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기역 선배를 오랜만에 만나 이런 얘기를 했다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촌지를 밝히는 기자 이야기다. 한 번 적어보겠다. 2000년대 초반에 들은 얘기들이니 적어도 15년은 넘었다.
첫 번째 이야기
히읗 기자한테서 들었다. 어느 기관이든 출입하는 기자들은 기자단을 구성하고 대표격으로 간사도 한 명 뽑는다. 따뜻한 봄날 기자단 간사한테 지역에 있는 한 공공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점심 한 번 같이 먹자는 얘기였다.
기자들 10명 안팎이 함께 밥을 먹었다. 그 기관에서는 대표와 국장급 간부 둘, 홍보 담당 하나 모두 넷이 나왔다. 이런 자리에 드는 돈은 당연히 해당 기관이 내었다. 그렇게 점심에다 술까지 한 잔 걸치고 돌아왔다.
다들 기분이 좋았다. 간사 한 명만 빼고 나머지 기자들은 같은 교통편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돌아온 간사는 기자들한테 봉투를 하나씩 돌렸다. 기자들은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봉투에는 현금이 7만원씩 들어 있었다.
7만원이라는 액수가 문제가 될 줄을 간사는 몰랐다. 그러나 어디에든 별난 사람은 있는 법이고 사단은 그런 사람 때문에 벌어진다. 선배급에 해당하는 기자가 한 명 있었다. 현금이 5만원이면 5만원이고 10만원이면 10만원이지 왜 하필이면 7만원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이상했던 것이다. 해당 기관 홍보 담당한테 전화해서 어째서 7만원이냐고 물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봉투마다 만원권 10장을 넣어 간사님한테 드렸는데요~~” 뒤늦게 짐작이 되었다. 간사가 봉투 10개를 하나하나 열어서 만원 짜리 지폐를 석 장씩 끄집어낸 것이다.
선배급 기자는 후배급 간사를 불러 이렇게 알아본 경과를 먼저 얘기한 다음 어떻게 할까 따져 물었다. 간사한테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다. 선배급 기자한테 잘못했다 빌고는 인당 3만원씩 원위치해야만 했다.
히읗 기자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야, 한 번 생각해 봐라. 무슨 떼돈 버는 것도 아닌데 동료한테 돌아갈 봉투를 일일이 벌려 만원짜리 석 장을 끄집어냈다. 이건 쪽팔리는 것도 아니고 불쌍한 인생이다.” 그 뒤로 그 공공기관은 간사를 통하지 않고 개별 기자한테 직접 촌지를 건네게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 이야기
비읍 기자한테서 들었다. 물론 첫 번째 이야기와 시간과 장소 등장 인물 등 배경이 모두 다르다. 촌지는 기자 개인한테만 전달되는 줄로 대부분 알고 있다. 하지만 기자단 전체 활동 경비로 사용하라고 주는 촌지도 드물게는 있었다.
이런 촌지는 기자단 간사가 받아서 보관하게 된다. 보통 해당 기관이 저녁에 술자리를 베풀고 생색을 내는 자리에서 대개 일어나는 일이다. 해당 기관의 기관장이 기자단 간사한테 돈봉투를 건네고 다른 동석자들은 박수를 치는 전달식이 행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전해진 돈봉투가 1차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는 간사 윗옷 안주머니에 멀쩡하게 들어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안주머니에는 만원 짜리 지폐 한 장만 그것도 절반으로 찢어진 채로 달랑 남아 있었다.
KBS 사진.
2차 노래방을 거치는 과정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간사는 난감했다. 어떻게 수습할 도리도 없었다. 기자실에 나가 이실직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점심 때를 넘긴 시점이었다. 어제 받은 돈이 통째 사라지고 반쪽만 남았다고…….
이렇게 간사가 털어놓는 자리에 간사와 동기급 되는 기자 한 명이 있었다. 이 기자 머리에 그날 아침에 얼핏 스쳐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 기관의 기자실에서 어떤 기자와 홍보 담당 부서 직원 한 명이 주고받은 말이었다.
직원이 기자 심부름도 해주곤 했던 시절이었다. “은행 갔다왔어?” “예,” “그래? 통장 줘 봐라.” “여기요.” “그런데 왜 99만원이지?” “아, 하나는 절반뿐이라서요. 도로 가져왔는데 드릴게요.” 퍼뜩 스치는 바가 있었다.
간사 안주머니 돈봉투에는 100만원이 들어 있었는데 이것이 다른 기자 한 명의 다른 안주머니로 순간 이동이 되면서 어떤 이유로 찢어진 절반이 그대로 남았던 것이다. 동기급 기자는 다음날 오전 순간이동을 일으킨 주인공 기자를 조용한 데로 데리고 나갔다.
“돈 돌려줘라.”
“무슨 소리야?”
“콩밥 한 번 먹어볼래?”
“갈수록 모르는 소리를 하네~~”
“만원 짜리 찢어진 게 있는데도 잡아뗄래?”
“…….”
“본 사람도 있고 들은 사람도 있다. 통장에 입금시켜준 사람도 있잖아?”
“…….”
이 또한 이렇게 해서 이틀 전에 순간이동했던 100만원이 결국 원위치하게 되었다는 결말이었다.
15년도 넘게 전에 들은 이 두 이야기가 꾸며낸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고 나는 본다. 히읗 기자와 비읍 기자 둘 다 그럴 인품은 아니다. 다만 경남에서 벌어진 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히읗 기자 비읍 기자가 이야기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훤주
'지역에서 본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두 정상회담의 성공을 바라는 두 번째 이유 (0) | 2018.05.16 |
---|---|
인민군 고위간부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이야기 (0) | 2018.04.25 |
문재인 대통령 제주 4.3추념사 전문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0) | 2018.04.03 |
사람들 복작대는 경남 고성읍내 철뚝갯벌 (0) | 2018.03.28 |
나향욱 파면과 안희정 제3 미투 반응에 대한 생각 (0) | 2018.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