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호의 <인터뷰 특강>을 읽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오픈하우스)이다.
지승호는 지금까지 40여 권이 넘는 인터뷰집을 책으로 낸 인터뷰 전문가다. 매체에 소속되지 않고 자신이 인터뷰한 걸 책으로 낸다. 그래서 그의 인터뷰 노하우가 예전부터 궁금했다. 이 책 이전에 나온 <지승호 더 인터뷰>가 그런 책인 줄 알고 읽었다가 아니어서 약간 아쉬웠는데, 이번에 자신의 인터뷰 철학과 기법을 담은 책이 나와 반가웠다.
책을 읽으면서 평소 내가 생각해왔던 것과 일치하는 내용이 많아 공감했고, 미처 몰랐던 걸 짚어주는 부분에선 아~ 하며 무릎을 치기도 했다.
가장 공감한 건 인터뷰 대상(인터뷰이) 인물에 대한 '사전 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이었다. 다음은 배우 오지혜의 말이다.
"근데 뭐에 확 마음이 열렸냐 하면요. 상상을 초월하는, 저보다 저를 더 잘 알고 오셨더라고요. 무서울 정도로 오지혜보다 오지혜를 더 잘 알 정도로 공부를 해오시니까, 20년 된 친구보다 더 나를 잘 아니까 술술 마음을 열 수밖에 없는 그런 힘이 지승호 씨한테 있는 것 같아요."
지승호 인터뷰 특강
노회찬 의원도 지승호와 인터뷰한 경험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그(지승호)는 잘 준비된 인터뷰어다. 인터뷰이에게 직접 물어봐야 하는 것 이외엔 모두 사전에 파악하고 온다. 준비가 부족한 인터뷰어들은 인터넷만 뒤지면 금방 알 수 있는 것까지 묻는다.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어떤 내용이죠?'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지승호는 오효진이란 분의 글을 인용해 다시 한 번 사전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는 나훈아 씨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미리 준비해간 자료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의 신상 명세와 최근의 기사, 그리고 신문사 조사부에서 복사한 오래된 신문과 잡지 기사, 이런 것들이었다. 그 자료의 많은 곳에는 붉은 줄이 쳐져 있었다. 내가 지난밤 늦게까지 공부했던 것이다. 그걸 보고 나훈아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를 만나러 오시기 전에 저에 대해 이렇게 많이 공부해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떤 젊은 기자들은 저를 만나러 오면서 볼펜과 수첩만 달랑 들고 와서, 저, 본명이 뭐지요? 합니다. 그런 기자를 만나면 저는 당장 그럽니다. 뭐요? 당신 같은 사람 필요 없어. 당장 나가!" -오효진 <인터뷰의 황제가 되는 길>
사실 나도 26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해오면서 수많은 인터뷰를 해왔지만, 사전 조사의 중요성을 깨달은 건 불과 5~6년 전부터다. 그 전까진 일간지에 실을 인터뷰만 하다보니 몰랐는데, 월간지용으로 비교적 호흡이 긴 인터뷰를 하게 되면서부터 그걸 절실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걸 깨달을 무렵, 나를 인터뷰하겠다는 기자들이 제법 찾아오기도 했는데, 막상 내가 인터뷰를 당해보니 상대가 얼마나 허술하게 준비를 해왔는지가 눈에 뻔히 보였다. 그렇게 깨닫고 나니 이전에 내가 해왔던 인터뷰가 부끄러워졌다.
게다가 이미 방향을 정해놓고 원하는 대답을 끌어낸 후, 내가 의도한 방향으로 기사를 써왔던 과거 관행도 새삼 떠올랐다. 이 책에서도 그런 인터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음은 김어준의 말이다.
"이 사람이 한 말과 내가 가졌던 그 사람의 이미지가 합쳐져서 '저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고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그 사람의 말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면 인터뷰어가 굉장히 객관적이고 오픈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승호는 또한 고 신해철의 말을 인용하여 잘못된 인터뷰의 문제를 지적한다.
"누구의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인터뷰이를 비인격적으로 쥐어짜먹으려는 생각을 할 때, 내가 한 말 중에서 최고로 자극적인 말을 부풀려서 미디어의 이익에만 부합하게 쓸 때, 그때는 서글퍼요."
