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은 하도 비정상이 정상인 듯 판을 치다 보니 그 비정상과 약간만 차별화한 것만으로도 특별 대접을 받으려 한다. '공정무역'이니, '윤리적 소비'니 '착한 초콜릿'이니 심지어 '착한 여행' 등으로 이름 붙인 신상품들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무슨 의도인지 이해를 해줄 수는 있겠지만…. 똑같은 에너지를 낭비 파괴하고 그만큼의 이산화탄소를 내놓는 국제무역이면서 생산자에게 주원료 값만 조금 더 주고 사다 가공해서 판다고 공정한 것은 아니다.

상대적 윤리성이야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소비를 미화하다 보면 마침내 시장과 자본주의도 미화하는 자승자박이 될 것이다. 소비에 꼭 윤리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다면 그것은 (지역)자급소비밖에 없을 것이다."

"만성적인 식량 부족국인 제3세계 농민들의 한(恨) 자체인 카카오(초콜릿 원료)에 돈을 조금 더 주었다고 '착한 초콜릿'이 되겠는가?

이 같은 속임수는 쓴 카카오 원료에 설탕 칠갑을 해서 달콤 고소한 초콜릿으로 둔갑시켜 온 세계 청소년들의 주머니와 이를 녹여내는 다국적기업보다 오히려 더 위선적이 아닐까?

진정으로 착한 일은 초콜릿의 이름을 거듭 새로 개발해서 카카오 생산 농민들을 세계 시장에 영원히 종속시키기보다 오히려 초콜릿 불매운동과 함께 식량 부족국들의 식량 자급도를 높여줄 새로운 방략을 찾아주는 것이 아닐까?"

"'착한 초콜릿'이라니? 초콜릿을 생산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착하다는 말인 줄은 알겠는데 그것을 수출하고 수입하는 공정무역과 '공정무역 여행'을 한다고 기름이 안 들고 환경오염이 안 되는가?

공정무역으로 득 본다는 제3세계 농민들의 향상된 생활의 내용이 무엇을 뜻하며 또 그것이 진정한 향상인지 생각해 보았는가?

20~30% 더 받은 돈으로 공정무역 아닌 다국적 기업의 세계 무역의 식량 등 수입품을 더 소비하는 것이 향상된 생활인가?

(공정무역품이 생필품 아닌 기호품으로 제한되어 있으니까 그것을 수출한 현지 주민들은 그 돈으로 대부분의 생필품을 세계 시장에서 사야 한다.)

제3세계의 경제적 약자들이 잘사는 나라의 NGO 등의 시혜에 언제까지나 의존하는 타율적인 삶도 진정으로 잘 사는 삶인가?"

이런 정도 대목만 들여다봐도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훤하게 나타납니다.

지금 세계 시장을 그대로 인정하는 어떠한 공정무역도 공정하지 않으며 어떠한 착한 소비도 착하지 않다는 얘기랍니다. 오히려 세계 자본주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노릇이라고도 합니다.

이런 관점의 뿌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기획하는 새로운 공동체는 이 산업사회의 모든 기득권으로부터 벗어나 농업이 중심 산업이 됨으로써 지속이 가능하면서도 만인이 자유롭고 평등한 자급·자립·자주·자치 공동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 어떤 '공정 무역'이나 '착한 소비'도, 자본주의 세계 질서가 관철되는 세계 시장을 확대·강화·유지·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할 뿐인 것입니다.

천규석 선생은 이를 위해 창녕 남지에 공생농두레농장을 열었습니다.

"소농두레공동체는 (다른 대부분 생태주의 공동체가 사회주의적인 공동체인 반면) 부분적인 공유와 함께 당시의 사회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 제한된 범위에서의 사적 소유도 인정한다.

큰일은 공동으로 하는 것이 개인에게도 유리하겠지만 작고 소소한 일은 사적으로 노동하고 소유하게 한다. 농지를 사적으로 구입 못 했거나 공동체에 늦게 들어와 자기 몫의 농지를 분배받지 못한 일부 구성원들에게는 공동 분배분이 있겠지만, 사적 분배가 원칙이다. 이 점에서는 전통 마을 두레와 유사하다."

그러나 이 공동체 운동은 대체로 실패라는 평가를 받는 모양입니다. '공생농두레 농장'의 지금 식구 숫자가, 다른 유사한 생태주의 공동체보다 너무 적다는 측면에서요.

천규석은 사회주의적으로 운영되는 다른 생태주의 공동체의 한계를 짚음으로써, 실패하는 이 공동체 운동을 끊임없이 지치지도 않고 하는 까닭을 풀어놓는답니다.

