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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 선생은 『미움받을 용기』를 읽었을까

기록하는 사람 2023. 9. 1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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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줬으면 그만이지』 저자)

『미움받을 용기』(인플루엔셜, 2014)을 다시 꺼내 읽었다.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가 쓴 이 책은 알프레드 아들러 심리학을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200만 부,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이 팔린 책이라는데, 애초 베스트셀러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을 갖고 있던 나로선 굳이 사서 읽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대학생이던 아들녀석이 사서 읽는 바람에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싶어 보다가 매료되었던 책이다. 그때가 5~6년 전이다.

김장하 선생

몇 년 뒤 진주 어른 김장하 선생을 취재하던 중 그분의 삶에서 아들러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대가 없는 나눔, 간섭 없는 지원, 바라는 것도 없고 기대할 것도 없는 보시를 실천해온 분이 김장하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선생에게 살아오면서 언제 가장 행복했는지를 물었는데, “글쎄, 매일 행복하니까”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때도 아들러가 말한 행복의 조건 ‘공헌감’을 떠올렸다. 그래서 책 『줬으면 그만이지』에서 『미움받을 용기』를 인용하며 아들러 사상을 살짝 언급하기도 했다.


올 연초 책 출간과 동시에 MBC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가 방송되고 화제로 떠오르면서 나에게도 전국 곳곳에서 북콘서트와 강연요청이 줄을 이었다. 거기서 만난 많은 분들도 아들러와 김장하의 공통점을 이야기했다. 충북 청주 북콘서트에서 독후감을 낭독한 한 여중생은 “인정욕구에서 벗어나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라는 아들러의 사상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분이 김장하 선생”이라고 말했다. 이쯤 되니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뭔가가 또 있었나?’ 의심이 들었고, 『미움받을 용기』를 다시 정독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미움받을 용기


과연 그랬다. 김장하 선생은 평생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체질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에 따른 금주였다. 그러나 술꾼을 싫어하거나 멀리하지 않았다.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음식이 나오면 늘 “한 잔 하지?”라며 먼저 술을 권한다.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학교의 교사 중 애주가가 있었다. 선생은 그 교사를 위해 보약을 지어 보냈다. 아들러는 “모든 인간관계의 트러블은 대부분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는 것에 의해 발생한다”고 말했다.


아들러는 심지어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것조차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는 것’으로 봤다. 이에 청년이 항의하며 묻는다. “그러면 아이가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아도 그것은 아이의 과제니까 방치하라는 겁니까?” 철학자가 답한다. “아들러 심리학은 방임주의를 권하는 게 아닐세. 그게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지켜보는 것. 공부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이 본인의 과제라는 것을 알리고, 만약 본인이 공부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사를 전하는 걸세. 단 아이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말아야 하네.”


김장하 선생도 그랬다. 자신의 장학생 누구에게도 “공부 열심히 해야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만날 때마다 ‘뭐 필요한 게 없는지’를 물었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고 말할 뿐이었다. 교장·교감에게 “이런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거나 교사에게 “이런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학교 교육은 교육자에게 맡겨져야 하며, 저는 교육을 위한 환경 및 여건의 조성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선생은 이렇게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확실히 분리하고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실천했다.


한 증권사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장학생이 김장하 선생을 찾아왔다. “선생님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되어서 죄송합니다.” 그러자 선생이 말했다. “내가 그런 걸 바란 게 아니야.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
아들러 심리학에서도 ‘평범해질 용기’를 강조한다. 다시 철학자의 말이다. “왜 ‘특별’해지려고 하는 걸까? 그건 ‘평범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지. (…) 자기수용은 그를 위한 중요한 첫걸음일세. 만약 자네가 ‘평범해질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질 거야.”


이밖에도 다시 꺼내 읽은 책 곳곳에 김장하 선생이 걸어온 삶의 태도가 녹아 있었다. “줬으면 그만이지. 칭찬하지도 나무라지도 말고 그대로 봐주기만 했으면….”


문득 궁금해졌다. 김장하 선생은 과연 『미움받을 용기』를 읽었을까? 며칠 후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혹시 안 보셨다면 꼭 선물해야지.

 

경남대표도서관 <도서관 가는 길> 9월호(통권 49호) 칼럼

*경남대표도서관 <도서관 가는 길> 9월호(통권 49호)에 칼럼으로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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