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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지막 습지 기행 : 와불능선과 뱀사골

김훤주 2013. 10. 2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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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 가을 들머리에서 지리산으로 걸음했습니다. 행정구역에 따라 나누자면 와불능선·서암정사가 있는 함양과 뱀사골이 있는 남원이 됩니다만, 이런 구분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의 지원을 받아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와 갱상도문화공동체해딴에가 함께 진행하는, '2013 경남도민 생태·역사 기행'의 마지막 프로그램입니다.

 

1. 가장 완전한 학습은 놀이에서 나온다

 

우리는 생태·역사 기행을 통해 습지의 소중함과 습지의 생명력 따위를 뚜렷하게 느끼면서도 재미(또는 즐거움)와 보람을 몸과 마음으로 누리고 담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머리로 새기는 '지식'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 반면, 몸과 마음으로 새기는 '모습'은 오래 남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짜릿함을 잘 모르지만, 몸과 마음은 짜릿함을 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날 아침 8시 30분 창원 만남의 광장을 떠난 버스가 고속도로 산청 생초 나들목을 지나 산청·함양을 나누는 엄천강 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서주마을에서부터 나름 함양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날 가장 먼제 눈에 담게 되는 '와불(臥佛) 능선'도 한두 마디 입에 올렸습니다. 지리산 능선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펼쳐지는 모양이, 진짜 '누워 있는 부처님'이라고요.

 

2. 편안하고 또 멋진 함양 와불능선

 

하지만, 10시 30분 못 미처 송전 마을 앞에 닿았을 때만 해도 미더워하지 못하는 표정이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자, 이제 멋진 와불능선을 보실 차례입니다." 했는데도, '여기 물가에 무엇 볼만한 거리가 있을라고.' 하는 투였습지요.

 

그런데 어디서 누군가 "우와!" 하는 소리를 내질렀습니다. 조금 있으니 그런 감탄이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엄천강을 보면서 조금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와불이 그림처럼 펼쳐졌던 것입니다.

 

와불능선을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앞다퉈 와불 모양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무리를 지어온 모둠별로 와불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부처님 있는 데면 어디서나 빠지지 않는, 머리를 조아리거나 하며 소원을 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와불능선이 잘 보이는 함양 휴천 송전마을 앞은 엄천강 물줄기가 지리산에서 흘러내리면서 용유담을 이루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용(龍)이 노니는(遊) 여울(潭)답게, 풍성함과 푸름, 돌과 물의 어우러짐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냥 언덕배기에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싱싱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덕분에 여기서 10분 머무는 계획은 어그러지고 말아, 30분 가까이 흐른 다음에야 버스를 타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한 일행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불능선을 모르는 사람은 온다 해도 지나치고 말겠다. 오늘 이렇게 볼 수 있었던 것도 복이다."

 

3. 서암정사는 미래 관점에서는 보는 문화재다?

 

서암정사 들머리. 오른편에 사천왕상이 있습니다.

 

이어서 서암정사로 갑니다. 서암정사는 1980년대 들어 돌을 깎고 나무를 깎아 만들기 시작해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옛날처럼 사람 손으로 낱낱이 징을 들고 망치를 들어 다듬는 그런 솜씨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를 두고 여러 사람들이 여러 비평을 하는 절간입니다. 커다란 바위에 사천왕상을 새긴 들머리부터, 부처님 여러 모습을 새긴 동굴법당, 곳곳에 들어선 어느 하나도 옛날 물건-우리가 손쉽게 '문화재'라 하는 그런 것들은 없습니다. 고대·중세는커녕 근대도 아니고 현대 제품 일색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값어치를 낮게 매깁니다. 정밀하지 못하고 얄팍하게 바위를 파고 깎아 글자와 형상을 조각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때로는 자연 경관을 망치는 노릇이라는 얘기까지도 나옵니다.

 

서암정사에는, 이렇게 앉아서 풍경을 내다보며 쉴 수 있는 자리가 곳곳에 있습니다.

 

이런 데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어쩌면 서암정사에는 50년 뒤 100년 뒤에 사람들이 문화재라 이를 만한 것들을 갖춘 절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자(亞字) 모양을 하고 있는 대웅전.

