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를 받고 열흘만에 정리한 생각
우리 경남도민일보 서형수 사장이 김주완 뉴미디어부장을 편집국장으로 임명하고 구성원들에게 동의 여부를 물은 때가 2월 11일입니다. 편집국 기자직 사원들의 동의 투표는 30대 28로 사장의 편집국장 임명을 부결했습니다.
김주완 부장은 곧바로 경남도민일보를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고 한 주일만인 18일 사표를 내었습니다. 설날 연휴를 마치고 돌아온 서형수 사장도 사의를 밝힌 데 이어 23일 열린 이사회에서 이를 공식화했습니다.
부결 직후, 김주완 부장은 곧바로 툭툭 털고 조직을 나갔습니다. 그렇게 결정한 배경에는 나름대로 생각과 소신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구성원들이 말렸음에도 김주완 부장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기자협회보가 보기 드물 정도로 아주 크게 다뤘습니다.
일이 진행되면서 경남도민일보 구성원들은 침묵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구성원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그러는 가운데 파견기자들의 반조직 행위가 확인이 되면서 일부 책임 있는 간부들이 직접 간접으로 파견기자들 움직임에 영향을 끼쳤음도 밝혀졌습니다.
진상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경남도민일보 정체성에 위기를 느끼는 구성원이 늘어났습니다. 더불어 구성원들 발언도 갈수록 활발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 저를 비롯해 몇몇밖에 되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봇물 터지듯 생각과 글이 쏟아졌습니다.
임명 동의 부결과 사장의 중도 사퇴라는 사태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가 논쟁 과정에서 드러났고 이것을 많은 구성원들이 공유를 했습니다.(물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공유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장 사의를 거둬달라는 시위 행동에도 많은 사람이 나섰으며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고 지목된 경영진 한 명에 대한 퇴진 요구 성명도 줄줄이 나왔습니다.
경남도민일보 11년 역사에서 기수별 성명 발표는 처음이었습니다. 5기부터 14기까지 후배가 먼저 나섰고 1~4기가 뒤를 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경영관리국 구성원 '일동'도 같은 내용 성명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김주완 부장의 퇴사를 막지도 못했고 서형수 사장 사의도 돌리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논쟁 과정에서 파견기자들을 두고 '늘어진 개팔자'라는 표현을 썼다는 이유 등으로 호봉 강하 징계라는 손해를 입었습니다. "어떤 처분이든 달게 받겠다"고는 했지만 막상 받으니 그다지 '달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반대편에 서졌던 사람들도 정직 2개월 또는 견책 처벌을 받기는 했습니다만.
아울러, 3월 25일 열린 정기 주주 총회에서도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서형수 사장의 뒤를 이어 구주모 상무가 사장 직무대행을 맡았을 뿐입니다. 심지어는 근본 원인=몸통으로 지목된 경영진 한 명조차도 해임하거나 자진 사퇴하거나 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주주총회 이전에는 이처럼 서형수가 발행/인쇄인이었습니다.
주주총회 치른 다음에는 구주모 상무이사가 사장 직무대리로 발행/인쇄인이 됐습니다.
이처럼 겉으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곰곰 생각해 보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꽤 커다란 성과를 남겼습니다.
1. 문제와 해답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격렬한 논쟁 과정에서 이것이 확인됐습니다. 문제는 안에 있었고 해답도 안에 있었습니다. 서형수 사장이 3월 사원총회를 앞두고 자신의 사의를 한 번 더 밝히면서 쓰신 글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습니다.
"<문제는 '안'에 있고 그 문제의 해결책도 '안'에 있다>는 결론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저는 '안'의 사람이 아니라 '밖'에서 온 사람이기에 저는 이 회사의 문제를 풀 적임자가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이 새삼 확인되었습니다."
서형수 사장의 존재 양식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른바 '안'의 사람이기는 하지만, 근본이 '밖'에서 온 사람이기에 가지는 괴리감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라 말하자면, '밖'에서 온 '안'의 사람은, 원래부터 '안'의 사람들이 맞아들이지 않으면 끝까지 '안'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고 훌륭한 그림을 갖고 있어도 안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 버리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안'의 사람들이 얼마나 닫혀 있었는지, 닫혀 있는 것을 열어야 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확실히 깨닫게 됐습니다. 밖으로도 닫혀 있었고, 안으로도 닫혀 있었고, 스스로에게도 닫혀 있었습니다.
