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경찰이 지킨 정권, 경찰로 무너질수도…

기록하는 사람 2009. 5. 28.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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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일 서울에 다녀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분출된 국민들의 울분이 어디로 향하게 될 지 궁금했다. 물론 서울 분위기를 본다고 해서 그걸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봉하마을에서 이틀 밤낮동안 보고 느꼈던 그것과 비교해보고 싶었다.

"봉하마을에서 본 사람들은 정말 복받치는 듯 서럽게 울었다. 그들의 울음소리엔 한(恨)과 독기가 서려 있었다.
 

특히 남성 조문객들은 "이 ××놈들"이라는 욕설을 내뱉으며 울었다. 새벽 4시에 가까워 봉하마을을 걸어나가는 약 2km의 거리에도 마주 들어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나가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간헐적인 울음소리와 함께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25일 쓴 글 : '봉하 발(發) 분노한 민심, 어디로 갈까')

'독재타도'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국민의 분노는 정권과 조중동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서울은 봉하마을의 울분을 넘어 어떤 구체적인 상대에 대한 적개심이 느껴졌다. 적개심의 상대는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으로 통칭되는 수구언론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다만 아직은 상중(喪中)이라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도로를 차단하고 있는 경찰. 사진을 찍으려 하자 손으로 카메라를 가렸다.


이 적개심이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이후 어떻게 표출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서울에서 보고 느낀 바로는 이미 현 정권은 경찰력 없이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이 지탱해주고 있는 나라라면, 무너지는 계기를 만드는 것도 경찰이 될 가능성이 크다.


1960년 3·15 마산시민항쟁이 3·4월혁명으로 진화해 이승만 정권의 붕괴를 불러온 것도 경찰의 무리한 진압과 살상에서 비롯됐고, 1987년 6월항쟁도 박종철·이한열 열사에 대한 경찰의 고문과 최루탄에서 비롯됐다.

1987년 2월 7일 마산역 광장에 모인 시위대의 가두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전경이 역 진입로를 가로막고 있다.


어젯밤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와 덕수궁 대한문 및 시청 인근에 배치된 경찰을 보면서 87년 박종철 열사의 2·7국민추도식과 3월 3일 49재 행사가 경찰의 원천봉쇄 속에서 치러졌던 것을 떠올렸다.


1987년 2월 7일 마산 양덕성당과 가톨릭여성회관 사이를 막고 있는 전투경찰과 차량.


당시에도 수구언론들은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라"고 떠들었고, 전두환 정권은 4·13 호헌조치로 국민의 요구를 차단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끝내 굴하지 않고 6월항쟁을 만들어냈다.



현 정권이 29일 영결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를 못하게 한 것은 사실상 그의 말할 자유를 연금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들은 또 한 번의 '억압'을 보았다.

쇠는 때릴수록 강해지고, 공은 세게 칠수록 더 높이 튀어오르게 되어 있다. 억압이 강할수록, 울분이 깊을수록 저항도 커질 수밖에 없다. 곧 6월이다.

서울의 거리는 이미 경찰의 '계엄'상태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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