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저탄소 녹색 성장? 개 풀 뜯는 소리

김훤주 2009. 11. 1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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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경남도의회 의사당에서 경남도의회 환경연구회 주최로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경남 환경 정책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주최하는 족에서 저를 불러줘서, 영광스럽게도 말석에 가 앉을 수 있었습니다. 주제 발표는 아니고, 발표한 주제에 대해 견해를 말하는 토론이 제 몫이었습니다.

저는 주최하는 이들이 저같은 보도 매체 종사자를 뭣 하러 불렀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래도 이른바 전문가다운 식견을 바라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틀에 박히지 않은 새로운 시각이랄까를 바라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평소 생각이기도 한 것을 그리 많이 포장하지 않고 토론문을 내었습니다.

토론문을 한 번 올려 봅니다. 토론을 7분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여기 적힌 내용을 풍성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주제에 집중해서 군더더기 없이 얘기를 드렸습니다. '저탄소 녹색성장과 돈 중심 가치관', 그리고 '사람 사는 도심을 산림화할 필요'입니다.

덧붙이자면, 제가 토론을 벌인 주제를 발표해 주신 김의경 선생님께 대한 오해가 있었습니다. 토론 과정에서 오해가 풀렸습니다. 김의경 선생 발제는 산림을 산림으로 지키는 데 집중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산림을 산림으로 지키는 데만 신경을 써서는 절대 온난화를 막을 수 없다는 요지로 토론했습니다.

그랬더니 김의경 선생님은, 도심을 산림화할 필요에 적극 동의한다, 그런데 발제를 산림에 집중한 까닭은, 발제 시간이 15분으로 짧아서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어서 그랬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나라 산림이 60%를 웃도는데, 이를 내팽개쳐두는 일은 절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는 취지로 말씀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제일 왼쪽에 제가 있습니다. 아들 말마따나, 제가 봐도 제가 좀 추워보이기는 합니다. 하하. 우리 신문 박일호 기자가 찍어줬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먼저 이렇게 불러 주신 데 대해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1.
제게 보내온 발표문은 '기후변화 대응 저탄소 녹색성장과 경남 산림정책의 방향'이었습니다. 경상대학교 산림자원학과 김의경 교수께서 만드신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보는 눈은 없지만, 내용은 훌륭했습니다. 숲을 여러 모로 잘 가꿔야 하고 숲을 잘 가꾸려면 산림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서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지당하신 말씀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책도 어떻게 보면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깜냥도 안 되는 제가 더하거나 빼거나 할 내용이 부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2.
저는 좀 다른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가치관입니다. 돈으로 일원화돼 있는 우리 사회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이상 저는 저탄소 녹색성장이 잘 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돈이 된다면 몰라도, 돈이 안 된다면 절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탄소 적게 쓰자는 일과 성장을 녹색으로 하자는 일이 사실 그다지 효율이 높은 일은 아니거든요. 효율이 높다는 말은,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말에서 바로 나타나듯이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과 돈에 견줘 수지 타산이 맞을 때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돈 중심 가치관과 저탄소 녹색성장의 어울림은 가당하지 않다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성장을 어떻게 볼 것이냐도 사실 문제입니다. 언젠가 토목업을 하시는 이를 만난 적이 있는데요, 도로를 넓히고 새로 놓고 하는 일이 나쁜 까닭을 제가 좀 말씀드렸습니다. 이를테면 도시 집중을 심화한다, 농촌 황폐화를 촉진한다, 전염병을 옮기는 통로가 된다, 토종이 아닌 외래종 식물 씨앗을 퍼뜨리는 구실도 한다, 로드킬로 짐승들 못 살게 군다, 기후를 더욱 덥게 하거나 차게 하는 노릇도 한다 등등.

제 얘기를 듣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충격이다. 이런 얘기 하는 사람 처음 본다." 그런데 저는 이 이 말씀-나쁜 점을 짚어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처음이라는-이 더 충격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덩달아 있게 마련인데,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점만 보도록 길들여져 있습니다. 제도 교육을 통해서요…….

성장을 왜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성장 맹목주의'쯤이 될 텐데요, 성장이라면 그냥 조건 없이 좋은 그 무엇이라 여깁니다. 성장은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경쟁을 통해 인간성을 상실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성장에는 사람이나 짐승이 흘리지 않아도 좋았을 피와 땀이 스며 있습니다.

