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봄에 가본 논은 생태계의 보고였다

김훤주 2009. 3. 1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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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올챙이 도롱뇽 논고둥 별꽃 봄까치꽃

논은 우리 역사에서 아주 중요하답니
다. 경남만 따져 봐도 논농사는 늦어도 3000년 전에 시작이 됐습니다.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琴川里) 일대 밀양강과 단장천이 합류하는 지점 유적이 그 증거입지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경남대학교 박물관이 발굴한 결과 보(洑)와 봇도랑, 무논(水畓) 같은 농경 유적을 비롯해, 불땐 자리와 마을 집터 같은 무문토기 시대 초기 생활 자취들이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런 논농사 자취는 2005년 발굴된 마산 진동면 청동기 유적지는 물론 발굴이 그보다 앞선 남강댐 수몰지구 진주 대평리와 울산 무거동·야음동 같은 신석기 유적지에서도 나타났다고 합니다. 우리 겨레와 역사를 함께하면서 먹을거리를 대주는 구실을 톡톡히 했다는 얘기입니다.

생태 기능으로 따져도 논은 소중한 존재랍니다. 야생 동물과 식물의 터전이기도 하고 물 속 유기물질을 없애는 오염 정화 구실도 한답니다. 물을 담아두는 저수지로 홍수 조절 기능도 맡아 하며, 물을 땅으로 스며들게 하는(지하수 함양) 구실도 톡톡히 하고 있지요. 게다가 여름철 기온을 낮추고 흙이나 자갈 따위가 쓸려 가지 않도록 하는 효과도 냅니다.

바로 이런 까닭으로 논은 습지 보호를 목표로 하는 국제회의기구 같은 데에서도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2005년 11월 아프리카 우간다 캄팔라에서 열린 '제9차 람사르 협약 당사국 총회'는 그런 면에서 참으로 뜻 깊은 회의였다고 합니다.

봇도랑에 있는 도롱뇽 알.

잘 보이게 하려고 하얀 그릇에 담아봤습니다.


올챙이 빠져나가고 남은 개구리 알 우무질.

아직 올챙이가 되지 않은, 개구리 알.


일본 미야기(宮城)현 다지리(田尻)정 가부쿠리(蕪粟) 늪과 일대 무논 21ha(7만평) 정도가 '국제적으로 중요한'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것입니다. 자연습지가 아니라, 인간이 개발해 농사까지 짓는 땅이 습지 목록에 오른 첫 사례로, '습지의 현명한 이용'이라는 람사르 협약의 새로운 사명을 구현한 본보기라 할 만하다는 평가를 당시에 받았습니다. 


이어서 지난해 창원 등에서 열린 '제10차 람사르 협약 당사국 총회'는, 11월 4일 폐회에 앞서 '습지 시스템으로서 논의 생물다양성 증진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여기서 총회는 벼가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의 식량원이며 논 습지에 사는 수생 동·식물은 농촌에 영양원을 대 줘서 건강과 복지에 효과를 낸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아울러 협약 당사국들은 이런 가치를 적극 인정해 논에서 살아가는 동·식물과 그동안 논의 생태 가치를 유지해 온 농경문화에 대해 더욱더 많이 연구함과 동시에 '국제적으로 중요한' 논 습지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함으로써 보전을 위해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도 밝혔습니다.

이리 너스레를 떠는 까닭은, 며칠 전 이런 논에 갔다 온 얘기를 하려는 데 있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그런 가치로움은, 지금 가까운 논에 가 보면 저절로 확인된답니다. 사람이 별로 없는 이른 아침이면 까치 같은 텃새뿐 아니라 왜가리 같은 철새도 가끔은 볼 수 있지요. 지난 8일 창원대학교와 경남지방경찰청 사이 조그만 논에 갔을 때도 그랬답니다.

올챙이들입니다. 귀엽지요? 예쁘지요?


하루 전 생태가이드 권영숙 씨와 동행했을 때는, 사진을 찍지는 않았는데, 나비도 있었습니다. 야산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물이 벼 포기만 남은 무논과 푸릇푸릇한 미나리꽝으로 흘러들었지요. 물이 고인 논과 봇도랑을 따라 개구리알과 도롱뇽알이 곳곳에 무더기무더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고운 진흙이 도롱뇽알을 덮었는데, 논고둥(어쩌면 다슬기 같기도 합니다만)도 두어 마리씩 붙어 있었답니다. 그 옆에는 알에서 갓 깨어난 올챙이들이 꼬물꼬물 헤엄쳐 다니고요. 또 물 위에는, 올챙이들이 깨어나고 벗어난 우무질이 거품을 보글보글 머금었습지요. 하하.

권영순 씨는 그날 뜰채로 올챙이 따위를 건져보더니 "하루살이 유충으로 보이는 것도 있네" 하면서 "조금 있으면 잠자리 유충도 나오겠다"고 했답니다. 올챙이가 나왔으니까, 그것을 먹이로 삼는 잠자리 유충도 이제 곧바로 나타나리라는 얘기랍니다. 우리 딸 현지는 이것들 가만 쳐다보고 있다가 "우왕 귀엽당~" 탄성을 내지릅니다.


논두렁에다 눈길을 던져봅니다. 아직 많지는 않지만, 조그마하면서 땅에 들러붙다시피 한 풀꽃들이 피어나 있습니다. 이처럼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풀들은 지열(地熱)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 차가운 바람을 조금이라도 덜 맞으려고 이렇게 땅에 바짝 엎드린다고 합니다.


많은 꽃잎이 낱낱이 벌어진 친구 이름은 별꽃이랍니다. 풀 도사 박덕선 선생께 물었더니 일러줬습니다. 생긴 모양이 별을 닮아 그렇다는군요. 별꽃보다 꽃잎이 큰 풀꽃은 개불알꽃이랍니다. 꽃이 진 다음 열리는 씨앗이 개불알을 닮았다고 붙은 이름이랍니다. 봄까치꽃이라고도 한답니다. 

물결 아래 보이는, 투명한 도롱뇽 알.

논고둥일까요? 다슬기일까요?



습지이면서 동시에 농지인, 그래서 더욱 소중한 논이, 이처럼 봄을 맞아 생명의 만화방창(萬化方暢)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 한 번 나가 보시지 않으렵니까. 쑥 같은 봄나물도 캘 수 있겠습니다.(많이 캐지는 마시기를, 까닭 없이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김훤주
※ '경남도민일보' 3월 11일치 17면 생태/환경 판 '몸으로 푸는 지역 생태'에 실었던 기사를 고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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