려달라고 투쟁하는 건가? 전파는 누구의 소유가 될 수 없다. 국민 모두의 소유라는 거다. 그런데 현 정권이 그걸 재벌과 조·중·동에 넘겨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방송을 정권과 재벌의 방패막이와 선전물로 이용하려 한다. 그것도 아무런 논의과정이나 의견 수렴 절차 없이 그냥 뚝딱 법을 바꿔 그렇게 만들어버리겠다는 거다. 우리는 그걸 막으려는 것이다. 그게 밥그릇 싸움인가?
(이 대목에서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시나리오와 그 의도에 대한 긴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좀 쉽게 말해 달라. 현 정부가 MBC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확실히 어떻게 하겠다는 말도 하지 않고, '민영화'라는 표현도 쓰지 않고 있다. 그래서 국민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권과 한나라당이 추진해온 걸 종합해보면 19개 지역 MBC를 민간에 팔아넘겨, 그 돈으로 정수장학회가 가진 서울 MBC 지분의 30%를 사들여 정부지분을 100%로 만들고서, 서울 MBC를 완전 관영·관제방송으로 만들든지, 또는 재벌과 조·중·동에 팔아 자본의 통제를 받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아무런 논의나 국민동의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거다.


-직장인의 개념으로 보면 정부 산하로 들어가거나 대자본의 지배를 받게 되면 더 안정적인 직장이 되고, 권력의 핵심에 편입되는데, 왜 그걸 거부하려는가.

△자본이 들어오게 되면 구성원들이 알아서 기게 된다. 당장 시사프로그램은 만들기 어렵게 되고 공공성이라는 건 사라지게 된다. 오로지 자본과 권력을 위해 봉사하는 방송이 된다는 것이다. 이건 먹고 사는 문제나 밥그릇 문제가 아니다.

-아니, MBC 구성원들이 그런 순진하고도 정의로운 생각으로 잘리거나 구속까지 각오하고 파업을 한다는 말인가?
△물론 구성원 중에는 그렇게 되어 안주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일부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조합원은 방송이 그렇게 되는 걸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다.

-신문·방송의 겸영을 허용하고 자본의 참여를 보장하면 외국처럼 거대 미디어그룹이 될 수 있다는데,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덩치가 커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쓴웃음을 지으며) 미디어그룹의 조건이라는 게 일단 콘텐츠가 중요한데, 미국은 영어로 만드니까 세계를 상대로 하는 거대 미디어그룹도 가능한 것이다. 우리말로 만드는 콘텐츠를 우리나라 말고 어디에 팔아먹을 수 있나. 아예 없다. 잘해봐야 한류 열풍 이상을 넘을 수 없다.

방송장악해 장기집권하려는 의도 말고는 없다

-그러면 정권이 왜 그렇게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이고 있다고 생각하나?

△결국, 방송의 경쟁력이나 공공성보다는 통제하기 쉬운 방송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밖에 없다. 자기들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운하와 의료, 교육 등 모든 정책이 방송 때문에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방송과 여론시장만 틀어쥐면 자기들 맘대로 하고, 장기집권도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장기집권이다.

-그래도 현 정권은 이 정도 파업에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이기려고 하는 파업이다. 그동안 파업 결의를 해놓고 어느 시점에 결행할지만 고민해왔다. 100만 명이 나서도 꿈적하지 않는 촛불집회의 경험 때문에 패배주의가 팽배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언론장악 7대 악법과 수많은 MB 악법들을 막아내지 못하면 영원히 패배하는 것이다. 꼭 이겨야 할 싸움이다.

-구속되거나 잘리면 어떻게 하나.
△그것도 이미 각오하고 있다. 노조집행부 2선, 3선도 짜놓고 있다.

-집에 가족에게도 구속될 수 있다고 말했나.
△굳이 이야기해봐야 뭐하나. 이미 벌어진 일이고, 또 벌어지면 알게 될 일인걸….


-파업은 언제까지 하나.

△무기한이지만, 내부적으론 이번 국회 회기가 끝나는 1월 8~9일까진 일단 가는 것이다. 만일 그때까지 악법이 상정되지 않으면 파업수위를 낮추더라도,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다시 파업에 들어갈 것이다.

-오로지 법안 저지를 위한 파업 말고는 다른 방식이 없는 건가?
△물리력으로 나오면 물리력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대체법안도 준비하고 있다.

-방송과 비교하면 신문사 노조는 '지면파업'이라는 방식으로 언론악법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알리는 정도만 하고 있는데, 방송보다 파업수위가 낮은 데 대한 아쉬움은 없나?
△신문사 노조가 제작거부까지 하는 게 효과적일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오히려 매체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현 정권의 문제를 알리고 방송파업을 엄호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신문사 노조도 우리와 뜻은 하나이지만, 투쟁방식에 대한 선택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지역에서 언론노조 파업을 엄호하기 위한 촛불집회가 열린다면 참여할 의사가 있나?
△오히려 우리가 부탁하고 싶은 일이다. 다만, 30·31일에는 서울 1박2일 집회가 계획돼 있다. 그날 외에는 지역시민과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파업투쟁을 벌일 것이다.


그와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벌써 27일 새벽 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지난여름 촛불집회를 진행해왔던 지역단체들이 29일 오후 '언론노조 파업을 지키기 위한 촛불집회'를 마산 창동과 진주 가좌동에서 열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과연 이들의 파업이 '촛불, 시즌2'로 진화하는 계기가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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