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삼성 세탁기 화재 원인 규명, '역시나'였다

김훤주 2010. 8. 5.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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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비자단체 예측 벗어나지 않은 삼성전자 조사 결과

장만한지 1년도 안 된 세탁기가 작동도 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저절로 불탄 사고에 대한 삼성전자의 자체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비자단체의 예측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 홍보실 관계자는 7월 30일 "(7월 13일 창원 한 아파트에서 불난 세탁기를 회수해) 자체 연구소에서 정밀 조사를 했으나 제품 전소로 원인 불명이라는 결과가 나왔으며 이는 다른 전문 연구기관에서 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기 앞서 소비자단체들은 이미 삼성전자가 불난 세탁기를 회수해 갔다면 객관적인 조사 결과는 기대하기 어렵고 제품 결함도 확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을 했었습니다.

삼성전자가 거둬간 불탄 세탁기


이렇습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7월 28일 "원인 규명이 제대로 안 되거나, 자체 제품 결함이나 하자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거의 100%"라고 삼성전자의 자체 조사 결과를 예상했습니다.

녹색소비자연대 전국협의회 관계자도 같은 날 "기업들이 문제 제품을 수거만 하고 사후 설명과 대책을 내놓지 않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 불만이 높다. 기업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같은 취지로 얘기했습니다.

전화 연결이 된 삼성전자 홍보실 관계자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더니 "이것으로 모든 것이 일단락"이라면서 "리콜이라도 하라는 말씀이냐,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앞에 얘기한 것이 전부다"라고 답을 하더군요.

해당 세탁기 제품 전체에 대한 전면 조사는 물론 문제 세탁기에 대한 좀더 정밀한 조사 분석 또는 공개 사과나 자발적 리콜 같은 것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로써, 특별한 계기가 생기지 않는 이상 이번 세탁기 화재 사고의 원인과 책임 소재 규명, 그리고 그에 따른 조치 등은 더이상 이뤄지지 못하게 됐습니다.

문제가 된 세탁기 화재는 7월 13일 오후 창원의 한 아파트 가정집에서 일어났습니다. 전원은 꽂혀 있었으나 작동은 시키지 않고 있던 세탁기가, 갑자기 소리를 내고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불이 나 발코니와 안방으로 불길이 일부 번졌던 것입니다.

안방 커튼에까지 옮겨붙은 세탁기 화재.

2. 삼성이 겨냥한 바는 '원인 규명'이 아닌 '무마'

삼성전자가 이번 세탁기 화재를 두고 보여준 대응은 명백하게 '무마'를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네 만든 제품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소비자를 위험한 지경에 빠뜨렸는지 알아보는 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고가 나자 삼성전자 관계자는 손해 보상에 더해 합의금을 주겠다며 언론에 나지 않도록 해 달라고 피해자에게 말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제품을 거둬가 자체 조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 태도였습니다. 7월 26일 결과가 나왔는지 물었더니 삼성전자 홍보실 관계자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나왔다 해도 알려드리지 않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드러내 보이지 않겠다는 의도를 그대로 보였습니다.

삼성전자의 이런 대응은 이번 창원 사고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앞서 있었던 사고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삼성전자는 올 5월 13일 서울에서 휴대전화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을 때, 피해자에게 500만원을 주면서 신문·방송에 알리지 말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창원에서 일어난 세탁기 화재 처리 방식과 그대로 빼닮았습니다.

이어 6월 23일 경기도 용인에서 있었던 지펠냉장고 화재에서도 삼성전자 관계자는 언론플레이를 말라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3. 자발적 리콜조차 이건희 회장의 '버럭' 때문

물론 삼성전자가 자발적 리콜을 한 적도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29일 지펠 냉장고 21만대를 리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리콜도 과정을 들여다보면 순수성을 의심받을 정황이 충분하답니다.

이렇습니다. 경기도 용인시 한 아파트 9층에서 지펠 냉장고가 폭발한 날은 10월 10일. 문짝이 날아가 다용도실 유리문과 창문을 깼으며 그 파편 때문에 1층에 있던 차량 3대가 부서질 정도로 큰 소동이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삼성전자는 묵묵부답하다가 29일 자발적 리콜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 19일 사이에 이건희 전 회장의 '무슨 품질이 이렇느냐'는 '대로(大怒)'가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삼성전자는 2005년 3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생산한 냉장고 SRT·SRS·SRN 계열 모델을 리콜하면서 "제상 히터 연결 단자의 절연성 저하가 안전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안전 장치를 설치한다"고 취지를 설명했었습니다.

이는 창립 40주년이라는 '경축일'을 이틀 앞두고 나온 결정이라 더욱 눈길을 끌었습니다. <뉴시스>에 따르면 재계 한 관계자는 당시 "갑작스런 리콜 결정은 시기상 이 전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당연하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당시 이 전 회장은 회장과 등기 이사 등 삼성 관련 직책이 없었습니다. 2008년 4월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사건 등으로 특검을 통해 기소되면서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이 전 회장의 '대로'를 놓고 일부에서는 당연히 복귀를 위한 이벤트라는 추측이 나왔습니다. '이건희가 없으니 삼성이 제대로 안 굴러간다'는 것을 잘 보여줄 계기라는 얘기였습니다.

다섯 달이 지난 2010년 3월 24일 이 전 회장은 '위기론'을 앞세워 복귀했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한 치 어긋남도 없이 그대로 맞아떨어졌습니다.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 기업이 무너진다. 삼성도 어찌 될지 모른다.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


이 회장의 이런 쇼맨십은 뿌리가 있습니다. 1995년 3월 품질에 문제가 있다면서 휴대전화와 무선전화 등 15만대 시가 500억 원어치를 구미공장에서 불태운 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 회장이 설날 선물로 임직원들에게 돌린 제품에 문제가 나타나자, 팔려나간 제품까지 모두 거둬들여 직원들 보는 데서 불태운 이른바 '화형식 사건'입니다.

이는 삼성전자 '애니콜' 신화의 밑거름이 되는 한편으로, 이건희 회장의 품질 제일 경영론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히기도 한답니다.

4. 삼성은 아직도 봉건주의 '왕조 시대'

그런데, 현재 시점에서 이 회장이나 삼성에게 이런 이벤트를 벌일 필요성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삼성 세탁기의 위험한 화재가 아무 결과도 못 낸 채 잊힐 개연성이 높은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생쑈라도 좀 해야지 무슨 의미있는 조치가 나올 텐데 말입니다. 이러고 보면 삼성은, 어떤 특정 인물 한 사람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왕국임이 분명합니다.

김훤주
※ <경남도민일보> 8월 2일치에 실었던 기사 두 꼭지를 하나로 합하고 또 조금 고쳤습니다.

*관련 글 : 저절로 불난 세탁기를 보는 소비자 시선

*관련 글 : 가만히 있던 세탁기가 갑자기 불이 난다면?

*관련 글 : 사람들은 이런 삼성전자를 어떻게 여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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