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술의 도시에 남아있는 일제시대 술공장

기록하는 사람 2009. 10. 2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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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써 마산(馬山)의 역사는 짧다. 가야와 신라의 도읍지였던 김해나 경주와는 비교할 수도 없고, 천년고도라는 진주는 물론 인근의 창원, 진해보다 도시 역사는 짧은 곳이다.

마산이 도시로써 본격적인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건 1899년 개항 당시 설정된 외국의 조계지로부터였다. 그래서 마산은 흔히 근대도시로 불린다.

특히 현재 경남대학교가 있는 댓거리부터 마산중부경찰서에 이르는 신마산 지역은 1905년부터 일본인 이주민들에 의해 개발된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지금도 남아 있는 일본 건물이 적지 않다.

일제 시대 일본인들에게 비친 마산은 어떤 도시였을까?

남아 있는 일본인들의 자료에 따르면 '꽃의 도시' '술의 도시'였을 것 같다. 그 내용은 경남대 사학과 유장근 교수의 블로그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마산] 벚꽃 도시의 과거와 오늘), 당시 일본인이 쓴 책이나 관광 안내 팸플릿을 보면 무학산과 합포만, 벚꽃과 술이 환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1930년대 관광 마산 팸플릿 표지 @유장근 교수 블로그 http://blog.naver.com/yufei21


며칠 전(24일) 유장근 교수의 도시 탐방대에 일원으로 참여하여, 이른바 중앙마산과 신마산 일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이 때도 유장근 탐방대장으로부터 '술의 도시 마산'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유 교수에 따르면 1911년 이전부터 마산에는 일본식 주조공장이 14개에 이르렀으며, 모두 정종을 생산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제 시기 마산은 전국 술 생산량 1위의 도시가 되었는데, 이는 수질이 좋고, 햇빛(일조량)이 좋으며, 해양음식 등 바다에서 나오는 술안주가 풍부했고, 벚꽃거리(사쿠라마치) 등 풍광이 좋은 곳에 요정과 유곽이 조성돼 술마시기 좋은 도시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날 탐방에서 아직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일제 시대의 주조공장 건물을 발견한 것이다. 가장 짧게 잡아도 60여 년, 대략 70년 이상은 되었을 일본식 술 공장은 이제 주택이나 상점으로 개조되어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건축물의 외형과 공장 굴뚝은 옛 모습 그대로였고, 공장장이나 사장이 살았던 것으로 짐작되는 공장 바로 옆 일본식 사택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오른쪽 담쟁이 넝쿨이 우거진 건물이 뭔가 심상찮다. 2층집도 요즘 건물과는 다르다.

바로 좌우 양쪽의 건물이 둘 다 일제시대 술 공장이었다.

맞은편 건축물도 지금은 주택이나 상점으로 개조되었지만, 굴뚝은 여전하다.

아마도 일본인 공장장이나 사장의 사택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식 주택.

공장 안으로 들어가봤다. 이런 복도 같은 게 길게 이어진다.

이 집도 공장에 바로 붙어 있는 일본식 주택이다.

일본식 주택 아래에서 올려다 봤다.

이 공장 건물도 지금은 주택으로 개조돼 사람이 살고 있다.



아마도 지금까지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저런 일제시기 건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재개발·재건축 열풍 속에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일단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두자 싶었다. 이 글을 포스팅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렇게 일제시대 술 공장 구경을 하고 다음 코스로 걸었다. 한 때 일본 영사관이었다가 마산이사청-의창군청으로 이어져오다 최근에는 경남대 평생교육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곳의 한 담벼락에서 '부산 국제 주류박람회' 포스터를 발견했다.


사실은 부산의 대선소주도 이곳 마산의 유원산업에서 시작되었고, 1960년 마산3·15의거의 한 배경이 되었던 '동양주정 인수사건'도 술공장을 둘러싼 정경유착사건이었다. 이처럼 '술의 도시'였던 마산은 주류박람회의 주도권도 부산에 빼앗기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에선 저런 박람회가 열린다는데 정작 술의 도시 마산에선 이런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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