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60년대 진보인사들 명예회복 길 열렸다

기록하는 사람 2009. 10. 2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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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난 이틀 뒤인 18일, 마산에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운동을 하던 노현섭 씨와 교원노조 중등지회장 이봉규 씨, 그리고 영세중립화 통일운동가인 김문갑 씨 등이 집으로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전격 연행됐다. 그들과 함께 전국적으로 구금된 이들이 수천 명이었다. 구속영장도 없었고, 처벌할 법률도 없었다.

박정희 쿠데타세력은 헌법도 무시하고 뒤늦게 특별법이라는 걸 만들어 그들에게 사형, 무기징역, 15년, 10년씩 중형을 때렸다. 천만다행으로 풀려나온 사람들도 제각각 수개월씩 불법구금을 당한 뒤였다.

이렇게 5·16쿠데타 직후 억울하게 죽거나 징역을 살았던 사람들이 마침내 피해구제를 받을 길이 열렸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안병욱)가 21일 '5·16쿠데타 직후의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법원의 재심과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노현섭 전국유족회장.

마산에서 50·60년대를 살았던 사람 치고 노현섭(1920년생) 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구산면 안녕마을 출신으로 일본 중앙대 법대를 졸업하고 노동운동에 투신, 마산자유노조 위원장과 전국자유노조 위원장을 지냈고, 노동자와 그 자녀를 위한 마산노동병원과 마산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한 인물. 그리고 1960년 4·19혁명 직후에는 한국전쟁 당시 억울하게 학살된 형 노상도 씨의 원한을 풀고자 마산유족회를 설립하고 전국유족회장을 맡아 진상규명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듬해 박정희 일당의 5·16쿠데타 세력에 의해 전격 구속된 후 '혁명 검찰부'와 '혁명재판소'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죄목은 민간인 집단학살의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한 것이 '적을 이롭게 했다'는 것이었다. 적용된 법은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일단 사람부터 잡아 가둔 후, 그들을 처벌하려고 뒤늦게(1961년 6월 22일) 제정한 '소급법'이었다. 이런 소급법은 명백한 위헌이다.

이렇게 하여 노현섭 씨는 8년여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출소 후에도 거의 노동력을 상실한 채 옥고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다 92년 사망했다.

이처럼 형은 이승만 정권의 군경에게 학살당해 시신도 찾지 못했고, 형의 죽음을 규명하려던 동생은 박정희 정권의 감옥에 갇혀 지내야 했다. 그로 인해 두 형제의 가족들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봉규

김영욱

김문갑


5·16쿠데타 정권에 의해 이런 일을 당한 사람은 노 씨 형제뿐만이 아니었다. 통영의 탁복수 씨, 김해의 김영욱 씨, 그리고 부산의 문대현·송철순(생존) 씨, 대구의 이원식 씨 등 전국 곳곳의 유족회 간부들이 불법 구금 또는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교원노조 마산 중등지회장이었던 이봉규(91) 선생도 약 7개월간 불법 구금상태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다. 또 당시 교원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직돼 교단에서 추방된 교사들도 3000여 명에 이른다.


혁명재판소의 피고인 소환장. 크게 보시려면 클릭하세요.

진실화해위는 진실규명 결정문을 통해 "5·16쿠데타 주도세력은 쿠데타의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이끌려고 계엄령을 선포하고 4·19 이후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벌인 진보적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고 이들을 불순세력 또는 용공세력으로 몰아 부당하게 탄압하고 처형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결정문에 따르면 쿠데타세력은 군·검·경 합동수사본부를 통해 예비검속된 인사들을 장기간 불법구금한 상태에서 가혹행위를 가하여 수사했으며, 중앙정보부는 이들을 처벌할 법률도 없는 상태에서 '범법자분류심사위원회'를 설치, A(주동), B(행동), C(희박) 등급으로 분류한 후 A급을 혁명재판에 회부했다. 이 과정에서 노현섭 씨 등 유족회 간부들은 대부분 A급으로 분류됐고, 그들이 발굴한 피학살자의 유골과 합동묘, 위령비는 군경에 의해 다시 파헤쳐지고 훼손됐다. 그야말로 '부관참시'의 만행이었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는 △공식 사과 △법원의 재심 △특수범죄처벌법에 대한 위헌 여부 판단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정부와 법원·헌법재판소, 입법부에 권고했다.

1960년 마산에서 발족한 한국영세중립화통일추진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간부들의 기념촬영. 옆에 희미하게 사회대중당 마산시당 간판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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