2. 소통과 혁신이 대세임을 확인했다
대표이사 사장 서형수는 그것을 제시했고, 그것이 성공하리라 자신은 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아닌 다른 데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변해도 살아 남을 수 있을지 어떨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변하지 않고서는 다른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서형수 사장은 김주완 부장을 편집국장으로 임명하면서 '지면의 혁신'과 '조직의 소통'을 얘기했습니다. 그것을 이룰 적임자로 김주완 부장을 꼽았습니다. "최선을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긴장과 정성을 찾아볼 수 없고 현재 상황이 지속된다면 미래는 없습니다."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편집규약에 따라 일상적인 지면 제작에는 발행인이 간여할 수 없습니다. 결국 편집국의 수장인 국장을 임명하는 권한이, 발행인이 갖는 지면제작에 관한 거의 유일한 권한일 것입니다."
서형수 사장은 "회사가 살고 신문이 살려면 편집국 조직이 살아야 하고 지면이 살아야 합니다. 조직을 살리고 지면을 살리는 일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지 경영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책임있는 선택과 선택에 따른 책임 완수를 기대합니다."라며 자신의 임명권을 실행했습니다.
아시는대로, 부결됐습니다. 사장의 뜻은 꺾였습니다. 사장은 자신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하고 사퇴하겠다 했습니다.
사장 의지를 꺾은 세력이 있습니다. 변화가 싫고, 혁신과 소통이 두려워, 편집국장 임명 동의를 부결하고 사장에 대한 불신임을 전면화한 파견기자회와 파견기자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장악권을 가진 간부, 그 간부 등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 경영진 한 명이 있었습니다.
2월 23일 이사회 열리는 사장실 앞 풍경. 노조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모였는데도 열 명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대부분 구성원들은 그들의 행위를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묻는 데 뜻을 모으고 적극 나섰습니다.
이렇게 이어진 행동을 통해서 서형수 사장이 제시한 바가, 혁신과 소통이 결국은 경남도민일보가 살아남는 길임을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됐습니다.
3.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문제임을 알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수의 힘이 세다는 것이 확인이 됐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수가 잘못했음도 드러났습니다. 어처구니 없게도, 다수가 소수에게 휘둘렸음이 확인된 것입니다.
다수가 처음부터 제대로 정렬을 해서 똑바로 대처했더라면 서형수 사장의 김주완 편집국장 임명에 대한 동의 투표가 부결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멍청한 다수였습니다.
변화에 저항하는 소수는 언제나 어디에나 있습니다. 어떤 조직에서든, 30% 소수 또는 비주류가 있게 마련입니다. 어느 조직에서든 소수 비주류는 언제나 불평 불만 투성이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국면에서든 그이들을 중심에 놓고 사태를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이들을 끌어안고 함께 가는 역할은 다수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이들에게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 또한 다수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의 다수는 그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소수를 대수롭지 않게만 여겼습니다. 심지어 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변화를 하든 말든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다수가 하고 있었기도 합니다.
소수에게 휘둘리는 조직은 정상이 아닙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여태 그러했습니다. 소수 비주류를 다수가 어떻게 소화하고 방향을 지어나가고 아우를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누구누구가 반대해서 일을 못했다는 얘기는 핑계도 되지 못합니다. 소수 가운데서 이런저런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런저런 꼼수를 부렸는데 다수가 제대로 처리를 못해서 이런 험한 꼴을 당했다고 생각을 바꿔야 하지 싶습니다.
이번 임명 동의 투표 과정에서는 그런 생각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러나 뒤늦기는 하지만 부결된 이후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소수가 아닌 다수가 문제임을 알게된 것은 소중한 체득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4. 많은 구성원이 조직의 중압을 벗어났다
경남도민일보에는 조직의 압박이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이른바 고참과 신참이 뚜렷하게 갈라지는 못된 구조에서 비롯됩니다. 특채는 경력이 많고 공채 기수 친구들은 별로 경험이 없습니다.
다른 공장, 이를테면 경남신문이나 영남일보 같은 데 가서 보면 내용과 무관하게 주고받는 선후배의 얘기들이 너무나 쉽게 이어집니다. 기수 사이가 자연스레 이어지면서 선배·후배 사이에 의견과 생각이 흐릅니다.