"시장을 부정하고 생태적 지속을 추구한다는 이런 공동체도 내부적으로는 공산주의적이지만, 식구를 먹여 살리고 영토를 확장(?)해가기 위해 외부적으로는 시장 지향적이다.

생태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산업주의 생산방식으로 닭과 돼지와 소를 길러 달걀과 고기를 외부 시장에 팔아 그 공동체를 유지 또는 확장해 간다.

그러나 시장에 의존하는 산업사회주의 공동체, 개인을 국가에 예속시키는 산업사회주의 국가는 실패한 유산일 뿐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지속 가능한 사회나 자급과 자치의 공동체와 크게 배치된다."

그러므로 공생농두레 농장의 끊임없는 실패는요, 실패가 아닌 성공이랍니다. 이 운동의 실패는 공생농두레 농장의 사라짐 말고는 없습니다.

실현되지 못하는 꿈을 실행하는 천규석 선생은 1938년 경남 창녕 영산 출생입니다.

천규석 선생.

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곧장 농촌으로 돌아온 '생태적 농경공동체 재건 운동가'입니다.

이런 그이에게 국가는 생태적 지속을 불가능하게 하는 시장과 함께, 반드시 극복하거나 지양돼야 할 대상일 따름입니다.

그런데요 이런 관점에 서면 역사도 달리 새롭게 보이는 모양입니다.

"중앙집권화 이전의 소국 연맹으로 마감한 가야는 내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이상 사회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그 이상에 근접한 사회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조건의 신라와 백제는 보다 일찍이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로 전환하여 국경을 정하고 민중 지배의 강화로 나아간다.

이에 비해 가야의 지배층은 국경 내의 피지배층에 대한 지배의 강화보다 지역 간의 교류 확대를 통해 자신의 생존 전략을 확장해 갔다. …… 가야의 정체성은 국가 대신 연맹 단계의 교역이되 그 교역은 자연적 수운에 따른 생태적 문화적 교역이라는 것이 가야 사회가 가진 또 하나의 미덕이었다."

산뜻한 관점에서 나온, 상큼한 해석이라고 여겨지지 않으시는지요? 실천문학사. 399쪽. 1만5000원. 

김훤주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 - 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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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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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cij3333.textcube.com hcij3333 2010.02.22 09: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한 마케팅에 현혹된 1인 입니다.
    좋은 시각 얻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2. 탐진강 2010.02.22 1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착취하는 것 보다는 현재의 대안으로 공정무역이 그나마 낫지 않나 싶습니다.
    기존 다국적기업의 착취에 비해 공정무역을 하는 양심이 더 나아 보이는데 싸잡아 비판은 부적절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단번에 공동체적 대안도 있겠지만 제3세계 국가의 현실에서 쉽지않은 점도 많아 보입니다.
    전부아니면 전무가 아니라 여러 대안 중의 하나로 대안무역 즉 공정무역도 있겠고 공동체적인 대안도 있겠습니다.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2.22 1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탐진강님, 옳으십니다. ^.^

      현실에서 공정무역이나 착한 소비는 공정하고 착하지요.

      아울러 천규석 선생이 이리 주장한다 해서 공정무역이나 착한 소비 운동이 없어지지도 않고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한 번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관점을 제공해 준다는 데서 의미가 클 것이고요, 다음으로는 지금 많은 이들이 하는 이런저런 실천을 벗어나 좀더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생각거리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크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3. Favicon of http://eejemap.tistory.com 잡학왕 2010.02.22 1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 위에서 바라볼 필요는 있는것 같군요. 새로운 시선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도 탐진강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나마 공정무역이 현실적인 대안이라 생각하기에 지지하고 있습니다. 공정무역마저 되지 않는다면 제 3세계 사람들의 삶은 매우 비참하겠죠.

    그래도 최후엔 천규석 저자의 주장대로 되어야겠죠.

  4. 그것은 역시 2010.02.22 1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실적 수정주의와 이상주의의 차이겠지요.
    초콜릿을 먹지 말자 혹은 커피를 마시지 말자는... 이상주의죠. 가장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이루기는 좀 어려운...
    그래도 어딘가의 누구는 소비를 할테고 또한 그것을 판 현지 주민들은 그돈으로 세계시장에서 생필품을 산다지만 그것마저 팔지 않는다면 생필품을 살 여력조차 없어질수도 있는것이 현실이지요. 대체적으로 오랜기간동안 그제품들이 현지의 특산물이 되었을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한푼이라도 더, 중간 상인들에게 떼이지 않고 온전히 현지 주민들에게 한푼이라도 더 돌아가게 하자는 것이 공정무역이겠고 현실적으로 당장은 현지주민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운동이라고봅니다.