지금도 많은 매체들의 인터뷰가 이런 식이다. 또한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제대로 소통하지 않는 인터뷰 문제도 거론한다. 나 역시 예전에는 그래왔다. 다시 김어준의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터뷰어는 말은 시켜놓고, 상대방의 말을 안 들어요. 왜냐하면 다음 질문을 해야 되거든. 졸라게 다음 질문을 생각해. 그러면 사실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질문 하나 던져서 스피커 틀어 놓고, 자기는 졸라게 딴 일을 하는 거지. 말은 하는데 실제 커뮤니케이션은 안 되는 겁니다. 소통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 소통이 안 되는 인터뷰,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발췌하는 인터뷰가 대부분이죠."
지승호는 이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조언한다.
"친구들과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도 '도대체 오늘 내가 무슨 말을 들었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남의 말을 중간에서 끊거나, 상대방의 말을 듣는 동시에 내가 할 말이 머릿속에 맴돌다 보니 상대방의 말이 들리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그런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다음 질문을 생각하고, 오늘 '이런 이야기를 꼭 듣고 가야 해'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러면 인터뷰이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거나, 자기 프레임대로 인터뷰이의 말을 해석하게 되지요. 편석환 교수의 말처럼 입을 닫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다 보면 다음에 이어나갈 질문이 저절로 생각나고,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질 텐데 말입니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끊지 않고 충분히, 차분한 태도로 듣다 보면 상대방도 편하게 대화를 한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을 열고 이런저런 질문에 답을 해줄 겁니다."
게다가 인터뷰어인 자신을 멋지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인터뷰를 글로 옮길 때 적당히 마사지하는 관행까지 짚어준다. 나 또한 내 실수를 글에서 커버했던 적이 있어 뜨끔했다.
"인터뷰이들이 저를 신뢰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터뷰 현장에서 제가 바보 같은 질문을 던져 제 자신이 망가진 장면까지 그대로 기록으로 남기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인터뷰 글은 인터뷰어가 자신의 시각으로 기록을 남기는 만큼, 스스로 부끄러웠던 부분의 기록을 줄이거나 자신을 더 돋보이게끔 다듬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비아냥대는 소리나 지루하다는 평을 감수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이가 왜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었는지에 관한 실패의 기록도 고스란히 남겼습니다. 저는 그것이 '기록자'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인터뷰를 하는 이유는 뭘까? 책에서 인용한 김혜리 기자의 아래 글에 그 이유가 들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발각되기를 기다리는 가벼운 비밀을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상적으로 사회를 대면하는 공적인 얼굴과 무덤까지 안고 갈 내밀한 의식 사이에 있는 미묘한 중간지대입니다. 결코 스스로 나서서 헤쳐 보이지는 않지만, 적당한 때와 장소에 적당한 손길이 매듭에 닿으면 스르륵 열리는 보따리를 상상하면 비슷할 것 같습니다.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인물일수록 이 중간지대는 풍요롭게 우거져 있습니다."
인터뷰가 가진 힘, 중요성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답을 구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가 관계된 전문가들을 깊이 있게 인터뷰하는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우리 연구원들에게 '한 분야에서 1등에서부터 5등까지(물론 그게 등수가 딱 매겨질 수 있는지는 몰라도) 최고의 전문가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해봐라. 인터뷰가 끝나면 당신이 일등이다. 당신이 최고의 전문가가'라고 얘기합니다. 이게 농담이 아닙니다. 1등은 절대 2등한테 안 물어보잖아요. 2등은 3등한테 안 물어봐요. 그러니 각자 자기 것만 알고 있는 거죠. 1등에서 5등까지, 모든 것을 듣고 나면 답이 딱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잘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지승호는 책의 곳곳에서 자신의 노하우를 풀어놓고 있다. 그런데 내가 '이거다'하며 무릎을 친 것은 아래 대목이다.
"인터뷰 역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전하는 거니까, 그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공부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을 이해하려면 당연히 문학이나 영화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야 하고, 철학과 역사를 공부해야 할 것이고요. 그걸 공부한 후에야 다른 기술적 고려들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결국 인터뷰는 '기술'이나 '기법'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즉 인터뷰어 스스로 인생의 내공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인터뷰를 일삼아 하는 기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하지만 기자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모두 인터뷰다. 친구나 동료, 가족, 연인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 또한 인터뷰의 연속이다. 나는 후배들에게 마음이 끌리는 이성이 있으면 그를 인터뷰해보라고 조언한다. 그의 말을 열심히 잘 들어주면 그 또한 호감을 갖게 될 것이라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에게 끌리게 되어 있다. 이 책에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곳곳에 서술되어 있다.
이렇듯 상대의 호감을 얻고 싶은 사람, 인간관계를 잘 해보고 싶은 사람이 읽어도 큰 도움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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