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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여섯 혜영씨는 왜 숨졌나(하)

기록하는 사람 2008. 11. 1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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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너무 일찍 인생의 쓰라림을 알아버린, 그래서 오직 일과 공부에만 매달리다 허망하게 숨져야 했던 한 여성의 짧은 삶에 대한 세 번째 이야기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이제 우리도 혜영씨와 이별하려 한다.

◇요절 시인 키츠를 좋아했던 그녀 = 여고 졸업과 함께 아버지를 잃고 이미 합격한 대학 진학마저 포기했던 혜영씨. 그 후 4년은 전자제품 제조업체의 여성노동자로, 다시 4년은 아르바이트 비정규 노동자 겸 단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던 대학생이었다.

그러면서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어린 남동생을 부양하는 가장까지, 1인 3역을 마다하지 않았던 혜영씨의 짧은 삶은 공교롭게도 그녀가 좋아했던 영국의 요절 시인 키츠(1795~1821)와 닮아 있었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도 그랬고,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린 나이에 동생을 위해 생업 전선에 나선 것도 같았다.

"누나라기 보다는 제2의 엄마와 같았어요. 힘든 일도 모두 누나와 의논했죠. 자기도 힘들면서 동생의 철없는 방황까지 이해하고 감싸줬던 누나였어요. 처음으로 정규직 사원이 되었다고…, 정말 열심히 할 거라고 그랬는데…."

남동생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엄마같은 누나를 잃은 그는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 때문에 몸담고 있던 군부대에서 중사 승진시험에 합격하고도 탈락했다. 자포자기한 그는 군복마저 벗고 말았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의 방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혜영씨의 사진들.


혜영씨를 잃은 그의 집안은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전화를 걸어오던 혜영씨의 학교친구들도 어머니가 매번 전화통을 붙들고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연락을 끊었다. 혜영씨가 재직했던 회사 사람들은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고,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근로복지공단의 입장도 요지부동이었다.

혜영씨의 마지막 월급까지 보태 변호사를 선임해봤지만, 1심 법원은 "망인이 과중한 업무로 인하여 사고 당시 과로한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하더라도 … 이와 같은 운전행위에 따른 망인의 사망은 그 업무수행에 기인된 과로에 통상 수반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어려운 말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변호사 한 마디에 눈물이 왈칵 = 실의에 빠진 어머니는 항소를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다른 변호사의 이야기라도 한 번 들어보자 싶었다. 그냥 눈에 띄는 법률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머니 참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처음 만난 변호사의 이 한 마디에 어머니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1심에서 졌는데…, 해보면 될까요?"

"한 번 해봅시다. 복리후생이 열악한 회사일수록 통근버스도 제공하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재해마저 차별받는 모순이 생기지요. 질 땐 지더라도 끝까지 법률적 판단을 받아봐야 할만한 사건입니다."

그 때가 2005년 10월이었다. 법무법인 미래로 도춘석 변호사는 수임료 대신 인지대만 받고 항소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소송을 밀고 갔다.

"제대로 수임료를 받았다면 아마 대법원까지 못갔을 겁니다. 대부분의 유족이 몇 년씩 걸리는 긴 소송기간과 비용 때문에 1심이나 2심 정도에서 포기하곤 말죠."

도 변호사는 "혜영씨에 대한 자료를 읽고 난 뒤부터 밤에 집에 누워있어도 자꾸 생각이 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토록 착하고 성실하고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아가려 했던 그의 삶이 안타까워 포기할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도춘석 변호사(왼쪽)가 소송 과정과 판결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4년 만에 승소 판결 받아냈지만 =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패소한 이 사건은 마침내 지난 9월 25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평균임금 1300일분의 유족보상과 장의비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 판결은 지난 7일 부산고법에서 최종 승소했다.

반가운 소식을 전하기 위해 혜영씨의 어머니를 부른 도 변호사는 깜짝 놀랐다. 딸을 잃은 후 겪어온 마음의 고통 때문이었을까? 후두암 치료로 머리가 다 빠져버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어머니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고맙습니다. 이제 딸도 영혼결혼이나마 시켜 주고, 아들도 장가를 보낼 수 있게 되었네요."

군복을 벗은 남동생은 방황을 마치고 누나처럼 독하게 공부해 군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세상이 참 냉정하긴 하지만, 변호사님처럼 따뜻한 분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항상 동생 걱정을 하던 누나를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지요."

돌아서는 모자에게 기자도 한 마디 했다.

"빨리 건강 회복하시고요, 집에 가시면 전기장판만 때지 말고 보일러 좀 틀어 따뜻하게 하고 지내세요."

며칠 전 취재를 위해 찾아갔던 그들의 아파트는 엉덩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웠던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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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스물 여섯 혜영씨의 짦은 삶, 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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