    궁극적으로는 이상주의의 목표가 이뤄지는것이 바람직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공정무역을 까내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 나름으로 도움이 되려는 작은 몸부림일테니까요.

    김훤주씨의 글쓰기는 소비는 어찌되었든 비윤리 비소비 혹은 자급소비는 윤리라는 완벽한 이분법 혹은 흑백논리로 보여집니다만 저는 조금더 윤리쪽 그나마 윤리적 이라는 중간적분류법도 사용하고 싶군요.

    기자들은 어쩔수없이 공격적 자극적 글쓰기를 할수밖에 없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해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2.22 1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일 마지막에 하신 말씀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

      물론 제가 공격적 자극적 글쓰기만 하지는 않습니다만...

      공정무역 착한 소비를 어느 정도 비판하지 않고서는 이런 관점 시각을 내놓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정도로 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공정무역이나 착한 소비를 어느 누구라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저냥, 이런 생각도 있다는 얘기를 한 번 올려 본 것이지요.

  5. Loquacity 2010.02.22 1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떠한 방향성을 갖고 있는 집단이 있을 경우, 그 집단 내에서의 힘과 설득력은 극단에 치우칠수록 강력합니다. 하지만 대립되는 의견을 갖고 있는 집단과의 화합에는 매우 취약하지요. 이러한 대안없이 당위성만 강한 주장이 득세할수록 문제 해결은 요원해지지요.

    개인적 신념은 충분히 존중할만 합니다만, 힘들게 대안사업을 이끌어가는 이들의 사기를 꺾는 비난섞인 논조는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네요.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소엔진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수소엔진이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한다니 소가 웃을 소리다, 걸어다니는 것만이 해답이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사실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 수소엔진을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인간은 많은 자원을 소모하고, 그러한 자원 소모를 최소화하는 이동방법으로 걷기만한 것이 없으니까요.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옳은 일일까요.

    • Favicon of http://charmisle.tistory.com 어린쥐™ 2010.02.22 15: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안 사업을 진행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타인의 인정' 뿐이라면 이런식의 문제제기가 말그대로 '문제'가 되는 걸테죠. 하지만 단지 문제해결에 접근하는 한가지 방식이라고 본다면 이정도의 지적에 사기가 꺾일것인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식의 지적이 이른바 대안 사업의 논리와 그 세부적인 사항들을 더 단단하게 해 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위에 김훤주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지만 저 책 한권으로 '공정 무역'이나 '착한 소비 운동'이 사라지지는 않을 테고, 이런 식의 극단은 문제 해결이 요원해 지도록 득세할만큼 절대 주류가 되지 못합니다(적어도 우리가 눈치챌수 있을 만큼 단시간 내에는요). 하나의 단서로 작용 할 뿐이죠. 세상에는 극단적인 옹고집보다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타협을 하면서 사는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많지요.

      좋은 글 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2.22 15: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는 집단이라도, 제가 보기에는, 힘과 설득력은 현실적일수록 강력합니다. ^.^

      힘들게 대안사업을 하는 이들이라면, 그 힘듦을 놓으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즐겁게 가볍게 하는 일이 아니면 어차피 오래 끌고 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요.

      이런 얘기도 있고 저런 주장도 있고 요런 관점도 있고 조런 시각도 있고 하는 게 세상일 텐데...... 그냥 '이렇게 보는구나'...... '나와는 생각이 좀 다르군' 이렇게 여기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 Loquacity 2010.02.22 17: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힘과 설득력이 현실적일수록 강력하다는 말은 그것이 외부를 향한 것일때 해당되는 이야기지요. 제가 언급한 것은 집단 내에서의 힘과 설득력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말인즉, 원리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측이 그보다 현실적이고 유화적인 입장을 가진 쪽을 논박하는 것은 지극히 편리한 일이라는 것이지요. 비판을 이끌어내는 발전이 아니라 공정무역의 당위성마저 의심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겁니다. 내부에서 오는 당위에 대한 회의는 그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고, 천규석 선생님의 책은 그런 부분을 우려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일반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반 소비자들은 어떨까요. 윤리적 소비라는 명분으로 일반상품보다 더 큰 비용을 부담하며 이러한 방식으로 인류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런 소비방식은 눈가리고 아웅하며 네 죄책감이나 덜어보려는 자위행위일 뿐이다' 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말입니다. 하루에 3Km씩 뛰면서 살을 빼려는 사람에게 '그 정도 뛰어서는 백날 해봐야 헛수고'라며 100Km짜리 울트라 마라톤 코스를 보여주면 그 사람은 100Km 울트라 마라톤 코스르 도전할까요? 어렵게 매일 3Km를 뛰는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3Km는 뛰어봐야 소용없는 거리이고, 100Km는 불가능한 거리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그 사람은 다이어트를 포기하고 운동을 그만두게 되겠죠.