 

통일신라시대 석굴암 같은 경우는 만들어질 당시에 이미 1000년 뒤 후손들이 엄청난 문화재로 떠받들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그런 관점이 필요해졌다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콘크리트로 처발라올리는 다른 절간이나 법당과는 서암정사가 격이 다르다는 관점인 셈입니다.

 

동굴법당 들머리.

 

저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둘 다 맞거나 둘 다 그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이런 두 관점을 모두 머리에 떠올리면서 서암정사 일대를 둘러보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모습과 느낌과 생각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굴법당 안으로 불상이 보입니다. 동굴법당 앞에 있는 관세음보살상.

 

서암정사는 이런 식으로 새겼습니다.

 

와불능선서 머뭇거린 바람에 점심이 늦어졌습니다. 칠선계곡 민가 모여 있는 위쪽 추성산장에서 비빔밥을 버무려 먹었습니다. 죄다 지리산 산나물이라고 합니다. 그 심심한 맛이 오히려 혓바닥 이쪽저쪽을 간질였는지, 여기저기서 나물반찬 더 찾고  찌개 더 찾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4. 바위와 물줄기와 숲이 가장 잘 어울리는 뱀사골

 

점심 잘 먹은 일행은 버스를 타고 뱀사골로 옮겨갑니다. 뱀사골은 지리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골짜기를 통틀어도 으뜸으로 꼽히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물과 바위가 더불어 풍성합니다. 바위와 물이 어울려 곳곳에 맑은 못과 여울을 이룹니다. 또 크게 가파르지 않아 걷기에도 알맞습니다.

 

들머리서 만난 노각나무. 이만큼 자라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

 

게다가 지금은 단풍이 한창일 것입니다. 한 번 걸음해 보시면 무척 좋겠습니다. 우리 일행이 나들이한 10월 16일은 단풍이 막 들기 시작하는 들머리였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전혀 나쁘지 않고 좋았습니다.

 

멀리는 햇살이, 가까이는 그늘이.

 

단풍이 한창이면 한창인대로, 단풍이 시작되는 무렵이면 또 그런 무렵대로, 언제든 즐거움과 재미와 보람이 저마다 다른 모습과 색깔로 뿜어져 나오니까요.

 

 

먼저 말할 수 있는 즐거움은, 단풍이 들지 않았다 해도 뱀사골 자체가 아주 빼어났다는 데에 있습니다. 풍성한 물줄기와 우거진 수풀, 간간이 나타나는 사람이 여간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갓 물들기 시작하는 이파리들 하늘거림, 여전히 변함없는 소나무의 짙은 푸름도 그럴 듯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기 뱀사골도 단풍이 가장 풍성한 시점에 이르면 이번처럼 아무리 평일에 나선다 해도 골짜기가 통째로 이토록 한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어디서나 마음대로 사진도 찍고 아무 바위에나 올라 노닥거릴 수 있었습니다.

 

 

뱀사골에는 거니는 길이 두 갈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요즘 들어 닦은 듯한, 골짜기 쪽으로 바짝 붙어 나 있는 길인데요. 때로 데크를 만나고 때로 자갈이나 바위를 만나고 때로는 흙길을 만났습니다.

푸른 물과 조금씩 다른 색칠을 해 가는 나뭇잎들을 싫도록 눈에 담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 많이 가파르지도 않아 걷기도 편했습니다.

이 길을 따라 적당하게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는 위쪽에 나 있는 길을 걸었습니다. 30년 전 옛날에는 버스도 다녔을 상 싶은 콘크리트길인데요, 이 또한 엄청나게 멋졌습니다.

 

양쪽으로 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데도 있었고요, 아래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소리만 들려줄 때도 있고 소리와 모습을 함께 나타날 때도 있었습니다.

내려올 때 걸은 길.

물론 이런 뱀사골을 일러 일부러 습지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런 물줄기, 이런 물줄기로 젖어 있는 땅들-이것이 바로 습지인데요-이 곳곳에 있기에 해마다 맞이하는 가을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이를테면, 좋은 사람 곁에 없어도 충분히 즐거운 길이었습니다. 두 길이 모두 다. 어쩌면, 좋은 사람이랑 함께 나들이했다가도, 그 좋은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까먹게 만들 수도 있는 그런 골짜기였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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