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보일러 끄고 다시 장작 때는 농촌마을

기록하는 사람 2009. 1. 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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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농촌지역에 다니다 보면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풍경이 있습니다. 바로 땔감용 나무와 장작이 가득 재여 있는 모습입니다.

사실 아무리 산골이라도 우리나라 농촌가옥은 70년대 새마을운동을 거쳐 80, 90년대를 지나는 동안 대부분 기름보일러로 난방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또한 조리용 연료도 대부분 가스를 쓰고 있죠.

특히 그렇게 된 데에는 박정희 정권 시절 산림녹화를 위해 벌목을 금지한 탓도 컸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엔 군청이나 면사무소 산림담당 직원들이 단속권을 갖고 집집마다 '나무 치러' 다녔는데, 거기에 걸릴까봐 온 동네가 벌벌 떨면서 단속 직원에게 이장이 뇌물을 찔러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장작이 가득 쌓여 있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올 겨울 들어 다시 아궁이에 나무를 때는 농가들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께 물어봤더니 전에도 나무를 때는 집이 없진 않았지만, 올 들어 더 많아졌다더군요.

바로 '기름값이 무서워서'였습니다. 경기불황의 여파가 시골마을까지 닥치고 있는 거였습니다. 도시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부쳐주는 생활비나 용돈이 아무래도 줄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연료비 감당이 어려워졌을 수도 있습니다.

집집마다 이렇게 땔감이 재여있습니다. 올 한해 겨울동안 때울 연료입니다.

요즘 보기 힘든 지게도 나무를 땔감으로 쓰는 집은 필수입니다.

위에 매달린 곶감과 아래의 장작이 조화를 이룹니다.

길가에도 땔감용 나무들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나무를 해올 힘이 남아 있는 노인들은 요즘도 날이 좀 풀린다 싶으면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가 간벌(間伐)해둔 나무들을 지고 내려오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럴 힘이 없는 연로하신 노인들은 그냥 낮에 마을회관이나 노인당, 노모당에 나와 하루를 보내고 계셨습니다. 집은 냉방으로 방치해뒀다가 저녁 때쯤 되어야 들어가 잠시 보일러를 돌린 후 잠드신다고 합니다.

저희 동네에서는 이런 솥을 '백솥'이라 불렀는데요.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백솥을 뒤집어 엎어 놓은 모습입니다.

저녁무렵 방을 데우기 위해 군불을 때고 있습니다.

심지어 도시화가 진행된 읍 지역의 식당에서도 갈탄 난로나 장작 난로, 연탄 난로를 설치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한 식당에서 발견한 장작난로입니다.

또다른 식당에서 발견한 갈탄난로입니다.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갈탄이 뭔지 아시죠? 화력이 엄청 좋습니다.

갈탄입니다.


이처럼 경기 불황이 농촌의 읍-면지역을 다시 70년대 이전으로 되돌려 놓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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