이른바 가격경쟁력 때문에 단감이나 귤 생산하는 농민들은 죽어납니다. 경쟁의 톱니바퀴에 끼여서, 산업재해로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거나 다칩니다. 싼값에 노동력이 거래되기 때문에 우리 사회 소비 능력은 갈수록 줄어듭니다. 성장의 결과인 재화는, 골고루 나뉘지 못하고 한 쪽에만 쌓입니다.

게다가, 핵심인데요, 자본의 집적·집중을 위한 '덧없고 부질없는' 무한순환이 아니면, 성장은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문제가 성장이 안 돼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성장은 이제 멈춰도 좋습니다. 핵심은 고르지 못한 데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굶어 죽거나 아파 죽을 지경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는 방책은 성장이 아닙니다. 분배입니다.

돈 말고 다른 무엇을 중심으로 삼는 가치관이 있을 수도 있다, 성장이 전부는 아니다, 이런 것을 제도 교육이 가르칠 수 있지 않는 이상, 저는 저탄소 녹색성장은 불가능한 거짓부렁이다, 라고 여깁니다. 가난하게 사는 즐거움과 보람, 화려해 보이는 성장 뒤에 숨겨진 아픔 상처 좌절 절망 괴로움 고통 쓸쓸함 외로움 따위를 우리 사회가 일러주지 못하고 받아주지 못하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3.
얘기를 좀 좁혀 보겠습니다. 저는 녹색성장은 모르겠습니다. 녹색과 성장이 어울리는 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후 변화 대응' 또는 '저탄소' 얘기를 좀 올리겠습니다. 김의경 선생님 발표 말씀대로 산림을 잘 가꾸면 참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만으로는 모자라지 않느냐,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대응이 안 되지 않느냐고 여쭙고 싶습니다.

사람 사는 도시를 내팽개쳐 놓고서 저탄소 기후변화 대응 따위를 입에 올릴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도시를 숲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방분권과 지방자치가 제대로 돼 있지 않지만 지금도 자치단체장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지방의회가 방향만 제대로 잡아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정책이나 계획이 없어서 녹색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봅니다. 이른바 '환경 생태 선진국' '따라 하기'만 제대로 해도 된다고 저는 여깁니다.(아닐까요?)

간선·지선도로는 물론이고 골목길까지 가로수를 울창하게 심습니다. 콘크리트나 쇠붙이 담장은 다 뜯어냅니다. 나무로 울타리를 칩니다. 하천 바닥도, 콘크리트로 마감된 데는 죄다 걷어냅니다. 물이 있을 때는 물풀이 자라게 하고 물이 없을 때는 풀이 자라게 합니다. 조금만큼이라도 빈터가 나오면 조건 없이 나무나 풀을 심습니다. 나무 심기는 대구에서 제대로 했습니다. 한여름 최고 기온을 1도 이상 떨어뜨렸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같은 생각으로, 흙이나 나무로 집을 짓도록 권장하는 일도 해볼 만하다고 저는 봅니다.

공터 녹화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제대로 하는 것 같습니다. 2006년 항주에 간 적이 있는데요, 고가도로 아래 공터가 있었는데요, 거기 아스팔트 위에 흙을 깔고 풀을 심어놓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창원시도 마산시도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고가도로가 있으면 아래 빈터가 생기게 마련인데, 행정 당국은 여기에다 대고 노랗거나 하얀 페인트로 줄을 죽죽 긋고는 그만입니다. 이렇게 하면 차선 도색 업체 배는 불리겠습니다만. ^.^

나아가 차량 통행을 어렵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환경 생태 선진국에서는  벌써 그렇게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도심지 공영 주차장을 먼저 폐쇄하고 나무와 풀을 심는 것입니다. 녹색 관점에서 보자면 일석이조 일석삼조가 될 것입니다. 불법 주·정차 단속도 아주 엄격하게 합니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대중교통수단이 지금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잘 돼 있어야 합니다. (자가용 자동차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수단을 활용하는 자체가 녹색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무엇 하나를 건드리면 다른 모든 것이 건드려지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것을 으뜸으로 여기면서 동시에 녹색도 으뜸 가치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돈 중심 가치관, 성장맹목주의 따위를 깨끗하게 청산하지는 못하더라도, 그것 말고 다른 가치로움도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있기도 하다는 사실이 시민권을 얻고 나아가 주도권을 가져야 가능할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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