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불국사 말고 선암사에도 청운교가 있었네

김훤주 2010. 3. 22.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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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경주 불국사에 청운교가 있는 줄은 알지만 순천 선암사에도 청운교가 있는 줄은 알지 못합니다.

불국사 청운교는 국보 23호의 일부이면서 불국사 전체를 대표할만큼 대단한 반면, 매화 따위 꽃으로 이름난 선암사의 청운교는, 그런 꽃에 견주거나 말거나 더없이 볼품없고 초라합니다.

불국사 홈페이지를 보면 청운교·백운교는 이렇게 설명이 됩니다.

"위로 자하문으로 연결되어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셔진 대웅전으로 통한다. 아래는 청운교로 17계단이며, 위는 백운교로 16계단이다. 청운교 아래는 무지개 모습 홍예문으로 되어 있다. 계단은 부처님 계신 도리천을 뜻하며, 숫자 33은 욕계 제2천인 33천을 상징한다."

청운교/백운교. 불국사 홈페이지.

이런 해설도 있습니다.

"청운교·백운교를 통해 석가가 상주하는 절대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다다를 수 있다.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다리 중간에 아치 터널이 있어 물이 흐르는 다리임을 상징했다. 땅에서 강이나 바다를 건너 하늘에 있는 불국토로 올라감을 보여준다."

선암사 청운교.


선암사 청운교를 보는 순간,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불국사 청운교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불국사 청운교의 화려함과 견줘지면서 참 볼것없고 남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보는 도중에 청운교라고 새겨놓은 빗돌이 왼편으로 살짝 돌아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저는 선암사 청운교가 와락 좋아지고 말았습니다.

보면 아시겠지만, 불국사 청운교는 아주 깔보듯이 하고 있습니다. 권위가 있고 위엄이 서려서 어쩐지 감히 함부로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다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줍니다.

게다가 실제로 여기 청운교와 백운교를 거쳐서 자하문을 지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국보라서 닳을까봐 겁이 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드나들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선암사 청운교는 그런 거치적거림이 없습니다. 아무나 마음대로 지나갈 수 있습니다. 또 누구가 마음대로 지나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이어주고 있노라' 티를 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이름이 알려질까 두려워 빗돌이 절반 가량 외면하고 돌아앉았습니다.

돌이 아니라 콘크리트로 돼 있지만, 그리고 아주 공을 많이 들인 장식도 없지만, 실제로는 끊어진 불국사 청운교보다는 못생겨도 이렇게 이어주는 선암사 청운교가 낫지 않을까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여기에 석가모니 부처님 말씀을 걸치면 더욱 그럴 듯합니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바치는 연등 하나를 뜻합니다.

옛날 어떤 임금이 부처에게 연등을 100개나 바쳤지만 밤 사이에 다 꺼졌으나 난타(難陀)라는 가난한 할멈이 정성으로 바친 연등 하나는 꺼지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답니다.

불국사는 왕립 절간입니다. 드나드는 사람들도 왕족 귀족이 대부분입니다. 청운교 백운교도 그러니까 고귀한 신분이 만든 고귀한 신분을 위한 구조물일 따름입니다. 이들을 두고는 부자백등이라 이를만합니다.

선암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불국사 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 청운교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뒤에 새긴 시주를 한 사람들 이름을 보면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천박한 신분은 아닐지 몰라도, 부귀영화를 엄청나게 누리는 그런 신분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빈자일등이라 할만하지 않습니까.

물론 이렇게 인간 의식으로 이렇게 저렇게 세상 물정을 나눠 보는 것조차 부처의 눈으로 보면 쓸데없는 분별심이고 까닭없는 맺힘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어쨌거나, 이렇게 한 번 머리를 굴려 봄으로써, 선암사 청운교를 하찮게 여기는 마음가짐만큼은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불국사 청운교도 썩 좋지만, 선암사 청운교도 나름 멋지다고 생각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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