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청와대 사진기자들이 중국에서 현지 경호업체 직원한테 폭행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보도매체들은 기자들이 잘못하지 않았고 억울하게 맞았다는 보도를 잇달아 내놓았다. 중국에 잘못이 있다고도 했고 우리 정부가 책임질 구석이 있다고도 했다.
그런데 독자들 반응이 놀라웠다. 옛날 같으면 신문·방송에서 보도하는 대로 독자 여론도 움직였을 것이다. 중국 쪽을 비난하고 한국 기자들을 감쌌을 것이다. 이번에 달린 댓글들은 그렇지 않았다. "맞아도 싸다"는 표현은 그래도 점잖은 편이었다. "기레기"라는 낱말도 예사로 쓰였다. 한 마디로 기자는 인간도 아닌 집단이고 존재였다.(물론 댓글이 모두 그렇지는 않았다.)
대부분 독자들은 반복되는 보도들을 보면서 사태를 제대로 파악했을 것이다. 기자들이 못할 행동을 하지도 않았고 중국이 지나치게 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댓글들은 기자가 폭행당한 데 대한 표현이 아니었다.
독자들은 말하고 싶은 바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여태 언론이 보여온 행태들에 대한 평가와 반응이 이번에 흘러넘치는 댓글로 표출되었다고 보면 적당하겠다.
독자는 더이상 보도에 휘둘리지 않는다. 독자는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존재한다. 전체적으로 보도가 어떻게 되는지 조망·관조하면서 냉정하게 평가·판단한다. 어떤 보도가 나오면 그에 대해 다른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함께 살핀다. 그렇게 해서 자기도 견해가 형성되면 능동적으로 표현한다. 기사에 댓글 달기는 기본이고 페이스북·트위터 등에 자기 의견을 쓰고 기사를 물리기도 한다. SNS가 없던 과거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실시간으로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독자들이 드디어 주인 자리를 차지했다. 주는대로 받아먹는 존재가 더이상 아니다. 여러 매체에서 다양하게 쏟아내는 기사들을 입맛과 취향에 맞게 골라서 먹는다. 마치 맛집 소개하는 것처럼 매체를 칭찬하고 비판하거나 조롱한다.
이제 겉으로만 독자를 모시는 척하고 실제론 다른 무엇을 주인으로 섬겨온 몇몇 매체들은 구제불능이다. 그렇지 않은 매체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 "'맞아도 싸다'고 적으면 '제대로 좀 해라'로 읽는다."
비슷한 시기 경남도민일보 지령 5000호 응원광고 이벤트가 있었다. 깜짝 놀랄 만큼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다. 경남 권역을 넘어 종이신문이 가닿지 않는 다른 지역 곳곳에서도 정말 다양한 분들이 손길을 내밀어 주셨다.
소름이 확 끼친다. 이번에 응원해주신 독자와 기자 폭행 기사에 댓글을 단 독자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둘 다 똑같이 주인이 보내는 메시지다. 하나는 채찍이고 하나는 당근이라는 점이 다를 따름이다. "그래도 잘한다"는 응원이 "못하면 묻어버린다"로 읽히는 아침이다.
김훤주
※ 12월 19일치 경남도민일보 데스크칼럼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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