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박재규 전 통일부장관 "햇볕정책이 옳다"

기록하는 사람 2011. 1. 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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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을 맞아 우리 경남지역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에서는 '신년토론' '신년인터뷰' '신년대담'이라는 이름으로 김두관 경남도지사를 잇따라 만나고 있다.

그러나 경남도민일보는 김두관 도지사를 인터뷰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도지사는 굳이 '신년'이 아니더라도 항상 뉴스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수시로 기자들 앞에 나서 현안에 대한 브리핑도 하고 질문에 대한 답변도 한다. 그런 분을 굳이 '신년'이라는 이유로 인터뷰하는 것은 새삼스럽다는 이유다.

그래서 경남도민일보는 평소 뉴스의 대상으로 잘 나오지 않지만,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나 현안에 대한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나 새해에 이슈로 떠오를만한 분야의 당사자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 첫번째 인물이 대북문제 전문가인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현 경남대 총장)이었다.

인터뷰 주제는 당연히 남북관계였다. 지난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으로 최고조에 오른 남북간 전쟁위기와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방안 등이 화제가 되었다.

7일자 1면에 보도된 박재규 경남대 총장 신년대담 스트레이트 기사.


박재규 총장 "MB정부 대북 강경정책 매우 위험"
"중국있는 한 흡수통일 안돼…북한주민 마음 얻어야"

5일 오전 경남대 총장실에서 이뤄진 박재규 전 장관 인터뷰는 7일자 1면 머리와 4면에 보도되었다. 보도 직후, 편집국에는 '경남도민일보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보수적인 인물을 왜 인터뷰했느냐'는 항의가 들어왔고, 박 전 장관을 좋아하는 쪽에서는 '제목이 너무 강하게 달렸다'는 우려도 전해졌다.

하지만 그가 보수적 인물이냐 아니냐를 떠나 인터뷰어 입장에서는 박재규 전 장관의 대북관이나 통일관이 보수·진보를 통털어 가장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가 DJ정부의 통일부장관이 되기 전이었던 10여 년 전에도 같은 주제로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의 입장도 지금과 큰 틀에서 다르지 않고 일관성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점으로 보아 그가 현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단순히 DJ정부 때 장관을 했다는 의리 때문만은 아닌 일관된 소신으로 보인다.

따라서 어느 독자의 항의처럼, 설사 박 총장이 '보수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런 분조차 대북문제에 관한 한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무한신뢰와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하겠다.


아래는 이승환 기자가 정리한 박재규 총장과의 대담 전문이다.

박재규 경남대학교 총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남북관계 전문가다. 1970년대 초부터 북한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해 1972년 극동문제연구소(서울 종로구 삼청동)를, 1997년에는 국내 최초로 북한대학원(현 북한대학원대학교)을 설립했다. DJ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박재규 총장은 말 그대로 '햇볕정책' 집행자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긴장관계가 고조되면서 집중 공격을 받는 '햇볕정책'이지만, 박 총장은 정책에 대한 굳은 신뢰를 내비쳤다. 그리고 대북 화해협력정책이 평화통일에 이르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법이라고 강조했다.

박재규 총장이 대학경영을  맡은 지 40년을 맞는다. 박 총장은 이번 신년대담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의 최고경영자로서 소회와 책임감도 털어놓았다. 대담은 경남대학교 총장실에서 김주완 편집국장의 질문으로 진행됐다.

- 다음 달 2일이면 대학을 경영해 온지 40년이다. 특별한 감회가 있을 것 같은데.

"하루에도 몇 번 세상이 변하는 초고속 시대다. 그래도 옛말을 그대로 쓰자면 강산이 네 번 변한 세월이다. 처음 일을 맡았을 때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우선 학교를 살려보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고비는 있었지만 모두 힘을 합쳐줘 잘 넘겼다. 운 좋게 버텼다고 생각한다."

- 정말 오랜 시간이다. 처음 경남대에 오셨을 때와 지금을 비교할 때 학교 규모 등 차이가 있다면.

"캠퍼스는 비교 대상도 안 된다. 옛날에는 등록학생이 100명도 안 됐고 교직원도 12명 정도였다. 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지금은 전국에 있는 대학과 어떤 기준으로 비교해도 20위권에는 들어간다."

- 어느 때보다 대학 간 경쟁이 심한 시기다. 생존을 위한 경남대의 발전·특화 전략이 있다면.

