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해수욕장서 오줌을 못 눌 뻔했던 까닭

김훤주 2009. 9. 17.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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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1일 딸이랑 둘이서 중3 여름방학 마무리로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을 다녀 왔다. 주말이 아닌 금요일이라 붐비지는 않았다. 바닷가 모래사장을 따라 두 시간 남짓 웃고 얘기하고 낙서하고 사진찍으며 거닐다가 횟집에 들러 자연산 회(값이 많이 비쌌다. 6만원!!)를 주문해 먹는 호기도 부렸다.

바닷가에 있을 때, 우리 딸 현지는 까딱 잘못 했으면 오줌이 마려운데도 꾹 참을 뻔했다. 물론 횟집 같은 데 들어가 잠깐 변소를 다녀오면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임시 변소가 늘어서 있기는 했지만 '여자용' 표시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다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임시 변소가 세 칸 있었다. 첫째 문제는 남녀 구분이 돼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변소 세 칸 모두 위에 남자 표지(파란색)와 여자 표지(빨간색)가 같이 올려져 있었다. 남녀 공용인 셈이다.

그런데 사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여자 표지가 햇빛에 바래어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는 데 있다. 남자 표지와 여자 표지가 같이 있는데, 이 가운데 여자 표지가 거의 알아볼 수 없으니까 얼핏 보기에는 전부 남자 변소만 있는 줄로 착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오줌을 누고 나오는데 딸이 "여기에는 여자가 없어요." 했다. 그래 나는 한 번 돌아보고 나서는 "아닌데, 여기 있네~ 흐리기는 하지만." 했다. 그래서 딸이 변소에 들어가서 오줌을 눌 수 있었다.

빨간색이 아무래도 파란색보다 햇빛에 약한가 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임시 변소를 만들 때 둘 다 파란색을 쓰든지 해서 한 쪽이 먼저 알아볼 수 없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년에도 이번에 우리 딸이 임시 변소 앞에서 겪은 것과 똑같은 난감함이 되풀이될 것이다. 바로 옆 몰운대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임시 변소가 아닌 정식 변소라서 차이가 나는지는 모르지만.

몰운대에 있는 변소.

물론 우리 부녀는 그날 다대포와 몰운대에서 아주 즐겁게 지냈다. 점심 먹기 전에는 다대포 모래사장에서 즐거웠고 먹은 뒤에도 몰운대로 들어가 바닷가 그늘에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얘기도 하고 그냥 있기도 하면서 정을 도탑게 했다. 변소까지 좋았으면 돌아올 때 느낌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

다대포 다녀왔다는 증거 사진. ^.^ 검은 옷 입은 친구가 우리 딸.

하얀 조개 껍데기와 금빛 모래가 사랑스러웠다.


몰운대 가는 길에 내려다 본 다대포.

몰운대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우리 딸.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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