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뉴미디어

독자가 더 똑똑한 시대, 전문성 없는 기자는 죽는다

기록하는 사람 2017. 7. 1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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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이 11일 경남도민일보에 왔다. 우리 사원들을 상대로 '디지털시대의 저널리즘-달라진 풍속도, 그리고 달라져야 할 기자들'이란 제목의 강의를 위해서였다.


그는 미첼 스티븐스 <비욘드 뉴스-지혜의 저널리즘>을 번역한 뉴미디어 분야의 전문기자다. 나는 전에도 김 소장의 강의를 두 번 들었다. 한 번은 언론진흥재단 연수에서, 한 번은 미디어오늘이 주최한 컨퍼런스에서였다. 그러나 조금씩 버전이 달랐고, 오늘 강의도 좀 더 업그레이드된 버전이었다.


강의 내용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독자들과도 공유하기 위해 여기에 올린다. 아래는 김익현 소장 강의 내용 요약과 들은 소감. 


경남도민일보에서 강의 중인 김익현 소장 @김주완


-시대가 바뀌었고, 뉴스 가치도 달라졌다.

-독자들의 뉴스 소비 패턴도 달라졌다. 과거엔 정해진 시간에 뉴스를 보거나 신문을 봤지만, 지금은 자신이 보고 싶을 때 수시로 본다.


-올드 미디어의 브랜드는 거의 실종상태다.

-구글에서 뉴스를 보는 사람보다 페이스북을 통해 보는 사람이 2015년을 기점으로 더 많아졌다.

-이는 뉴스 편집권이 언론사 데스크나 포털로부터 시민에게로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언론사 홈페이지를 방문해 거기서 기사를 선택해보지 않고, 소셜미디어에 링크된 개별기사를 클릭해 본다. (뉴스의 파편화, 편집 또는 기사 배열과 게이트키핑의 실종)

-경쟁방식도 바뀌었다. 과거엔 매체 브랜드가 영향력이 있었다면, 지금은 오로지 콘텐츠로 승부한다. (나는 가수다에서 복면가왕으로)


-출입처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맹목적인 인용보도는 최악의 기사작성법이다. 익명 취재원의 남발도 그렇다.

-단순 전달보도는 오래지 않아 로봇이 생산할 것이다. 단순 영상보도도 마찬가지다.

-분석 해설 전망기사, 즉 지혜의 저널리즘이 필요한 시대다.

-진정한 참여저널리즘에는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적인 손길이 필요하다.


-기자가 게이트키퍼인 시대는 지났다. 정의로운 기자라면 청중의 권리와 이익을 지켜주는 동반자, 바른 진실을 알려주는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

-모바일 시대 독자들이 싫어하는 건 긴 기사가 아니다. 독자들이 싫어하는 건 '쓸데없이' 긴 기사다.

-분석과 해설, 특히 ‘왜’라는 궁금증에 답할 수 있는 기사를 쓸 수 있어야 한다.


-페북에 기사 올리고 댓글에 답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전문가와 대등한 수준에서 토론할 수 있는 정도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이미 일반 시민이 기자보다 더 전문가인 경우가 많다.)

-매체 브랜드는 약화했으나, 기자 브랜드는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MCN 채널과 로펌을 보라)


※결론 : 비욘드뉴스-지혜의 저널리즘을 하려면 기자들이 더 실력과 전문성을 가져야 하고,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분석 해설해줄 수 있어야 한다.


※강의를 듣고 난 뒤 든 생각 : 내가 과연 경남도민일보라는 조직(매체 브랜드)을 벗어나 1인 미디어가 되었을 때에도 기자로서 존재가치(기자 브랜드)를 가질 수 있을까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인증샷 @김익현


다음은 예전에 읽었던 <비욘드 뉴스-지혜의 저널리즘>에서 발췌.


○ "퀄리티 저널리즘이라고 하면, 경험 있는 기자들이 사건 발생 장소로 가서 증언을 수집하고 기록을 뒤지며 뉴스원을 발굴하고, 사안을 확인, 재확인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빌 켈러 전 뉴욕타임스 편집국장


"퀄리티 저널리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신뢰할 만한 정보-검증하고, 탐사하며, 걸러내고,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분석한 뒤 적절한 형식으로 제시된 정보를 말한다." -질 에이브럼슨 전 뉴욕타임스 편집국장.


그러나 미첼 스티븐스는 <비욘드뉴스>라는 책에서 19세기부터 죽 이어져 온 저널리즘에 대한 이런 관점이 21세기에는 시대에 뒤진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저널리스트들은 그런 시대에 뒤진 저널리즘이나마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 웹 덕분에 가장 뛰어난 저널리스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단순히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알려주는 지루한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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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덕분에 가장 뛰어난 저널리스트들이 좀 더 오래되고 더 높은 수준의 소명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해 주는 기자가 아니라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대해 현명하게 설명해 주는 능력을 발휘하는 기자 말이다.