우리 공장에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아래위로 그리고 앞으로 옆으로 말문이 단절돼 있었습니다. 게다가, 2003년 당시 경영진이 파업을 하고 일부 구성원들이 이에 동조하는 이른바 경영 파업을 지나면서 아래위로 더욱 막혔습니다.
그렇게 막혀 있던 그 말문이 이번에 트였습니다. 선배에 대한 후배들의 얘기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여태까지는 선배들이 얘기하면 불만이 있어도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는데, 이번에 그런 현상이 가셨습니다.
선배든 후배든 자기하고 생각이 다르면 어떻게 해서 어떤 대목에서 생각이 다르다고 얘기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인터넷에 오른 선배 생각이 잘못됐다면 왜 잘못됐는지 막힘없이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앞에서 얘기한대로, 특채 기수를 뺀 모든 공채 기수가 몸통 물러나라는 성명을 냈습니다. 경영관리국에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이제 경남도민일보 토론 문화에서 성역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심지어는 이런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술자리 같은 사석에서는 여러 차례 얘기됐지만 공석에서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던 그런 내용입니다. 편집국 국회를 하는 자리에서 어떤 구성원이 "지금 데스크들은 모두 취재 현장으로 가야 한다"고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재미있는 일은 그 발언이 데스크 회의에서 긍정 검토되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공채 1기가 데스크를 맡고 선배들은 현장으로 가야 재충전도 되고 좋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하면 이상한 인간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누구든 소신껏 얘기할 수 있게 됐습니다
5. 무력감과 패배감을 떨칠 수 있었다
김주완 부장도 서형수 사장도 붙잡아 돌려세우지 못했다는 사실에만 집착하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본다면 그다지 달라진 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침묵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임명된 편집국장이 떠나가고 임명한 사장마저 떠나가고 그러면서 경남도민일보 구성원 대다수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면서 괴로워 했을 것입니다.
아울러서,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었으니 상황 사태 파악은 더욱 어려웠을 것이고 지금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앞날은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력한 패배입니다.
그러나 활발하게 논쟁이 진행되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위기를 이겨내는 힘이 생겼습니다. 아무 느낌도 없이 지나칠 수도 있었던 국면에서 최대 현안을 두고 격렬하게 맞서는 과정에서 문제의 핵심을 집단적으로 알아차리게 됐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구성원 개개인의 적극적 능동적 참여가 있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할 말을 하고 나니 좋았고, 그 말이 나름대로 힘을 갖고 부리기 시작하니 더욱 좋았던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힘을 집단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무력감과 패배감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경남도민일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는 점에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저는 얻은 게 많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6. 앞날에 대한 집단의 고민이 시작됐다
이제 경남도민일보의 문제점 또는 지향점이 분명해졌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렇습니다.
첫째는 다수의 의사를 어떻게 묶어 세우느냐입니다. 이번처럼 소수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입니다. 공식 조직을 강화하고 비공식 모임을 활성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둘째는 파견기자에 대한 파견기자를 위한 특단 대책입니다. 감시·감독하고 윽박지르는 대책이 아닙니다. 취재 보도와 수익 영업과 사업 기획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파견기자 전체에게 빠짐없이 적용·해당되는 공동 목표를 내오고 공동 기준을 만드는 일입니다.
셋째는 수익 창출에 대해 모든 구성원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마음가짐을 만드는 일입니다. 사원 윤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취재 보도에 바쁘더라도 그런 쪽으로 머리를 돌리지 않으면 안 되게 생겼습니다.
넷째는 서형수 사장이 편집국장을 임명할 때 말씀했던 '지면에서는 혁신' '조직에서는 소통'을 충분히 추진하고 궁극에는 완성하는 일입니다. 중요도로만 보면 으뜸 자리에 놓여야 마땅하겠으나 이미 공유·공감된 부분이 많다고 보고 뒤로 돌렸습니다.
이런 문제들(이밖에 여러 구성원들이 다양하게 제출하는 의견까지 쳐서)을 놓고 머리를 맞대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봅니다. 서형수 사장이 떠나면서 '경남도민일보를 사랑하는 표시'로 남긴 마지막 선물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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