"지난 10년 대학이 위기를 견뎌낼 수 있는 체력을 키우는 데 모든 경영 초점을 맞췄다. 앞으로 문제는 특성화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평화·통일·안보 분야에서는 최고 대학을 만들겠다는 자신감이 있다. 북한대학원, 극동문제연구소 등을 통해 국내 어느 대학보다 앞서 기반을 닦아놓았다."

- 40년 동안 대학 경영을 맡았고 그 사이 통일부 장관도 지냈다. 장관 일과 학교 경영을 비교한다면.

"장관은 정부 정책에 잘 맞추고 상대에 따라 잘 이해시키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학 경영은 모든 구성원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아울러 인재 양성이라는 사회적 책임도 있다. 지금까지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하더라도 나중에 잘못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책임자에게 돌아온다.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 긴 세월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 특별한 건강관리 비결이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다면.

"건강 비결이라고 할 게 따로 없다. 평소 교직원들에게 땀을 더 흘리라고 얘기한다. 지금까지 감기에 걸렸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해서 집에 드러누운 적이 없다. 일을 일로 생각하지 않고 일 자체가 건강관리라고 생각한다. 또 주말에 시간이 나면 반드시 운동을 한다. 여름방학 가끔 강에서 수상 스키도 타고 겨울에는 눈 스키장을 찾는다."

- 저도 그렇지만, 술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사람들이 많다. 총장님은?

"80년대 초반까지 술을 많이 마셨다. 80년대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 때 주치의가 훗날에 목표달성을 위해 몸을 아껴 두라는 충고를 받고 술 담배를 끊었다."

- 최고 책임자라는 게 외로운 자리다. 가까이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는.

"나는 특별히 교육 분야에서 일하지 않는가. 고민이 있을 때에는 각 분야에 있는 교수들과 의견을 교환한다. 또 집에서 집사람에게 의견을 물을 때도 있다. 여성의 판단이 세밀하고 정확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여러 의견을 참조해 결정을 내린다."

사진 =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수수한 빛깔의 폴라 티셔츠와 재킷을 입고 인터뷰에 응한 박재규 총장은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답을 이어갔다. 40년 동안 경남대가 거둔 성과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앞으로 생존에 대한 고민과 책임감도 내비쳤다. 경남대가 자랑하는 평화·통일·안보 기반에 대해서도 지금 성과에 머무르지 않을 것을 거듭 강조했다. 곧 남북 관계와 극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 지난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등 남북 긴장관계에 대해 어떻게 봤는가. 그리고 우리 대응은 적절했는지.

"남북관계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한반도 긴장 고조와 전쟁위기까지 갈 수 있음을 우리 국민이 깨닫게 된 한 해였다. 북 도발에 대한 사후약방문식 대응은 북으로 하여금 추가 도발을 부추긴다. 상황 발생 시 실시간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을 해야 북의 도발을 막을 수 있다. 사후 대응에서도 국론이 분열되면 북한이 한국의 의지를 가볍게 여길 수 있다. 진정한 평화는 강력한 군사적 사후대책과 함께 남북관계를 정상화해서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 김정은 승계 등 북한 권력구조 변화와 대남전략에 대해 어떻게 분석하고 계시는지.

"북한은 지난해 제3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일 체제를 더욱 공고화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을 본격화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중국도 김정은 후계 공식화에 대해 사실상 인정했다. 김정은 후계자는 올해 주민을 대상으로 우상화 홍보 활동을 강도 높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또 안정적 후계체제 정착을 위해서도 경제난, 북핵문제 등을 비롯한 대내외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이 불거질 것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남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한다."

-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은 제각각 우리의 남북관계에 대한 이해관계가 다를 것이다. 이들 4개국의 한반도 긴장관계에 대한 손익계산은.

"미국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정세 불안에 따른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은 G2로서 동북아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통해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유지가 자국의 이익에 맞는 것으로 판단한다. 러시아·일본도 기본적으로 미국의 개입에 따른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한·미 동맹과 북·중 동맹의 구도 형성으로 대립하고 있는 것 같지만, 북핵문제의 조속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을 주변 4국 모두 희망하고 있다."

- 북·중 경제개발협력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최근 북·중 경제협력 상황은 교역단계를 넘어 투자로 전환·확대되는 상황이다. 특히, 남북경협이 안 되는 상황에서 북한 경제의 대중 의존도 심화 때문에 중국에 종속될 우려와 함께 북·중 경협 및 개발이 북한 경제의 개방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북·중간 경협과 남북경협의 불균형이 확대·심화할 경우 경제 불이익이 커질 것이다. 따라서 두만강 유역개발과 나진지역 경제특구 개발 등에 우리를 비롯해 미·일 등이 참여함으로써 동북아 경제협력의 새로운 계기 마련이 필요하다."

