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행실도의 무시무시한 그림들


거제 칠천량해전공원 전시관에 가면 무시무시한 그림들이 있다. 조선시대 삼강(三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열녀도들이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서 가져왔다


삼강은 알다시피 임금에 대한 신하의 도리, 남편에 대한 아내의 도리, 어버이에 대한 자식의 도리 셋을 이른다. 주인은 임금과 남편과 어버이다. 종속된 것은 신하와 아내와 자식이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광해군 시절 만들어졌다. 앞서 세종 때는 <삼강행실도>, 중종 때는 <속삼강행실도>가 만들어졌었다. 광해군 시절은 임진왜란이 끝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다



임진왜란은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래서 충신·효자·열녀가 많이 배출되었다. 열녀·충신·효자가 많은 시절은 살기 팍팍한 시절이었다. 살아남기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절이었다.


그림을 보면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저절로 알게 된다. 전쟁은 특히 어린아이와 여자들한테 끔찍했다.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남자 어른은 저항할 힘이라도 있기에 맞서 싸울 수라도 있었지만 어린아이와 여자들은 속절없이 당하여야만 했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열녀도는 이를 잘 보여준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유일한 패전을 주제로 삼은 칠천량해전’의 공원이고 전시관이다 보니까 전쟁의 끔찍함과 패전의 더욱 끔찍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소재로 이 열녀도를 호출한 셈이다


어떻게 해서 열녀가 되었을까


열녀도에 나오는 내용은 이렇다. 어쭙잖은 실력으로 거기 나오는 한문과 한글 기록을 토대로 대충 지금 우리말로 바꾸어 보았다


효자는 허벅지 살을 베어 어버이한테 먹이면 될 수 있었고 충신은 난리를 피해 서울을 떠나는 임금을 업고 걷기만 해도 되었다. 하지만 열녀는 이처럼 목숨을 바쳐야 될 수 있었다몸과 마음의 일부를 바쳐서는 될 수 없는 것이 열녀였다



김씨 머리가 끊어지다(金氏斷頭


김씨는 영흥부 사람이니 유학(幼學) 김윤흡의 아내라 임진왜란에 도적의 무리가 문득 그 집에 이르러 더럽히고자(욕보이고자) 하거늘 김씨가 아이를 안고 거부하여 따르지 않으니 도적이 머리를 베고 가니 죽은 얼굴이 산 것처럼 아이를 품고 앉았더라.” 


원씨 대나무를 붙잡다(元氏拏竹


원씨는 장수현 사람이니 박이항의 아내라 그 지아비를 따라 왜적을 피하더니 도적이 문득 이르러 원씨가 두 딸을 거느리고 실대(면죽綿竹) 사이에 숨었더니 도적이 먼저 둘째딸을 잡아 더럽히고자 하여 흰 칼날을 휘두르며 협박하거늘 따르지 않았고 맏딸을 잡아 목을 베는 형상으로 겁을 주거늘 어머니와 딸이 서로 더불어 나무를 움켜쥐고 발분하여 꾸짖기를 더욱 모질게 하였더니 도적이 크게 화가 나서 끄집어내니 원씨는 한 손으로 아이를 붙들고 한 손으로 대나무를 붙잡아 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도 굽히지 않으니 도적이 먼저 두 딸을 죽이고 다음에 원씨에게 미치니 목숨이 이미 끊어졌어도 손이 대나무를 놓지 않더라.” 



유씨 목 잘려 죽다(柳氏斬殺


유씨는 영평현 사람이니 유영의 딸이고 유학 유윤정의 아내라 왜적이 그 아비와 지아비를 죽이고 유씨를 더럽히고자 하거늘 유씨 말하기를 아비와 지아비가 다 죽었으니 나 혼자 살아 무엇 하랴 하고 굳게 거스르며 따르지 않으니 도적이 노끈으로 손을 매어 앞으로 이끌고 뒤로 모니 유씨 말하기를 비록 죽어도 결연히 너를 따르지 않으리라 하고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으니 도적이 목을 잘라 죽이더라.” 


박씨 목을 매다(朴氏結項


박씨는 장성현 사람이니 참봉 김중총의 아내라 지아비의 상중(喪中)에 있으면서 제사를 정성들여 극진히 하고 늙은 시어미를 효양(孝養)하더니 왜구의 난리에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젖먹이 아이를 안고 수풀 사이에 숨어 엎드렸더니 도적이 먼저 시어머니를 죽이고 박씨를 끌어내어 협박하여 앞세워 가려 하거늘 박씨 굳이 거부하며 따르지 않고 소리를 크게 하여 꾸짖고 삼()실 노끈으로 목을 매어 죽다.” 



소사 물에 몸을 던지다(召史投水


하 소사(소사는 과부를 점잖게 이르는 말)는 단성현 사람이니 서얼(庶孼=첩이 양인이면 그 아들이 서자가 되고 천민이면 그 아들이 얼자가 된다.) 이유해의 아내라 왜구의 난리에 가위를 차고 그 집사람한테 이르기를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죽을 것이니 비록 주검 쌓인 가운데 있을지라도 (찾는) 일로써 보람을 삼으라 하더니 홀로 왜적을 만나 어미와 형제가 흩어져 수풀에 숨었더니 소사 먼저 잡힘을 입어(당해) ()가 일가(一家)에 미칠까 두려워 도적으로 하여금 골어귀(谷口)에서 5리 남짓 나오게 하여 장차 강을 건널 때 자식을 업고 물에 뛰어들어 죽다.” 


