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나는 박진영 같은 싹수머리가 부럽다

김훤주 2009. 9. 1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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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역 문인을 만나 박진영을 얘기했다

9월 10일 지역 문인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저도 주섬주섬 몇 마디 거들었습니다만. 전국을 아우르며 그러면서도 지역을 중심으로 문단 풍토를 들려줬습니다. 쓴소리하는 중진이 없을 뿐 아니라 신진은 아예 싹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며 후배들을 보살피고 키워주는 원로도 없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원래 이 이야기는 '문단이 참으로 조용해졌다'는 입질에서 시작이 됐습니다.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인간들이 모인 동네가 문단인데 조용하다니요? 게다가 더 조용해졌다니요?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 말도 않고 눈치만 슬금슬금 보거나 눈치도 보지 않는 풍토로 바뀌었다 했습니다. 이런 말을 제게 들려주신 이는 좀 시끄러운 편이십니다만.

까닭이 무엇일까 얘기하다 보니 결국 '비판'에 이르렀습니다. 문단을 장악하고 있는 원로들이 후배들이 커올라 오는 꼴을 못 봐준다는 것입니다. 일부러 교묘하게 배제하기도 한다는데, 저는 이랬습니다. "그런 것은 제가 잘 모르겠고요 어쨌든 선배들 비판하는 후배 목소리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돌아다니면서 듣지 못하는 데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그랬더니 그 분이 말씀했습니다. "선배들이 그렇게 버티고 있는데 어떤 후배가 대놓고 쓴소리를 하겠어요. 쓴소리를 하는 후배들은 제 발로 떠나거나 아니면 못 견디다 그만두거나 하지요." 했습니다. 그랬다가 조금 간격을 두고 있더니, "하기는, 옛날에도 그랬어요. 지금이 옛날보다 좀 더 못하기는 하지만" 했습니다.

2. 박진영이 박재범을 데리고 있은 까닭은

뉴시스 사진.


선배들 깜냥이 이런 정도로 모자라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는데 그날 낮에 읽었던 JYP엔터테인먼트인가 박진영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제가 그랬습니다. "선생님, 박진영이나 2PM이나 재범이 같은 친구들 모르시죠?" 짐작대로였습니다. 저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몰랐으니까요. 하하.

죽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길지는 않았습니다. "요즘 뜨고 있는 아이돌 스타로 2PM('이피엠'이라 하면 맞아죽는다, '투피엠'이다.)이 있는데 여기 대장이 재범이다, 재범이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 2세인데 박진영이 고등학생 시절 데리고 와서 키웠다, 올해 스물둘인가 그렇는데, 2005년 인터넷에 쓴 글이 '가로늦게' 문제가 되는 바람에 8일 그룹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나갔다."

물론 저는, 재범이 2005년에 썼다는 그 글이 나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글질이라고 여기지만, 그리고 우리나라 그 또래 청소년들 인터넷에 하는 글질이 그보다 훨씬 더 거칠고 훨씬 더 쌍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주제는 그것이 아니니까 그냥 이렇게 말만 해 두겠습니다.

제가 박진영의 글을 읽고 두 눈이 번쩍 크게 뜨인 까닭이 있습니다. 그냥 재범의 글질에 대한 사과만 담고 있다면 그냥 그렇게 여겼을 것입니다. 이 대목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놀라게 했던 건, 성공할 자신이 있냐는 질문에 '박진영씨의 음악만 받지 않으면 성공할 자신 있다'고 대답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문장입니다. "재범이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우습게 봤고 겉으로도 그렇게 표현했다. 그게 좋았다. 우리 회사 어느 가수가, 아니 심지어 연습생이 '박진영 음악만 안 받으면 성공할 자신이 있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겠는가? 난 그 사실이 너무나 재밌었다." 저는 박진영이 이렇게 여겨줬다는 사실이 고마웠습니다.

3. 박진영에게서 느껴지는 김수영 시인의 그림자

이렇게 얘기를 드리니까, 자리를 같이했던 그 문인께서 "아, 대단하네요!" 그러셨습니다. 지역 문단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였습니다. 덤벼드는 재범이나, 그렇게 덤벼드는 모습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는 박진영 같은 이가 그리 흔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박진영 같은 싹수머리가 엄청난 무엇은 아닙니다. 스승은 제자가 자기를 넘어서는 순간에 가장 짜릿한 희열을 느낀다 하니까 말입니다. 그렇다 해도 지금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돌아다보이고 아쉬워하는 데는 문단뿐만 아닐 것입니다. 정치계도 교육계도 종교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박진영에게는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제도권에서는 대부분 잃어버린 것이기도 합니다.

"난 불량스러운 아이들을 좋아한다. 겉으로는 착한 척하면서 뒤로는 계산적인 음흉한 아이들은 싫지만, 겉으로 대놓고 삐딱한 아이들은 좋다. 불량스러운 아이들은 대부분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지만 발산할 기회를 찾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무대에 서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나와 회사 사람들이 자기편이라는 믿음만 심어줄 수 있다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끼가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 '불량스러움'은, 좀 미화(美化)해 말하자면, 존경하는 김수영 시인(1921~68)이 생전에 했던 말 "모든 문화는 불온하다."와 통합니다. '언제나 새롭지 않으면 문화라 할 수 없고, 새로우려면 기성(旣成)은 언제나 부정당하고 어디서든 전복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김수영이 이 말을 한 60년대에는 굉장한 충격이었겠지만, 지금은 박진영 같은 친구의 손 끝에서 이런 표현을 얻었습니다.

이런 표현이 물론 지금은 새삼스럽지 않은 상투(常套)입니다. 그런데 상투 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잡아채는 힘을 박진영은 갖고 있습니다. 떠도는 얘기처럼, 재범의 퇴장조차 '기획'일 수 있습니다. 사회 생리로 볼 때, 아마 '컴백'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무슨 각본의 존재를 얘기할 수 있겠으나, 저는 다만 재범과 진영의 '맞짱' 또는 '배짱'이 그저 산뜻하고 그리울 뿐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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