-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이전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 평가하신다면? '10년동안 퍼주기의 결과가 포격으로 돌아왔다'는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

"평화통일을 위해 화해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데는 과거 정부나 현 정부가 같은 기조라고 생각한다. 잘 아시다시피 햇볕정책은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이뤄내고 그에 기초해서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우리 주도의 평화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현실적 접근법이다. 다만 지난 10년의 햇볕정책이 접근 취지와 기본 목표가 옳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변화가 더딘 점과 북핵문제의 온존 등으로 현실적 미흡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햇볕정책 자체의 접근법의 오류가 아니라 북한의 완고한 체제특성과 북미 적대관계의 온존 등 외부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 햇볕정책을 거부하고 이명박 정부가 강경정책을 쓴 결과는 오히려 북한의 도발이 더욱 강경해졌고 핵문제가 더욱 악화되었고 북한은 더욱 버릇없이 말을 안듣고 한반도 평화가 더욱 위협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대북 정책기조에 북한이 반발하면서 남북 관계가 악화되었다. 그러나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하면 남북은 다시 화해 협력 관계로 되돌아 갈 것이다. 화해협력을 통한 북한 관리와 한반도 평화유지를 기본 토대로 하면서 북이 잘하면 혜택을 주고 잘못하면 댓가를 치르게 하는 보다 현실적이고 원칙적인 햇볕정책이 오히려 타당한 대북정책이다."

대담 중인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사진 =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 현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말로 들리는데.

"통일부에 있을 때 여론조사를 했다. 당시 대북 여론이 좋지 않았을 때인데도 국민 90% 이상이 화해협력정책을 지지했다. 그때 국민 동의를 얻어 비료와 식량을 보내줬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북이 비핵화를 반대하면서 화해협력정책이 비난을 받고 있다. 과거 정부의 대북 협력 정책에 대한 비판은 받아들인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화와 경제협력 정책도 이해한다. 그래서 여러 통로를 통해 북에 비핵화를 권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햇볕정책을 친북정책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하지만 작다고 볼 수 없는 화해협력정책의 성과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북한 주민들의 대남관이 엄청나게 변했다. 평화 통일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아주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개성공단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때도 인터뷰나 통일고문회의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개성공단 문을 닫을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 북한을 흡수통일하거나 북한이 스스로 붕괴할 가능성은 없는가.

"북이 6·25 전쟁 후 한 번도 윤택한 생활을 누린 적이 없다. 잘 살다가 못 살 때 터져 나오는 반발은 걷잡을 수 없지만 북한 사회는 누르면 쑥 눌리게 돼 있다. 그 다음 중국이 있다. 중국에 있어서 북한은 굶지 않을 정도로 도와줄 충분한 전략적 가치가 있는 국가이다. 그러므로 붕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 연초 경남도민일보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전면전을 각오해서라도 강경대응을 주장하는 전쟁 불사론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다.

"북한이 겁을 내는 것은 평화적 흡수 통일이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그런 두려움이 깔렸기 때문이다. 전면전을 한다고 치자.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섬에서 일대 일도 싸운다면 또 모르겠다. 그러면 힘이 센 쪽이 이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남북문제는 남과 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실적인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통일이 되면 당장 북 주민 2500만 명을 어떻게 감당하겠나. 북을 비핵화하고 북한 경제도 어느 선까지 끌어올리고 그러면서 신뢰가 쌓여 한 살림을 차려도 되겠다는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동서독의 흡수통일도 동독 국민들이 더 원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평화와 통일을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지속 발언하고 있지만 남북대결 심화와 전쟁 위기 상황에서 통일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인식은 매우 불안하고 위험해 보인다. 전면대결과 전쟁위기 속에서 언급되는 통일임박은 결국 북한 붕괴에 의한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것일 수밖에 없는 바, 이는 사실 북한이 이른 시일내에 붕괴되지 않을 경우 최악의 남북관계를 결과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대북접근법이다. 물론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은 상존하므로 정부 차원에서 철저히 대비해야 하지만 급변사태를 목표로 대북정책을 올인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관계 정상화와 화해협력의 남북관계를 통해 우선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키고 이에 기초해서 장기적으로 평화적 통일을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급변사태 발생 시 우리 주도의 흡수통일을 준비해야 하지만 그 경우에도 꾸준한 화해협력이 전제되어야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서 평화적 흡수통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이승환 기자

※신년대담으로 다음엔 누굴 만나보면 좋을 지 추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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