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이명박 덕에 <워낭소리>가 성공했다는 인식

김훤주 2011. 2. 28. 17:08
반응형

2월 23일 저녁 창원 성산구 중앙동 나비 소극장에서 김재한 감독이 만든 독립영화 <조용한 남자> 블로거 시사회가 있었습니다. 시사회가 끝나고 제작진과 관객이 서로 질문-대답을 주고 받았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독립영화 가운데 <워낭소리>보다 좋은 작품이 많은데도 <워낭소리>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이명박이 그 영화를 보는 바람에 사람들 관심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한 사람은 제가 알기로 독립영화에 대해 적어도 지역에서는 나름대로 잘 아는 축에 드는 사람이었습니다. 홍보가 중요하다는 말에 이어 나오기는 했으나 저는 좀 불편하고 황당했습니다.

"<워낭소리>보다 좋은 독립영화가 많다"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명박이 워낭소리를 봤기 때문에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는 사실과 다를뿐더러 그로 말미암는 잘못된 인식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워낭소리>가 으뜸 작품은 아니었다

2008년 12월 11~19일 열린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워낭소리>는 관객상을 받았고 대상은 <고갈>, 최우수작품상은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 코닥상은 <허수아비들의 땅>, 우수작품상은 <3×FTM>, <125 전승철>이 받았습니다. 

코닥상을 받은 <허수아비들의 땅>은 같은 해 10월 열린 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하나뿐인 경쟁 부문인 뉴커런츠상과 후원금 3만달러를 받았는데, <워낭소리>도 같은 영화제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기는 했습니다.

어쨌든 이런 정황에 비춰볼 때 <워낭소리>가 그 해 만들어진 독립영화 가운데 으뜸이 아니었음은 사실로 인정이 될 듯합니다. 적어도 으뜸으로 인정받지는 않았음은 사실입니다.

<워낭소리>는 독립영화의 힘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워낭소리>는 이런 호평을 배경으로 그리고 영화에 담긴 '농경시대 향수'를 무기 삼아 관객을 불러 모아 나갑니다. 독립영화를 많이 보여주는 작은 공간과 대형 상업 영화관에 동시에 걸립니다.

'워낭소리'에 나오는. 인상 깊은 한 장면.


우리 경남의 진주시민미디어센터에 5000원짜리로 걸린 때가 2009년 1월 15일이고 상업 영화관에서 개봉된 날도 바로 이 날입니다. 물론 그 개봉은 초라한 것이어서, 전국에서 확보한 스크린이 고작 7개밖에 안됐습니다.

이처럼 시작은 미미했으나 갈수록 창대해져서 한 달이 채 안 된 2월 첫 주 들머리에 이미 관객 동원 14만을 넘겼고 확보된 스크린 또한 2월 첫 주말에 70개가 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친애하는 이명박 선수가 아내와 함께 <워낭소리>를 본 시점은 2009년 2월 15일. 이 때는 이미 사람들이 <워낭소리>에 폭발하는 반응을 보여 관객 동원 50만 명을 넘어선 시점이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앞에서 말해진 바 "<워낭소리>가 흥행에 성공한 까닭은 이명박이 이 영화를 보는 바람에 사람들 관심을 끈 데 있다"는 얘기와 크게 다릅니다.

대중과 독립영화인과 스스로에 대한 모독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취지였는지는 모르지만, 짚어보면 그 속에는 워낭소리 제작진은 물론, 독립영화를 만드는 영화인과 영화를 즐기는 대중, 나아가 스스로조차 깎아내리는 내용이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관객에 대한 모독입니다. 관객을 바보나 로봇정도로 여기는 인식입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하고 남(대통령) 따라하는 존재로만 여깁니다.

그러나 실은 이명박 선수가 오히려 관객=대중의 눈썰미에 편승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국민들 눈길을 끌고 영화하는 이들에게 좋은 소리 들으려고 그렇게 했습니다.

다음은 <워낭소리> 제작진에 대한 모독입니다. <워낭소리>의 성공은 이명박 선수에게 전적으로 기댈 뿐이지 제작진의 노력이나 재능과는 무관하다는 얘기가 되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는 독립영화를 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제가 알기로, <워낭소리>는 '독립영화 배급사 네트워크'의 2009년 다큐멘터리 공동 마케팅 첫 작품이었습니다.

'인디스토리' '시네마 달' '키노 아이' '상상마당' '독립영화 배급지원센터'가 같이 들어 있는 이 '네트워크'는 2008년 12월 29일 서울 용산 CGV에서 <워낭소리> 시사회를 마련하고 영화관 개봉을 추진했습니다.

이 '네트워크'가 서울=수도권 아닌 지역에서 독립영화를 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바로 이런 이명박 운운 발언이 이들의 노력과 능력을 단박에 무시해 버리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네 번째는 독립영화를 하는 스스로에 대한 모욕입니다. 독립영화에서 '독립'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이라 들었습니다.  그런데 권력(이명박)이 도왔기에 독립영화(<워낭소리>)가 성공했다고 말했으니 독립영화와 독립영화를 하는 자기 스스로까지 부정됐습니다.

저는 어쩌면 이런 발언이 자기 최면이나 자기 위안일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합니다. '우리(또는 나)가 만드는 독립영화가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실력·재능이 없어서가 아니고 '이명박의 관람' 같은 운이 없기 때문이라는…….'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