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근대문화유산 찾아 진해 한 바퀴 어떨까?

김훤주 2013. 10.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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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의 빛나는 전승지 진해 


가을이다. 떠나기 좋은 철이다. 여행은 언제나 그냥 여행일 뿐 공부가 아니어서 가볍고 즐거울수록 좋다고들 한다. 근대문화유산 탐방을 겸한다 해도 여행인 이상은 무겁지 않아야 한다. 학생은 갈수록 학업에 억눌리고 어른은 또 업무에 짓밟히는 세태라 더욱이 그러해야 마땅하겠다. 


진해(창원시 진해구)를 두고 일본은 1906년부터 군항 경영에 적극 나섰다. 이는 1905년 끝난 러일전쟁과 관련돼 있다. 그해 5월 27일 새벽 진해항 가덕 수로에서 주력이 발진한 일본 연합함대는 이틀에 걸쳐 러시아 발틱함대에 치명상을 입히고(쓰시마해전) 결국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다. 


중원로터리에서 바라본 제황산.


이로써 진해 일대는 일본 해군의 빛나는 전승지가 됐다. 일제가 1927년 제황산(중앙동 10-2) 꼭대기에 높이 34.85m 러일전쟁전승기념탑을 세운 까닭이 여기 있다. 높이는 90m밖에 안 되지만 일대 시가지와 전승지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데가 제황산이다. 


2. 러일전쟁전승기념탑 헐어낸 자리에 들어선 진해탑 


해방 이후 헐어내 지금은 없다. 대신 1967년 군함 마스트를 본따 세운 높이 28m 진해탑이 있다. 2층에 작은 박물관이, 9층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다. 


제황산은 모노레일로 올라도 되고 계단으로도 오를 수 있다. 계단은 모두 365개여서 ‘1년계단’이라 한다. 집안 식구나 청춘남녀끼리 오르내리면서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기 안성맞춤이다. 

진해탑.

2009년 설치된 모노레일 탑승료는 편도 2000원, 왕복 3000원이다. 진해탑 전망대에서는 바로 앞에 중원로터리가 내려다보인다. 


일제가 1912년부터 지금은 사라진 오래된 팽나무를 한가운데 놓고 여덟 갈래로 길을 냈다. 일본 침략의 상징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기록을 잘 남기는 일제인데도 여기를 욱일승천기를 본떠 만들었다는 문서는 여태 확인되지 않았다. 


3. 진해 방사상 도로와 욱일승천기의 관계 


오히려 이런 방사상 도로 구조가 당대 가장 효과적인 교통망으로 여겨졌기 때문으로 봐야 합당하다. 1853~70년 건설된 프랑스 파리 신시가지도 개선문을 중심으로 열두 갈래 도로가 닦였으며 미국 수도 워싱턴DC에도 방사상 도로가 자리잡고 있다. 


진해탑 전망대에서 본 중원로터리.


1896년 대한제국 정부가 주도한 한양(=서울) 도시개조사업도 그렇다. 남쪽 백성을 향해 북쪽 궁궐이 동서로 늘어서 있는 구조를 궁궐을 가운데 두고 방사상 구조로 바꾸는 작업이었는데, 미국 워싱턴DC가 모델이었다고 한다. 


일제 영향이 아니라 방사상 구조가 효율적인 유통을 담보한다고 본 결과였다. 진해에는 방사상 도로가 두 군데 더 있다. 남원로터리는 진해탑에서 볼 때 중원로터리에서 9시 방향 330m 지점에 있고 북원로터리는 1시30분 방향 510m 지점에 있다. 


진해 근대문화유산 탐방은 진해탑→중원로터리→일본식 가옥거리→남원로터리→요항부 병원장 관사·장옥거리→북원로터리 이렇게 이어진다. 


장옥거리.


4. 세워진 지 100년 넘은 진해우체국 


중원로터리 바로 못 미쳐 왼편에 진해우체국(통신동 1)이 있다. 1912년 준공돼 2000년까지 우체국으로 쓰였다. 로터리 쪽에 정문을 낸 사다리꼴 목조건물로, 처음은 좁지만 들어갈수록 넓어지는 구조다. 사적 291호인데 개방도 않고 업무에도 못 쓸 정도로 낡았다. 



맞은편 아이세상 장난감도서관(옛 진해도서관)에는, 아마도 우리나라에 하나뿐일 ‘10월유신기념탑’이 있다. 1973년 옛 육군대학 앞 삼거리(관문교차로)에 들어섰다 1976년 지금 자리로 옮겨왔다.



남학생·남성·여성·해군 등 4명이 유신헌법을 떠받들었다. 앞에 ‘10월유신기념탑’이라 새겨져 있지만 대부분은 모르고 무심히 지나친다. 


5. 진해군항마을역사관과 문화공간 흑백 


로터리를 가로지르면 진해군항마을역사관(대천동 2-9, 일요일·공휴일 휴무)이 나온다. 노인정을 탈바꿈시켜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진해에서 근대문화유산을 살펴볼 수 있는 하나뿐인 공공시설이다. 