      '힘들게 버텨나가느니 내려놓으라'는 조언은 쿨하지만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사명감만으로 하는 일은 그 유통기한이 짧은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러한 노력이 없다면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그런 말씀은 의미있는 노력의 가치를 일거에 허물어뜨리는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 또한 비판적 관점에서 저의 의견을 피력한 것일 뿐인데, 생각보다 불편하게 전달된 것 같네요. 제 생각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관점 중 하나이고 천규석 선생님의 뜻이 그러하듯이 보다 나은 결론을 얻기 위한 과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시는지...

      그 흔한 공정무역 초콜릿 한번 못사본 사람으로서 말만 늘어놓자니 좀 민망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제가 당장 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쪽이 좀 더 마음이 가네요. 아울러, 그러한 작은 노력을 소용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하는 천규석 선생님의 의견에는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뭐 그냥...그렇다구요.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2.22 1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린쥐님, 어리쥐 않고 어른이시네요. ^.^ 농담입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2.23 17: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말씀하신 뜻 다 알아들었습니다. ^.^

      고맙다는 말씀 올립니다. ^.^

  6. Favicon of http://blog.daum.net/sungsim1 성심원 2010.02.22 15: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스로 공정무역에 참여한다고 그래서 참한 소비자라고 위안받으며 죄의식을 숨기며 살아왔네요.
    가슴이 너무 뜨끔합니다.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2.22 15: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 저도 마음이 뜨끔했습니다만, 하하, 조금 있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이런 근본주의 관점도 있구나, 그러니까 현실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공정무역이나 착한 소비를 하더라도, 이런 근본을 들여다보면서 하면 되지 않을까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동네 음식, 동네 푸성귀, 동네 쌀, 동네 콩, 동네 배추 따위를 주로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했습니다만. ^.^

  7. 2010.02.22 1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Favicon of http://apsan.tistory.com 앞산꼭지 2010.02.22 2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본주의자 천규석 선생의 언어엔 항상 꼿꼿함이 서려있지요.
    한발도 물러설 수 없는 선생의 근본철학이 오롯이 담겨있는 책.....

    하여간 선무당들은 그의 앞에서 여지없이 아작이 나게되고,
    이 책도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겠지요.....ㅎㅎ.

  9. Favicon of http://www.yemundang.com 책쟁이 2010.02.22 2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극단적이네요.
    이런분도 있군요. 한 번 뵙고 싶군요.

  10. 기쁜내일 2010.02.23 00: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천규석 선생의 생각에 100% 동의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에 우려를 표하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천규석 선생처럼 철학과 삶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 보지 않았기에…….

    저 위에 “제 생각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관점 중 하나이고”라고 말씀하신 분은 자신의 관점이 인권의 차원에서 존중 받는 것이 아닌 철학적인 차원에서 존중 받을 수 있는 ‘다양한 관점중의 하나’ 인지 숙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공정무역도 자본의 지배방식에 순응하는 진화의 산물일 뿐입니다.
    우리는 자본에 지배 받으면서도 그걸 알아채지 못할 뿐입니다.
    자본은 그만큼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본 권력은 당신이 TV를 보며 금메달에 환호하는 그 순간에도 애국심이라는 우상 저 너머에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것입니다.

    제3세계 민중들의 삶이 눈에 밟힌다면 커피를 끊고 숭늉을 마시면 됩니다.
    그래서 아낀 돈으로 구호단체에 기부 하세요.
    그럼 피터 싱어는 못 되도 ‘다양한 관점중의 하나’를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는 있습니다.

  11. 블루비 2010.06.07 2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촛불집회 관련해서 검색을 통해 몇번인가 이곳을 방문했던것 같네요^^

    오늘 제가 사는 지역의 공정무역 북카페 몇군데를 촬영차 돌아 다녀보았습니다.
    공정무역에 대해서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그래도 그 뜻에 있어서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던차에
    자극적인 제목을 읽고 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네요.

    초콜릿 이야기를 하셨네요~ 제가 다녀온 곳은 커피를 다루는 곳이었습니다.


    불평등한 종속 관계에 있는 빈민국 농가에 우리 소비자들이 아무 커피나 사먹느니 차라리 좋은 대안을 제시한 그 물품을 소비해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수 있는.. 그것 자체면 되는것 아닐까요?