○ 우리 대부분에게는 어떤 것을 클릭하지 말하야 하는지 알아내는 매우 뛰어난 능력이 있다. 이전 세대가 어떤 책이나 신문, 잡지, 팸플릿을 사지 말아야 하는지 배웠던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우리가 웹을 배회하다가 가지 말아야 할 곳에 도달하게 되면 그 페이지를 열 때만큼이나 수월하게 브라우저 창을 닫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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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웹에 쓸모없거나 더 나쁜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것들이 충분히 많이 있을 것인가가 진짜 관심사다.(91쪽)


○ 블로거들은 받아 적고, 끼어들며, 질문하고, 세밀히 조사하며, 해체하고, 트집을 잡는 데 이미 굉장한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맞다. 그들 중 대부분은 웹에 있는 것들만 올리며 종종 자기 침실의 사적인 일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블로거들이 바지를 챙겨 입고 복도와 거리로 나와 취재를 하는 일이 절대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장담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이다.(91쪽)


○ 워싱턴의 영향력 있는 블로거로 활동하다가 《가디언》 칼럼리스트로 변신한 애너 마리 콕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한 가지는 되돌릴 수 없다. ...우리는 다시는 극소수 특권층만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던 시기로 되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저널리스트들도 마침내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93쪽)


○ 이제 전 세계는 뉴스가 거의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흘러 다닐 수 있는 거대한 하나의 마을, 선술집 혹은 커피하우스가 됐다. 뉴스가 폭발적으로 많이 공급되고 있다. ...

이런 환경에서 주요 언론사들이 자신들의 물건을 판매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세계 모든 슈퍼마켓뿐 아니라 온갖 가족 경영 식료품점과 농장들이 밀집해 있는 마을에서 식료품을 판매하려고 애쓰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그걸로도 충분히 도전(?)이 되지 않는다면 이런 비유는 어떨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든 물건을 공짜로 내다팔고 있는 상황.

일부 아마추어, 가족경영, 농장 저널리스트들은 전문 저널리스트에 비해 굉장히 중요한 이점을 갖고 있다. 그들이 보도하는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전문 지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95쪽)


○ 그들(주요 언론)은 독자들이 그 뉴스를 아직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모든 사람들이 어제 발생한 대형뉴스를 다시 얘기해 주길 원한다고 확신하는 걸까? 이 기념비적인 사건을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 같은 것을 느끼는 걸까?

...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떤 일이 발생했는지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선포하는 것이 자신들의 일이라고 계속 믿고 있다. 독일 저널리즘 학자인 오르스트 푀토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뉴스 패러다임의 시간은 이제 종말에 다다르고 있다."(102쪽)


○ 어제 뉴스로 벌 수 있는 돈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어제 뉴스는 독자를 놀라게 하고, 정보를 주며, 즐겁게 하고, 따라서 광고로 눈길을 잡아채는 능력 중 많은 부분을 상실했다. 심지어는 한두 시간 전에 발생한 뉴스로 벌 수 있는 돈조차도 많지 않다. 수백 개 다른 매체들도 역시 한두 시간 전 뉴스로 돈을 벌려고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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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 매체 광고가 가져오던 것을 벌기 위해선 온라인 페이지엔 지나치게 많은 광고를 배치해야 한다. 그렇다. 온라인 유료 장벽으로 수익을 올리는 동안 독자들을 쫓아내려 위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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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조직의 시대는 끝났다.(103쪽)


○ 뉴스는 대부분 용기 있는 신문 기자들이 홀로 어떤 것을 파헤친 결과물이 아니다. 그리고 저널리스트들은 자신들의 직업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그런 특종들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 특종은 충분할 정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베테랑 기자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는 데다 폭로를 하려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언론사로 명성이 자자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조차 매일 1면을 주요 특종 기사로 메우지는 못하고 있다.(107쪽)


○ 다행스럽게도 빠르고, 무리 없이 보도된 보통 기사들이 과잉 공급되고 있는 상황을 맞아 좀 더 명민한 기자들이 쓸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

...

우리는 물론 해석, 즉 사건의 의미를 추측하려는 사려깊고 예리한 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주요 저널리즘 기관들은 속보 경쟁에서 한 발 물러나서 그 뉴스에 대한 가장 통찰력 있는 해석을, 시간 단위가 아니라 하루 단위 속도로 생산하려고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

저널리즘은 좀 더 많은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저널리스트들은 다시 한 번 '토론과 설명'을 제공해야만 한다. 그들은 또 다시 '교사와 안내자' 역할을 갈망해야만 한다.(107쪽)


○ 어떤 마을이 슈퍼마켓, 식료품점, 농장으로 붐비고 대부분의 식품이 공짜로 유통될 때는 식품 판매 비즈니스는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다. 특급 요리사들이 하는 것처럼 그런 식품을 준비하는 좀 더 독창적이고 고품격 방법을 판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좀 더 나은 전략이다.

가장 뛰어난 전문 저널리스트들은 미식가를 위한 뉴스 해석을 준비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108쪽)


○ 뉴스를 포함한 것들이 흔히 그렇듯이 뉴스를 해석하는 이 새로운 경쟁에서도 속도가 중요하다. 우리들 중 일부는 몇몇 빠른 관점을 갈구하면서 여기 저기 클릭하고 돌아다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연은 뉴스를 보도하는 전통 경쟁과 달리 결국엔 속도가 아니라 지혜로 판가름된다.(110쪽)


○ '왜(Why)'는 항상 5w 중에서 가장 많이 요구되면서 가장 의심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 어떤 말을 했다는 보도를 뛰어넘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야기하려면 어떤 것들에 대해 좀 더 광범위하게 평가할 뿐 아니라 어떤 사람과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많은 취재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결과 '왜(Why)'는 종종 덜 논쟁적이면서 쉽게 쓸 수 있는 '어떻게(how)'로 대체된다.

하지만 이제 '누가', '무엇을', '언제' 그리고 '어디서'가 인터넷에 과다 노출되면서 싸구려로 전락함에 따라 '왜'가 더 많은 가치를 갖게 됐다. 그것을 위해선 생각을 해야만 한다. 때론 전문지식도 필요하다.

...

저널리스트들은 그들이 왜 그 말을 했을지 생각해야만 한다. 그리고 저널리스트들은 그들이 말한 것이 유효한지 어떤지를 가려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많이 알고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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