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사람이야기

송미영 이야기(2)떠돌이 막노동꾼을 내 남자로 선택하다

기록하는 사람 2011. 6. 2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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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씨의 남편 김도연(43) 씨는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한 조선업체의 하청업체, 거기서도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돈내기(도급제)'로 일한다. 그래도 나름 '기술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조선업계의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미영 씨의 피같은 돈 5000만 원을 떼먹고 달아난 사기꾼 덕분(?)이었다.

"내가 용접을 해봤잖아요. 용접은 더 이상 기술이 아니더라고요. 대신 설계도면을 보는 게 진짜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송미영 씨가 남편을 기술자로 키워야 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쯤 사기꾼이 접근해왔다. 조선기술을 배우면 남편을 호주의 조선소에 취직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귀가 솔깃했다. 그 때 남편 도연 씨는 남의 식당에서 음식 배달을 하고 있었다.

사기꾼은 도연 씨를 진해의 조선 협력업체에 소개해줬다. 월 100만 원밖에 못받는 비정규직이었지만, 기술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일했다. 사기꾼은 진해의 미군부대 지붕 보수공사를 한다며 책자도 보여주곤 했다. 공사를 수주했는데 공사대금이 필요하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빌려준 돈이 2000, 3000, 4000만 원으로 불어났다. 사기라는 걸 알게 됐을 때는 5000만 원에 이르렀다. 사기라는 게 알고 보면 그 때서야 정말 어이없이 당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미영 씨도 그랬다.

"남편을 좋은 데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제가 눈이 멀었어요. 그러고 나서 남편은 일주일 내내 술만 마셨어요. 나중에는 그 충격 때문에 앞니가 다 빠져버렸어요."

남편 도연 씨는 어이없는 사기에 넘어간 아내를 탓하거나 원망하진 않았을까?


"그런 건 하나도 없었지요. 오히려 자기가 미안하니까 '우짜꼬? 이혼할래?' 막 이러더라고. 이기 뭔 소리고? 어허~, 사람 안 부러지면 되지, 돈 부러진 거야 또 벌면 되고…."

천생연분이다.

"흐흐흐흥~" 사람좋아 보이는 웃음소리가 특징인 남편 김도연 씨. 그의 머리 뒤로 설핏 가야금이 보인다.


둘이 처음 만난 건 미영 씨가 스물 세 살 되던 해 겨울, 마산 내서읍 중리에서 미장원을 하고 있을 때였다. 경북 구미 출신인 도연 씨는 전국의 건설현장을 떠돌아다니며 '노가다' 일을 하는 스물 네 살 청년이었다. 그 때도 중리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일하며 컨테이너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더벅머리 남자가 덜컹거리는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머리를 깎으러 왔던 그 남자는 "돈 많이 벌텐데, 문이나 좀 고치지 뭐하요?"라고 툴툴거렸다. 그는 건설현장에서 익힌 솜씨로 덜컹거리는 문을 고쳐줬다.

며칠 후 눈이 펄펄 내리던 날 그 남자는 데이트 신청을 했다.

"처음 봤을 때 느낌이 딱 오데요. 키도 작잖아요. 보통 여자 같으면 커 보이려고 뾰족구두도 신고 그럴텐데 운동화 딱 신고, 야무져 보이더라고요."

미영 씨도 그가 마음에 들었다.

"눈 오는 날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오라고 했더니 한 겨울에 고무신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왔데요. 완전 노가다였지만, 아! 이 사람이라면 우리 아버지와 동생들을 받아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영 씨 아버지는 어릴 때 포탄을 갖고 놀다가 폭발사고를 당해 양 팔이 없고 두 눈도 보이지 않는 중증장애인이다. 아내와 함께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구걸 행각으로 돈을 벌었다. 미영 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객지로 떠난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해 내서읍의 한 경노당에 기숙하며 동생들을 키웠다. 부모가 있었지만, 사실상 소녀가장이었던 셈이다.

도연 씨도 부모는 있었지만 두 분이 이혼한 상태였다. 사실상 고아나 다름없었다. 떠돌아 다니는 직업도 어쩌면 미영 씨의 아버지와 닮았다. 그런 점에 동질감을 느낀 걸까?

"제가 먼저 도연 씨에게 청혼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그러니까 '시간을 달라'고 하더군요."

"그 때만 해도 스물 너댓살 때였잖아요. 놀러 다니기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그럴 때잖아요. 이런 여자와 살게 되면 모든 것 싹 정리하고 옳게 살아야지 그냥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결혼하자고 하니 좀 망설여졌던 거죠. 실제 결혼 뒤에도 그 때문에 제가 애를 좀 먹였죠."

아버지는 부잣집 아들에게 딸을 시집 보내고 싶었지만, 미영 씨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도연 씨를 택했다.

결혼 후 미영 씨는 시집살이를 자청했다. 신랑 도연 씨는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를 싫어했지만 "천륜이란 그런 게 아니다"며 미영 씨가 설득했다.

경북 구미시의 시댁이라고 가봤더니 낙동강변의 시골에 있는 무허가 판잣집이었다. 구미시내에 미장원을 내고, 경비원으로 3교대를 하는 시아버지를 모셨다. 새벽에 미장원에 나가 파김치가 되어 밤늦게 돌아오면, 새벽 2시에 퇴근하는 시아버지의 식사를 챙겨드려야 했다.

남편은 친구가 어찌나 많은지 매일같이 술을 마셔 집에 들어오는 날이 거의 없었다. 물론 돈도 갖다주지 않았다.


그렇게 1년 반만에 미영 씨가 번 돈으로 판잣집 생활을 청산하고 2층 전셋집을 얻었다. 하루 두 세 시간만 자며 일한 결과였다. 그런 탓인지 몸무게가 42kg로 줄어 있었다. 뼈만 앙상한 몰골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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