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창녕장에서 삶에 대해 생각하다

김훤주 2016. 8. 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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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군이 주최한 2016년 창녕 블로거 팸투어가 있었습니다. 7월 17일과 18일 이틀 동안이었습니다. 18일 일정은 새벽 우포늪 산책에 이어 아침을 먹고 석동 성씨고가를 둘러본 다음 창녕 장터 일대 문화재들을 탐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창녕석빙고에서부터 장터를 거쳐 술정리동삼층석탑과 하씨초가에까지 이르는 길이지요. 알려진대로 창녕장은 끝날이 3일과 8일인 날에 서는데요, 우리 경남에서는 전통시장 가운데 꽤 큰 편에 듭니다. 장이 이렇게 큰 데에는 까닭이 있기 마련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창녕군은 인구가 많은 편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6만3000명 가량 되는데, 경남에서는 함안군(6만7000명인가?) 다음으로 많습니다. 물론 옛날 40년 전에는 13만을 웃돌았으니까 그 때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요. 

그러니까 창녕 인구가 기본으로 받쳐 주니까 장이 클 수밖에 없는데, 이는 함안도 마찬가지여서 제가 둘러본 바로는 창녕 읍내장이나 함안 가야장이나 규모가 거의 비슷하게 큽니다. 물론 창녕 읍내장이나 함안 가야장이나 지역 산물이라 할 만한 것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 점은 아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분야에서 창녕이나 함안의 행정 당국에서 조금 더 눈여겨보고 세심하게 신경써야 할 대목이 충분히 있을 것도 같습니다.(창녕장은 특징을 꼽자면 민물고기가 많이 나옵니다. 낙동강을 끼고 있고 습지가 많은 덕분이겠지요.) 

민물고기 어물전입니다.

어쨌거나 이날 우리는 창녕석빙고를 눈에 담은 다음 이렇게 커다란 장터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어슬렁거렸습니다. 이리저리 돌아보고 있는데 마이크 소리가 나오는 데서 사람들이 흩어지고 모이고 하는 기미가 느껴졌습니다. 

시골장에서 요즘은 흔히 보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싶어 가 봤더니 자동차 광택제를 파는 난전이었습니다. 한동안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참 이 아저씨가 대단하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씨는 더웠습니다. 저도 땀이 삐질삐질 비어져 나왔고 그 아저씨는 오히려 저보다 조금 심한 것 같았습니다. 아저씨는 앉은 자리에서 자기 제품을 갖고 광택을 내는 시연을 해보이는데 다른 누구가 아니라 스스로가 만족스러울 때까지 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제가 사람의 속까지 들어가지는 못하니까 짐작일 뿐이지만, 이를테면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 깨끗해져서 윤이 나는데도 아저씨 광택제 묻은 목면수건 문지르는 작업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원래 나 있던 흠도 깨끗이 지워졌는데도 그랬습니다. 땀을 흘리면서 말이지요.

그러는 중에도 아저씨 얘기는 끊임없이 쏟아졌는데요, 이를테면 그것들은 집에 가져가서 어떻게 하면 좀더 효과적으로 좀더 오래 쓸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아저씨에 대해서도 흥미가 갔지만 한편으로는 그 광택제를 사고도 싶어졌습니다. 

제가 몰고 다니는 차가 백미러를 비롯해 몸통 왼편 오른편 그리고 앞뒤 가릴 것 없이 크고작은 흠집이 많이 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슨 대형마트에서 파는 제품을 갖고 닦아봤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른 사고 싶어 값이 얼마냐 물었습니다. 힐끔 쳐다보더니 웃으며 말했습니다. “쫌만 기다리 보이소. 시중서는 2만원 하는데 여서는 만원에 디립니다.” 그러면서도 돈을 받고 물건을 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얼른 돈부터 챙겼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좀 흥미로워졌습니다. 왜 저럴까? 하고 말이지요. 그랬더니 이 아저씨, 이번에는 마술을 보여주겠답니다. 처음 마술은 실제로 겹쳐보면 같은 크기인데, 그 두 개를 떼어서 나란히 놓으면 오른쪽 것이 언제나 커 보이는 도형이었습니다. 

이래저래 시범을 보이더니 곧바로 이실직고를 합니다. “이거는 내가 마술을 부린 것이 아이고예, 사람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겁니더. 그거를 갖고 한 번 재미 삼아 해 봤습니다. 하하.” 그야 저도 짐작했던 바라 실망스럽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펼쳐보이는 마술이 제 눈에는 진짜 마술이었습니다. 사람이 막고 있어도 동전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겨가기도 했습니다. 쇠젓가락을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쳐서 유리병 바닥에 구멍을 내었으며 그 구멍을 눈 깜짝할 새에 도로 매우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간단한 마술을 여럿 시연해 보이더니 그제야 제게서 돈을 1만원 받고 물건을 내어주었습니다. 내어주기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를 향해서가 아니라 거기 모여 있는 모두에게 들으라고 하는 얘기였습니다. 

“무슨 재주로 내가 유리병에 구멍을 내고 도로 매우고 하겠능교. 마술은 다 눈속임 아입니꺼. 재미로 여러분도 한 번 해 보시라고 여기 방법을 복사해 갖고 봉투에 하나씩 넣었습니다. 물건을 사시면 이것까지 같이 디립니다~~~~” 

그이는 물건을 주면서 비닐봉지를 두 개 썼습니다. 가다가 흘리면 안 된다면서 말씀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얀 봉투가 하나 꽂혀 있었습니다. 봉투 안에는 마술 부리는 방법이 적힌 종이가 들어 있었지요. 

이런 장면을 두고 어떤 사람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 날로 먹고살기가 어려워지고 경쟁이 모든 방면에서 치열해지다 보니 광택제 하나 팔아먹으면서도 별 짓을 다 하는구나~~ 이렇게 말입니다. 

이밖에 아저씨는 조그만 목각인형이나 화투짝도 갖고 있었는데요, 이것으로도 이런저런 시연을 해 보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 아저씨 모습이 되게 인상깊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어쩌면 광택제 파는 것은 정말 별일 아닐 수 있습니다. 아주 쉽고 어쩌면 대부분이 꺼리는 일거리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듯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 아저씨는 자기 물건 하나 팔아먹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설명하고 시연을 했습니다. 나아가 마술까지 익혀서 장날 거리에 나온 이들 눈길을 끌려고 했으며 그것으로도 모자라 마음 내키면 집에 돌아가 한 번 마술을 익혀 보라고 그 방법을 적어 봉투에 널어주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쩌면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좀 안 되었다는 느낌이 살짝 섞이기는 했지만, 자기 일을 진지하게 열성으로 한다는 생각, 좀 처연한 기분이 든다 싶었습니다. 아저씨는 장날 이렇게 펼쳐놓은 난전에서 해 보일 마술을 익히느라 이래저래 애를 썼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아저씨 자기 집에서 마술책에 나오는 내용을 따라 해보면서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책에서는 이래 잘 되는데 나는 왜 안 되지?' 머리를 처박고 골똘해하는 장면이 떠올려지면서, 자칫 콧날이 시큰거릴 뻔했습니다. 

저 아저씨도, 세상 여느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감당하며 지고 가야 하는 인생의 짐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테지요. 이렇듯 한 삶을 두고 지고가야 하는 짐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충분히 무거운 법이기도 하지요. 창녕 읍내장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이런 아저씨가 만나지기도 한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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