백범 김구가 진해 유지들과 찍은 사진 등 1920~90년대 사진들이 주제별로 나뉘어 있고 재봉틀·전화기처럼 주민들 옛적 생활용품도 있다. 역사관 옆에는 찻집 ‘행복한 향기’가, 그 옆 복개천에는 ‘군항역사 테마거리’가 있다. 


역사관을 끼고 돌면 ‘문화공간 흑백’이 나온다. 지역화가 유택렬(1924~99)은 1955년 음악다방 ‘카르멘’을 사들여 ‘흑백’으로 상호를 바꿨다. 흑백다방은 이중섭·윤이상·조두남·유치환·김춘수·전혁림 같은 지역 문예인 사랑방 구실을 했다. 


문화공간 흑백 들머리.


다방 영업은 접었지만 정기 공연이 토요일에 이어진다. 들머리에는 주인인 유 화백의 딸 경아씨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경아씨(blog.naver.com/bechstein)는 흑백을 필요한 이들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6. 유서 깊은 새 수양회관과 원해루 



다시 돌아 길을 건너면 모퉁이에 1938년 지어진 3층짜리 팔각정(대천동 1-9)이 있다. 일제 강점기 초소로 쓰이더니 요정이 들어섰다가 지금은 ‘새 수양회관’이라는 밥집으로 바뀌었다. 이름은 팔각정이지만 실제는 원래부터 육각정이다. 


그 길 건너편 모퉁이에는 중국집 元海樓(원해루)가 있다. 한국전쟁 중공군 포로였던 장철현씨가 1956년 榮海樓(영해루)로 장사를 시작했다. 지금도 가게 양옆에 세로로 달려 있는 나무간판에는 ‘榮海樓’라 쓰여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종종 찾은 곳이다. 정면 간판 둘 가운데 위쪽은 1956년 것이라 아주 낡았다. ‘YOUNG HAE RU’라 붙였다 떨어진 표시도 나고 전화는 국번이 ‘2’로 돼 있다. 그런데 지붕 장식은 신화 속 존재 삼족오다. 지금은 80년대 초반 인수한 화교 진금재씨가 주인이다. 


7. 백범이 충무공과 만나는 남원로터리 


제황산쪽에서 중원로터리 12시 방향으로는 일본식 가옥 거리가 이어진다. 1920~40년대 단층 건물이 줄이어 있는데 옛날 느낌과 지금 냄새가 함께 나는 고즈넉한 거리다. 끝나는 데서 왼편으로 가면 한가운데 ‘백범 김구 선생 친필 시비’가 있는 남원로터리와 만난다. 


일본식 가옥거리.


1946년 진해를 찾은 백범은 이순신 장군 ‘진중음(陣中吟)’에 나오는 글귀 ‘誓海魚龍動 盟山艸木知(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를 써 남겼다. ‘바다에 맹세하니 고기와 용이 움직이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 


백범 김구 친필 시비.


충무공과 백범이, 시대를 넘어 당대 국난 타개를 위한 다짐에서 합일하는 순간이라 하겠다. 


8. 등록문화재인 선학곰탕


남원로터리에서 중원로터리쪽으로 가다 오른편 첫 번째 골목길을 50m쯤 가면 오른편에 ‘仙鶴(선학)곰탕’ 간판이 나온다. 1912년에 지은 진해요항부 해군병원장 관사다. 



복도는 흘러간 세월만큼 삐걱대는 소리를 내고 괘종시계·축음기·전화기도 그대로 있다. 정각이 되면 ‘댕댕’ 울리기까지 한다. 옛것의 값어치를 알아보고 없애지 않은 주인의 안목이 고맙다. 


등록문화재 193호인데 들어가 구경해도 괜찮지만 밥 한 그릇은 사 먹어야 이치에 맞다. 다시 길 따라 걷다 왼편으로 꺾어들면 진해우체국까지 장옥(場屋)거리가 이어진다. 


9. 이순신 전승지이기도 한 진해 


마지막 북원로터리에는 1952년 우리나라서 처음 만들어진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 서울 광화문 충무공 동상이 내뿜는 서슬 퍼런 강단은 없다. 부드러움은 더하고 풍채도 당당하다. 


앞에 ‘忠武公 李舜臣像(충무공 이순신상)’이 적혀 있는데 그 왼쪽 아래에 지워진 자취가 있다. ‘李承晩 謹書(이승만 근서)’다. 뒤에 찬문은 이은상 짓고 손재형 쓰고 윤효중 새겼다. 



진해는 이렇듯 일제 강점의 역사도 새겨져 있지만 이순신 장군 전승지이기도 하다. 충무공은 이 곳 진해에서 임진왜란 첫 해 합포해전(5월 7일)·안골포해전(7월 10일)과 이듬해 웅포해전(2~3월)을 치렀고 모두 이겼다. 


