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읍내에서 삼산면으로 빠져나가는 어귀에 조그만 갯벌이 있다. 주위에 갈대 억새가 우거져 있고 한가운데로 가면서 물이 고여 있어서 얼핏 보면 무슨 연못 같다.
철뚝갯벌이라고 사람들은 말하는데 앞에 붙어 있는 정식 이름은 수남유수지다. 수남은 여기 동네 이름이고 유수지(遊水池)는 물이 많아졌을 때 다른 데로 넘치지 말고 잠시 머무를 수 있도록 비워놓는 땅을 이른다.
원래는 바다와 바로 이어지는 물줄기 끝자락이었다. 지금은 차단되어서 무슨 펌프장을 통하도록만 연결되어 있다. 여기가 메워진 것은 역사가 오랜 모양이다. 철뚝갯벌이라는 이름에 그런 역사가 들어 있다.
고성 철성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학생들 가르치시다 몇 해 전 정년퇴직을 하신 김덕성 선생님은 1904년 그러니까 일제 강점 이전에 갯벌 둘레가 메워졌다고 얘기해 주었다. ‘철뚝’은 그 때 제방 위에 철길이 놓여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 했다.
흙과 모래와 자갈을 옮겨 제방을 쌓고, 그렇게 쌓은 제방 위에 철길을 깔아 흙과 모래와 자갈을 옮기고, 그렇게 옮긴 흙과 모래와 자갈로 그만큼 또 제방을 쌓고……. 그러니까 여기 나오는 철길과 철뚝은 당연히 기차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크기는 콧구멍만하지만 하는 역할은 절대 작지 않다. 사람들 많이 복작거리는 읍내와 가깝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역할들이다. 첫째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쉴 수 있는 자리가 되어 준다.
여기 갯벌은 다른 여느 갯벌과 마찬가지로 안으로 들면 그지없이 조용하고 아늑하다. 갈대와 개흙과 바닷물이 어우러지면서 빚어내는 풍경 또한 나쁘지 않다. 맨살을 드러내고 있는 주변 흙들과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가 좀은 거슬리지만.
철뚝갯벌 정취를 한결 더해주는 것이 있다. 철새들이다. 오리와 기러기들이 겨울철이면 몰려온다. 왜가리 두어 마리는 사철 드나든다. 철새들은 여기서 먹이를 찾아 먹기도 하고 고달픈 날개를 쉬기도 한다. 갈대숲 억새 덤불은 이들에게 은신처 그리고 거주처가 되어주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철새들한테 소중한 활동 거점이 되어주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오염된 주변 환경을 정화해주는 역할도 한다. 북쪽 산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물들이 마지막 머무는 데가 여기 철뚝갯벌이다. 바로 바다로 빠져나가지 않고 여기에 고여 있으면서 자연 정화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10년 전에만 해도 이 갯벌은 개발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따위 파묻어버리고 그 위에 아파트를 지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 때도 갯벌을 지키기 위하여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덕분에 시대정신이 바뀌면서 지금처럼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덕분에 3월 24일 아이들 데리고 와서 더불어 한 나절 즐겁게 노닐 수 있었다. 아이들은 신이 났고 철뚝갯벌은 오랜만에 떠들썩했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갯벌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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