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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범죄 2

일본군 '위안부'와 민간인학살은 다른 사건이 아니다

“4283년(1950년) 7월 15일 당시 보도연맹원 360명을 마산형무소에서 수감한 후 특히 부녀자들에게 능욕을 자행하고……산골에서 총살한 후 암매장했는가 하면 또한 선박을 이용하여 바다에서 살해수장하였던 것이다.”(1960년 7월 마산피학살자유족회가 국가를 상대로 낸 고발장) “김영명(23) 씨는 미모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인간 됨됨이로 주위의 칭찬이 자자했던 교사였다. 지서장 김병희가 그녀의 미모를 탐내오다가 오빠를 빌미로 잡아가 강제로 능욕하고 학살해 버렸던 것이다.”(1960년 국회 양민학살조사특위 조사기록) 위에 인용한 글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의 민간인학살 과정에서 공공연한 성폭행이 벌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게다가 아래와 같이 한국전쟁 당시에도 ‘위안부’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증언..

‘법무사’란 낱말로 전쟁범죄 은폐하는 일본

1. 일본 후쿠오카 호국신사 동갑내기 몇몇과 함께 4월 28일부터 30일까지 일본 후쿠오카 일대를 둘러보았다. 후쿠오카에는 호국신사(護國神社=고고쿠진쟈)가 있었다. 첫째 날 후쿠오카성과 무슨 호수를 둘러본 다음 저녁 무렵에 찾았다. 들머리에는 커다랗고 멋진 도리이(鳥居)가 서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 호국신사는 아름다웠다. 아름드리나무가 곳곳에 늘어서서 숲을 이루고 있었다. 곱게 잔디가 깔린 마당에서는 비둘기가 무리 지어 다니고 있었다. 올려다보는 하늘은 맑았고 내리쬐는 햇살은 다사로웠다. 한켠에는 봉납(우리나라 가톨릭 식으로 하면 봉헌, 불교식으로 하면 시주) 받은 술통들이 쌓여 있는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여태 몇 차례 일본에 갔을 때 보았던 여느 신사와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그 이상으로 안온하고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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