진해는 군항제가 열리는 봄 한 철을 빼면 느낌이 느릿느릿하고 한가롭다. 근대문화유산 탐방을 겸한 진해 나들이는 이런 여유를 즐기는 여정이다. 


길가 나무그늘에 자리 펴고 나앉은 ‘영감 할매’들, 뜻밖에 친절하시다. 거리를 거닐다 만나지거든, 그냥 지나치지 말고 말이라도 한 마디 걸어보시라. 


△찾아가는 길 


서울서 진해시외버스터미널로 오는 고속버스는 남부터미널에서 08:20 09:50 11:30 13:00 14:30 15:40 16:30 17:30 18:30 20:00 23:10(심야)에 있다. 진해시외버스터미널→서울남부터미널 버스는 06:00 07:30 09:00 10:00 11:00 12:30 14:00 15:30 17:00 18:30 20:00 23:00(심야)에 있다.


시간대와 승차장소가 마땅찮거든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마산고속버스터미널로 오는 버스를 타면 된다. 아침부터 밤까지 20~40분 간격으로 다닌다. 


열차를 타면 마산역에서 내려야 시내버스를 이어 타기가 좋다. 항공편은 권하고 싶지 않다. 리무진버스를 비롯한 연계 교통편이 좋지 못하다. 


시내버스는 마산역 앞과 마산고속버스터미널 맞은편에서 162번을 타면 된다. 자가용 자동차로는 부산 쪽에서 오는 때는 동마산 나들목, 그렇지 않은 경우는 서마산 나들목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둘레 맛집 



근대문화유산 탐방을 겸한 진해 나들이라면 다른 맛집을 따로 찾지 않아도 된다.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선학곰탕·원해루·새수양회관 세 군데가 밥집 영업을 하고 있다. 


◇선학곰탕=곰탕 8000원, 안거미 1만 5000원, 된장 6000원, 수육 1만 8000원(소)·2만 3000원(대). 근화동 16, 055-543-6969. 


◇원해루=짜장면 4000원, 우동 4000원, 짬뽕 4500원, 삼선짜장 6000원, 중국식냉면 6000원, 볶음밥 4500원, 잡채밥 5000원, 탕수육 1만 7000원 등. 광화동 4, 055-546-3066. 


◇새 수양회관=갈비탕 7000원, 육개장 6000원, 비빔밥 6000원, 김치찌개 6000원, 곱창전골 1만원. 대천동 1-9, 055-545-1268~69 


◇동호횟집=피조개·새조개·해삼·멍게·낙지 5만~3만원, 자연산 모둠회 10만~5만원, 모둠회 6만~4만원, 도다리·통마리·돔류 시가, 생우럭 매운탕 3만원, 매운탕 5000원, 회덮밥 1만원. 제황산동 24-21, 055-543-9933 


◇이대포=점심특선·생선구이정식·돼지불고기정식(2인 이상) 6000원, 해물파전·명태전·고갈비 7000원, 꼬막무침·털게·가오리회무침·고추장불고기·골뱅이회무침·도루묵조림·동태찌개·아구내장수육·병어회·돼지껍데기·생선모둠 1만 원, 호래기회·잡어매운탕 1만 5000원, 삼겹수육·과메기 2만 원, 바지락칼국수 5000원. 경화동 945-8, 055-551-3186 


◇목화냉면 = 밀면 5000원, 밀비빔 5500원, 물냉면 6000원, 비빔냉면 6500원, 해물칼국수 6000원, 해물짬뽕 6500원, 고기만두 4000원. 충무동 25-40, 055-546-4122 


△그밖에 둘레 볼거리 


◇김달진문학관=스님이자 한학자인 김달진(1907~1989)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 옆에는 생가가 있다. 물욕 없이 깨끗하게 살다 간 시인의 생가 마당을 천천히 거닐면 위로를 받는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공휴일·월요일 휴무, 소사동 43, 055-527-2623. 


김달진 생가.


◇김씨박물관=진해 근대문화유산 등을 수집·연구하는 김현철씨가 꾸리는 ‘추억의 박물관’. 김씨 딸이 주인인 찻집 ‘콩트’에서는 담백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 김달진 시인 생가랑 닿아 있고 곰탁곰탁 둘러보는 재미가 구석구석 숨어 있다. 소사동 49-1. 


김씨박물관 내부.


◇경화동 안민고개와 경화역 일대, 여좌동 여좌천 일대 봄에는 벚꽃이 엄청나게 피어나 군항제 즈음에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초여름에는 나무그늘이 좋고 가을에는 단풍이 그럴 듯하다. 긴의자에 앉아 쉬기도 좋고 가볍게 거닐기도 괜찮다. 여좌천에는 널리 알려진 로망스다리(여좌동 761-4)가 있다.


안민고개 벚나무 그늘.


김훤주 


※ <시사인> 2013년 추석 특집호 별책 부록으로 실린 글을 ‘그야말로’ 조금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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