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밀양서 보면 박근혜나 김정은이나 같다

김훤주 2013. 10. 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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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민 생명과 재산 보호가 국가 기본 임무


근대 이후로 모든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기본 임무로 하고 있습니다. 근대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봉건국가나 고대국가는 그 나라를 지배하는 왕조의 재산과 생명 보호에 으뜸 가치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근대 이후이면서도 그러하지 않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국경선을 맞대고 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대한민국이 그것입니다. 북한이 그러하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알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배집단이 그 구성원을 굶어 죽게 만들고 인권이 땅에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세계 대부분 사람들이 반대하는데도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에는 가능한 모든 역량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국가가 권력을 동원해 국민의 생명을 없애고 재산을 빼앗은 역사가 많습니다. 멀리는 이승만의 보도연맹사건이 있고 가까이는 전두환의 광주 학살이 있습니다. 더 가까이는 이명박의 용산참사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고 자주 일어났는지는 해당 분야를 공부하는 역사학자에게 알아보는 편이 훨씬 낫고 빠를 테니 저는 여기에다 사법 살인을 비롯한 갖은 방법을 써먹은 박정희 또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는 정도만 덧붙이겠습니다. 


2. 반대 주민 한 사람에 경찰도 한 사람씩 배치된 밀양


국가 권력이 나서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없애는 일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 밀양입니다. 무기를 직접 동원하지 않았을 뿐 나머지 사정은 똑같습니다. 765kv 초고압 송전탑을 설치하려고 경찰 3000명을 투입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3000명이라……. 숫자로 적어놓고 보면 별로 실감도 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비교해 보면 얼마나 많은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한전은 추석 직전에 밀양시 청도·단장·상동·산외·부북면 다섯 개 면 서른 개 마을 가운데 열다섯 마을이 송전탑 설치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이는 나중에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가 사실과 다르다는 반박을 당하게 되지만, 이 때 함께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북·단장·상동·산외면의 스물일곱 마을 주민이 3476명으로 돼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대책위 주장을 따르면 부북·단장·상동·산외면의 스물일곱 마을 주민 가운데 실제 거주자 1870명, 토지 소유자 339명을 합해 2209명과 상속 대상자 753명 등 2962명이 반대 서명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반대하는 주민마다 한 명꼴로 경찰을 배치한 셈입니다. 


3. 송전탑 설치 강행 이유도 엉터리로 대고


이렇게 밀어붙이는 까닭도 엉터리로 대고 있습니다. 한전 사장 조환익은 '밀양 송전선로 공사 재개에 따른 호소문'에서 "신고리 3·4호기의 준공에 대비하고 내년 여름 이후 전력 수급의 안정을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하지만, 올 여름을 한 번 돌아보면, 전력 수급이 어려우리라 예상이 됐던 까닭은 어디에 있는지 누구나 다 압니다. 가동되던 핵발전소가 고장이 났거나 다른 까닭으로 멈춰섰기 때문이지요. 부품을 엉터리로 써서 관련된 여러 사람이 구속되기까지 한 일도 있었습니다. 


내년 6월 준공 예정인 신고리 4호기는 일단 미뤄두고 올해 말 준공 예정이었던 신고리 3호기를 한 번 보겠습니다. 지난 5월 정부는 신고리 3호기가 12월 완공돼 내년부터 상업운전에 들어가는데 그러려면 지금 당장 송전탑이 설치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준공 시기는 곧바로 내년 3월로 늦춰졌습니다.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부품·기기들이 신고리 3호기 원전 건설에 사용됐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신고리 3호기에 설치된 JS전선의 제어케이블과 (주) 우진의 조립케이블 등에 대한 대한 시험성적서가 위조됐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던 것입니다. 


엉터리 부품을 갈아 끼우고 다시 시험을 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시일이 더 걸리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조차 지켜지지 않게 됐습니다. 지난 9월 한국수력원자력이 밝힌 자료입니다. 엉터리 부품들에 대한 재시험 결과가 합격으로 나와도 내년 8월 준공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합격이 아니라 불합격 판정이 나오기라도 하면 기기 검증 자체에만도 1년 넘게 걸리기 때문에 2015년 들어서야 가동될 개연성도 없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한전이 이토록 서둘러 설치를 하려 할 까닭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시간을 두고 주민 얘기대로 대안을 찾아야 마땅합니다.


너덜까지 지켜야 하는 주민들. 경남도민일보 사진.


4월에는 신고리 3호기 상업 운전을 서두르는 까닭이 전력난 때문이 아니라 핵발전 시설 수출을 위해서임이 밝혀지기도 했었습니다. 한전이 아랍에미리트에 원전 시설 4개를 수출하면서 그 계약서에 동일 모델인 신고리 3호기를 때맞춰 건설해 보임으로써 안정성을 입증하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대한민국 정부는 그 구성원을 상대로 뻔질나게 거짓말을 해댑니다. 이 거짓말을 갖고 대다수 국민들을 속입니다. 또 그렇게 형성된 여론을 바탕으로 삼아 이렇듯 밀양 주민들을 토끼몰이하듯 몰아붙입니다. 


4. 박근혜 쪼아붙이자 장관 총리 청장 사장까지 야단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한겨레신문은 10월 1일치 6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5월 28일 국무회의에서 '시작된 지가 벌써 7~8년이나 됐는데 그 세월 동안 뭘 하고 있었느냐는 얘기를 듣게 된다'며 질책"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왼쪽이 청장. 경남도민일보 사진.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차관이 잇따라 밀양을 찾았고 한전 조환익 사장은 여름휴가를 밀양에서 보내며 주민들과 만났습니다. 9월 11일에는 국무총리까지 밀양에 와서 금품 보상안을 내놓았으며 26일에는 경찰청장도 현장을 찾았습니다. 


국가가 터무니 없는 까닭을 대며 갖은 권력을 동원해 반대 주민들을 없애고 송전탑 설치를 하고야 말겠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통령과 장관도 국무총리도 한전 사장도 경찰청장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가의 기본 임무는 손톱만큼도 생각지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대한민국은 분명히 국가가 아닙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마찬가지로 국가라 할 수 없는 야만의 수준에 난폭한 모습으로 있습니다. 밀양에서 보면 북한의 김정은이나 한국의 박근혜나 하나 다르지 않고 같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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