이씨 눈알을 뽑히다(李氏穿眼


이씨는 선산부 사람이니 충순위 송진성의 아내라 왜란을 만나 시어머니를 업고 산에 들어가 숨었더니 하루는 도적이 오기에 이씨가 베를 베어내서 머리와 낯을 감싸니 도적이 그 낯을 보려고 하는데 이씨가 거스르기를 더욱 굳게 하니 도적이 칼로 그 두 눈을 뽑아내어도 오히려 도적을 꾸짖고 굽히지 않았는데 도적이 어지러이 베고 찌르고 가니라.” 



주씨 스스로 목을 매다(朱氏自縊


주씨는 함흥부 사람이니 참봉 문오의 아내라 그 때 왜놈의 도적이 성에 가득하였거늘 문오가 아들 덕교·선교·명교와 더불어 의병에 들기를 꾀하였더니 도적이 이를 알아채고 부자를 묶어 놓고 마디마디 베었으니 주씨 통곡하며 이르되 내 남편 내 아들이 다 도적에게 죽었으니 내 홀로 살면 천지간에 한 죄인이라 하고 드디어 스스로 목을 매어 따라 죽으니라.” 


안씨 팔다리가 떨어져나가다(安氏肢解


안씨는 충주 사람이니 유학 김응신의 아내라 왜적에게 잡힌 바 되어 속여서 말하기를 내 집 보화를 산골에 감추어 두었으니 청하건대 거두어 가져다가 따르리라 하고 그 남편 무덤 앞에 이르러 손으로 무덤의 풀을 헤치며 이르되 내 양인(良人)○○○○니 이를 버리고 어디 가리오 차라리 피는 무덤 위에 적시고 넋은 지하로 따라가리라 하고 힘써 거부하고 따르지 않으니 도적이 팔다리를 (몸에서) 잘라버리고 가니라.” 


왕국과 민국은 어떻게 다를까?


열녀도는 전쟁의 끔찍함과 패전의 더욱 끔찍함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처음 만든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에 더해 왕국의 끔찍함까지 보여준다국가의 보살핌 없이 삶을 살아내어야 했던 처참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왕국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왕국은 임금의 나라다왕국의 주인은 백성이 아니라 임금이다백성을 위하여 임금이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라 임금을 위하여 백성이 존재하는 나라다이런 삼강행실도와 이런 열녀도는 그러니까 왕국에서만 나올 수 있었다



삼강행실도 열녀도를 보면 나라나 임금이 하는 일은 없다나라와 임금이 하는 일이 없으니까 생길 수밖에 없는 일들이 그려져 있다나라가 나라를 제대로 지키고 임금이 백성을 제대로 돌보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그려져 있다


조선이 왜적의 침략을 막아내었으면 열녀들은 열녀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었다임금이 백성을 근본으로 삼았으면 열녀들은 열녀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었다나라가 나라를 내어주고 임금이 백성을 내어주었기에 열녀가 양산된 것이다


여태까지 대한민국은 진짜 민국이었을까?


그리고 왕국은 얼마 전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1948년 대한민국이 들어선 이래 우리가 살았던 나날들이 과연 왕국이 아닌 민국이었을까? 말만 민국이고 실은 왕국이 아니었을까? 대통령이 국민을 위하여 하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을 위하여야 하는 나라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1948년 이후에도 왕국에서 살았다. 경제 사회까지 들면 길어지니까 정치 분야만 얘기해도 이렇다. 우리는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는 대상이 아니었다.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였다. 그리고 꼭대기에는 독재자 대통령이 있었다. 대통령은 스스로를 임금이라 여겼다.


1963년에 태어난 나는 197917살 고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대통령은 박정희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박정희 말고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실제로도 박정희 말고 다른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국민학교 때부터 시월유신 찬양 교육을 받았고 학교는 군대와 다르지 않았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얻어맞아야 했다. 박정희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중앙정보부에서 치아에 구멍이 뚫리고 손톱이 뽑혔다는 이야기를 아버지한테서 숨죽여 들어야 했다


전두환이 집권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19805월 광주학살은 2년이 넘도록 국민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 뒤 광주학살의 진상이 조금이나마 알려지고 나서는 학살에 문제 제기를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가야 했다. 광주학살에 항의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감옥에 가야 했다



19876월항쟁이 일어나고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권력자들은 민주주의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 또는 현실적 범죄자로 다루었다. 노동자와 농민의 권익을 위하여 조직을 만들고 홍보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이 되는 시절도 오래 지속되었다


대중의 민주주의 역량이 커지면서 정도는 약해졌지만 김영삼·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도 많은 사람들은 늘 감시당한다는 느낌 속에 살아야 했다. 자기가 쓰는 글과 하는 말이 정권에게 밉보이지 않을까 은근히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줄어들지 않았다


우리는 그동안 대한왕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게 대한민국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우리 힘으로 왕국을 허물고 민국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는 일부 극소수 특권층이 아니라 국민 또는 시민 대중이 주인 대접을 받는 대한민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한민국을 진짜 민국으로 만들려면 고통과 희생이 더 있어야 할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지난해 추위에 떨면서도 집단을 이루어 촛불을 들었던 것처럼. 그러나 옛날처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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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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