    수년전 군대 고참이 했던 말이 생각나는 군요.
    "거지에게 힘내라는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주는 것과 단돈 천원이라도 물질적 도움을 주는것... 이 두가지중에 그 거지에게 어떤것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는가?"

    비유가 부적절 할수도 있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을 이용해 이윤을 남기는 사람들까지 파악하고 말씀 해주신것 처럼 발생되는 다른 피해까지 생각해가면서 소비를 해야한다면...
    쿨하게~ 소비자임을 포기하렵니다. 오늘부터 농사나 지어야 겠어요;;
    소비자 못해먹겠네요 ㅋㅋ(농담인거 아시죠? ㅋ)


    물론 초콜릿의 경우 기사 내용대로 일수도 있지만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곳은 좀 다르다고 생각하네요.

    생각보다 훌륭한 일을 하는 아름다운 가게도 많이 있습니다.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면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곳인데요.
    커피 가격도 일반 브랜드커피에 비해 50%가격대이고, 책도 무료로 볼수 있으며...
    그 헌책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책의 판매금은 지역의 어려운 이웃과 풀뿌리 단체를 돕는데 쓰여진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나요? 더 이상은 일반 소비자가 깊게 파고 들순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곳을 다녀가면서 한가지 분명한것은......

    정보를 입수한 뒤 가공하여 지식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저에게 또 다른 시선을 열어주신 님에게 감사드리면서....

    횡설수설하다가~~~ 조용히 사라져 봅니다 ^^

    고생하시고요~ 다시 제가 이곳을 찾도록 다양한 소재를 다뤄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6.08 15: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

      천규석 선생처럼 좀더 래디컬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드리는 것일 따름입니다요.

      저는 공정 무역 운동을 하는 이들이 잘못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다만 거기서 머무르지 말고 좀더 나아가는 관점도 있으며, 그런 관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공정 무역 자체도 좀더 진화하고 발전할 수 있겠다 싶을 뿐입니다요.

  12. 바람불어 2010.08.10 15: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훤주님
    파워블로거답게 글쓰기 실력이 뛰어납니다.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에 대한 김훤주님 글 기조는 전체적으로 천 선생의 주장을 옹호하고 상대적으로 공정무역의 문제를 부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지식과 경험, 가치관에 따라 어떤 현상이나 사상에 대해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따라서 누구나 자신이 주관을 갖고 주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거슬린 의견에는 “나와는 생각이 좀 다르군.”이라고 받아들이라면서 논리적 대응이 마땅치 않으면 마지못해 “알았다. 고맙다.”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요? ‘기쁜 내일님’의 의견처럼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면 “고마운 말씀, 적극 동의합니다.”하고 강조하고 동조하는군요.

    철학 운운하는 기쁜내일님
    “커피를 끊고 숭늉을 마시며, 아낀 돈으로 구호단체에 기부하세요.”라는 말은 자신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표현인 듯합니다. 공정무역은 약육강식의 자유 시장에서 소외된 노동자, 농민의 노동력과 생산물에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자는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갖는 것은 기쁜 내일님처럼 구호단체를 통해 기부나 원조로 시혜를 베풀어 경제적 약자에게 의타심을 갖게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11.03.21 08: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 주시니까요. 오래 전 쓰신 댓글인데 제가 답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어쨌거나 일반적으로 볼 때 자기 생각과 같은 생각을 만나면 적극 동조하는 것이 잘못되지는 않았지 싶은데요. 그리고 다른 생각을 만났어도, '나랑은 생각이 달라' 이러면서 상종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렇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요. 알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여기 무슨 잘못이 있나요?

  13. 김윤수 2011.03.20 17: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편적인 이 글을 읽고 쉽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어렵고 복잡한 경제를 단순히 한 면을 보고 주장을 펼치신듯합니다. 농업중심의 경제 공동체는 이미 첨단 산업을 치닫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과거로의 회기일뿐이며 원시 공동체의 진향 향수에 젖은 것으로 보이네요. 카카오를 심기보다 식량이 될 수 있는 것을 심어야 한다? 카카오가 가장 잘 되는 땅에 다른 것을 심는다는 것도 이상하며, 100%자급자족의 경제가 아닌 이상 카카오를 팔아 옷도 사고 책도 살 수 있는 경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조금은 급진적인 글. 잘 보고 갑니다. 새로운 시각은 또 하나의 균형 발전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는 봅니다.

    • Favicon of http://100in.tistory.com 김훤주 2011.03.21 0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지금 대세이냐 아니냐 보다 살아가는 근본에서 봤을 때 무엇이 바람직하느냐를 갖고 얘기해 봤을 따름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