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시내버스로 보는 마산 바다와 드라마세트장

김훤주 2011. 8. 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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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바다는 모두 죽거나 사라진 줄 알지만 실은 아니지요. 꽤 망가지기는 했어도 쓸모 있고 아름다운 바닷가가 여전히 많답니다.

물론 옛 창원은 봉암갯벌을 빼면 성한 해안이 없고 옛 진해 또한 신항만 어쩌고 조선소 저쩌고 하는 통에 대부분 원형을 잃은 해안입니다. 하지만 옛 마산은 다릅니다.

일제강점기 사라진 월포해수욕장에 이어 가포·광암까지 결국 폐쇄돼 해수욕장은 하나 남지 않았고, 마산자유무역지역과 하수종말처리장을 비롯해 갖은 공장과 집들에게 파먹혔지만 구산·진동·진전면 일대는 대부분 갯벌이 싱싱합니다.


해안선이 그다지 다치지 않아 보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바닷물이 더럽지 않아 물풀이 무성하고 덕분에 여러 물고기들이 알을 낳아 이른바 '수산자원'이 메마르지 않게 하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이런 해안선과 갯벌은 적어도 경남에는 더 없습니다. 아직도 몇몇은 이 갯벌을 매립하고 거기에 산업단지 따위를 짓지 못해 안달을 부리지만, 오히려 마산어시장에서 출발해 마창대교를 지나 구산·진동·진전 바다를 거쳐 고성군 당항포와 동해면 일대를 아우르는 유람선을 띄우는 편이 어쩌면 훨씬 실속있는 마산살리기일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이런 해안선과 갯벌을 몸소 누리고 느끼게 해주는 시내버스가 있습니다. 서로 마주보고 순환하는 63번과 64번이 그것이랍니다. 진동면 광암~구산면 욱곡 해안을 누비는데, 가운데쯤 석곡 마을에 해양드라마세트장까지 마련돼 있어 눈맛이 한결 다양해졌습니다.


소답동 기점을 정오에 출발한 64번 시내버스를 17일 낮 12시 54분 진동 환승장에서 받아 탔습니다. 좁은 진동시장 거리를 지난 버스가 광암 선창에서부터는 바닷가에 바짝 붙어 꼬불꼬불한 길을 달립니다.

버스에 타고 있는 '아지매'들. 어시장에 어물 내다팔고 들어오는 길입니다.


때로는 양쪽 모두 산으로 가려지기도 하지만 오른편 차창으로 바다가 비치는 때도 적지 않습니다. 바깥에는 바람이 장하게 부는지 풀들은 자빠졌다 일어나기 바빴고요, 나뭇잎들은 온 몸을 뒤집으며 하늘대고 있습니다.

다구 마을을 지날 때 퍼뜩 찍었습니다. 왼쪽 나무가 휘날리고 있습니다.

다시 찾아가 찍은 다구 마을 풍경. 흔들리지는 않았습니다.


해양드라마세트장 다음 정류장이 종점인 명주 마을입니다. 종점이라 해도 기사가 잠시 내려 이런저런 볼일을 본 다음 바로 출발하니 보통 정류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손님들도 다 내리지는 않는답니다. 온 길로 되짚어 나가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순환 노선인 까닭이지요. 이들은 아마도 앞에 나올 욱곡이나 내포, 옥계, 수정 같은 마을서 내리기 십상입니다.

차창으로 보이는 마산 바닷가. 물론 실제가 훨씬 낫습니다.

시내버스 종점 풍경.


어쨌거나 종점에서 내려 지난해 텔레비전 드라마 <김수로>를 찍느라 만든 해양드라마세트장으로 갔습니다. 한 600m 되는 거리입니다. 바람을 느끼고 싶었는데 때맞춰 바람이 불어줘서 고마웠습니다. 세트장은 단순했습니다. 모두 나무로 지어졌고 지붕조차 나무로 이었습니다.


맞은편 바다에는 드라마 제작에 쓰이는 듯한 배가 몇 척 떠 있습니다. 한 굽이 돌면 저잣거리가 나옵니다. 쇠를 벼리는 대장간도 있고 과일을 파는 가게도 있습니다. 여기 놓인 소품들도 하나같지 않고 다들 조금씩 달랐습니다. 꽤 신경을 써서 만들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대충 눈요기를 하고는 돌아나왔습니다. 주린 배를 채울 차례입지요. 여기 돌장어가 좋다는 풍월을 들은 적이 있는지라 횟집 말고 구이집으로 들었습니다. '성호네'(010-7652-5233)였습니다.

어떻게 파시는지 물었더니 kg당 3만 원이라 했습니다. 혼자 먹기는 버거운 분량인지라 절반만 파실 수 없는지 다시 물었더니 '숯불도 피아야 하는데 시장시러바서……'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딴은 그렇겠다 싶었습니다. 먹고 남으면 가져 가야지 마음먹고는 1kg을 주문했습니다.


뼈만 추리고 통째로 가져온 돌장어도 좋았지만 반찬은 더 좋았습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했거든요. 간장에 절인 고구마 잎사귀·노각·정구지 따위도 좋았고 배추김치도 짜거나 맵지 않았습니다. 생강도 여느 가게와 달리 맛이 살아 있었습니다.

상치는 주지 않았습니다.

밑반찬이 담백했습니다.


쌈이 깻잎밖에 안 나오기에 상추도 달라 했더니 '밭에서 비가 자주 내려 녹아버렸다'면서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운고추라도 좀 달라 했더니 그 집 어린 따님이 옆에 밭에서 바로 따다 줬습니다. 아직 풋것이었지만 싱그러워 좋았습니다.

고추를 따고 있는 그 집 어린 따님.


숯불도 좋았습니다. 흔히 쓰는 값싼 압착숯 대신 참숯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왔습니다. 구색은 갖추지 못했다 해도 출신이 뚜렷한 먹을거리라 믿음이 갔습니다. 소주와 맥주를 적당히 말아 먹고 남은 돌장어를 챙겼습니다. 마지막 장어국은 또 공짜였습니다. 이런 정도면 기대 이상 대박이겠습니다.

장어국.


오후 4시 40분 종점에서 64번을 탔습니다. 버스는 욱곡으로 해서 수정 마을로 넘어간답니다. 여기 바다는 마산만의 특색을 오롯이 띠고 있습니다.

양쪽 산들이 둘러선 가운데 바다에는 점점이 섬들이 떠 있습니다. 섬들은 뭍에서 바라볼 때 겹쳐 있습니다. 여기 바다가 바다가 아닌 커다란 호수처럼 보이는 까닭이랍니다. 게다가 물결까지 잔잔하지요.


욱곡~명주~해양드라마세트장 6km 거리는, 더 나아가 고개 넘어 도만 마을과 다구 마을을 거쳐 진동 광암항까지 이르는 해안로는, 날씨 선선한 가을이라면 한 번 걸어도 훌륭한 길입니다. 다구 마을 위에는 임진왜란 당시 평민 의병장 제말 장군 무덤이 있는데, 거기서 내려다보는 마을 어항도 퍽 아름답습니다.


김훤주

해양드라마세트장 표시가 잘못됐습니다. 미안합니다. 종점 명주에서 제말장군무덤 있는 쪽으로 가다 산을 넘는 지점에서 바다로 가면 해양드라마세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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