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새우 연구로 학자들 뺨친 초등학교 교사

김훤주 2009. 11. 5.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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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계룡초등학교 선생님 변영호가 여태 조사·연구·발표한 주제는 물고기와 잠자리 긴꼬리투구새우 세 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대중적·학술적으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경우는 바로 긴꼬리투구새우랍니다. 변영호는 2005년 '거제도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 긴꼬리투구새우 생태 및 서식지 조사'를 발표해 제51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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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긴꼬리투구새우를 조사연구한 계기

말씀 드린 세 주제 가운데 물고기와 잠자리는 예전부터 미리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긴꼬리투구새우 조사·연구는 갑작스레 시작됐습니다. 2003년 6월 12일 거제 일운초교 4학년 학생 소우민이 '듣보잡'도 아닌 이상한 생물을 잡아 온 것이 발단이 됐답니다.

변영호 선생님.

당시 어린이 생태 모임 하늘강동아리를 이끌고 있던 변영호도 처음 보는 '물건'이었습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우주 괴물 같았다"고 했습니다.

사진을 찍어 몇 군데 알려 알아보는 동시에 서식지 조사에 들어갔는데 나흘 뒤인 16일 연락이 왔습니다. '긴꼬리투구새우'였습니다.

변영호는 '긴꼬리투구새우'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자료를 뒤졌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없다시피 했거든요.

긴꼬리투구새우에 관한 단행본은 아예 없었고, 교학사에서 1999년 펴낸 <한국의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에 나오기는 하지만 17쪽에 고작 몇 줄 걸쳐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것 말고는 전남 강진군 농업기술센터에서 2003년 펴낸 <농경과 원예>의 '긴꼬리투구새우를 이용한 유기농법'이 전부였습니다.

긴꼬리투구새우에 대한 정부 당국의 기록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 2급 보호종'이고, "한국 남부 지방의 민물 웅덩이, 못자리, 논가장자리에서 자란다"가 전부였습니다.

전문 연구자라 할 대학교수에게도 자료를 청했으나 "긴꼬리투구새우에 대한 생태와 분류 자료를 구하기 힘들며 일본과 외국 논문도 산발적이어서 추천할 자료가 없다"는 답변만 받았답니다.

2. 서식지 특정도 못하면서 보호를 한다고?

만약 이 때 자료가 있었다면 변영호는 조사·연구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황당한 느낌은 들지 않았을 테니까.

변영호 생각은 이랬습니다. "한국 남부 지방 어디? 어떻게 지역을 특정하지 않고 이리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 있을까?" "어떻게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보호한다면서 어디에 사는지 어떤 조건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 등등을 이렇게 팽개쳐 둘 수가 있을까?"

긴꼬리투구새우.


그러니까, 보호종이 어디 사는지 구체적으로 확인돼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이 보호종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인지요?

또 보호하는 방법도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개체'를 보호할 것인지, 아니면 '서식지'를 보호해야 맞을 것인지 등등이 말입니다. 대학·연구 기관 전문가들의 게으름이, 이른바 '돈 되는' 프로젝트 아니면 꼼짝도 않는 수준임을 실증하는 보기입니다.

이렇게 해서 변영호는 2003년부터 3년 동안 조사·연구를 벌였습니다. 허수아비만도 못한 전문연구자들과 견주면 그야말로 돋보입니다. 변영호는 동시에 거제도에 긴꼬리투구새우가 산다는 사실을 대중매체에 알려 6월 26일부터 서울과 지역의 미디어마다 보도가 잇따르게 해 대중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때부터 경상도와 전라도는 물론 충청도와 경기도 강원도까지 '남한 전역'에서 긴꼬리투구새우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봇물 터지듯 나왔습니다. 아마 다들 기억에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를, 굳이 해석하자면, 예전에도 긴꼬리투구새우가 곳곳에 있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다가 변영호의 발견과 보도 이후 관심이 커지면서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정도가 되겠지요.

긴꼬리투구새우는 화석 생물입니다. 독일 3억5000만 년 전 고생대 석탄기 지층에서 화석이 발견됐습니다. 화석에 찍힌 모양이랑 지금 살아 있는 긴꼬리투구새우랑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거의 진화하지 않은 것입니다. 등에 갑각(투구)이 있고 갈라진 꼬리가 한 쌍 있으며 가슴과 배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점이 특징이랍니다.

3. 변영호 조사연구 작업의 의미

논물에 잠겨 있는 긴꼬리투구새우.


변영호의 이번 조사·연구는 긴꼬리투구새우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 작업이었습니다. 대학이나 전문 연구기관에 '서식'하는 전문가들은 마당히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변영호는 아이들과 함께 서식지를 찾아내고 관찰하고 기록했으며 발생과 소멸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까지 확인을 했습니다.

변영호는 먼저 거제도 일대를 뒤져 일운면 소동, 칠천도 곡촌, 연초면 한내 등 스물네 곳 논에서 긴꼬리투구새우를 발견했습니다. 5월 하순 모내기를 위한 써레질을 할 때부터 7월 중순 모내기를 마칠 때까지 물이 많이 있는 논에서 '발생'했다가 8월 접어들면 '산란'을 마치고 '한꺼번에' '사멸'한다는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긴꼬리투구새우가 사는 논의 특징도 밝혔습니다. 물을 대고 써레질을 한 논. 올챙이가 없거나 적은 논. 물벼룩·풍년새우가 많은 논. 물이 흐린 논. 논바닥에 작은 구멍이 흩어져 있는 논. 수면에 때때로 잔물결이 이는 논. 또 대부분은 큰길이나 마을이랑 붙어 있는 문전옥답과 논흙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 논. 도대체, 이리 많은 이 새우들이, 전문연구자들 눈에는 왜 띄지 않았는지요.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도 당연히 조사했습니다. 농약 뿌리기 같은 인간의 간섭과, 먹이 경쟁을 벌이는 올챙이, 천적인 개구리의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보통 농약을 치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답니다. 발생기 5월 산란기 6월에 농약을 치면 이듬해 100% 없어지지만 소멸기 7월을 거쳐 잠복기인 8월 이후 농약을 치면 흙표층이 알을 보호해 이듬해에 볼 수 있었다는 얘깁니다.

천적은 새, 물방개, 개구리, 물고기라고 '종이'에 적혀 있었지만 조사 결과 뚜렷한 변인은 올챙이'뿐'이었답니다. 올챙이는 긴꼬리투구새우와 크기가 비슷해서 성체(成體)는 먹지 못하지만 알은 먹는다는 것입니다. 토양이 미치는 영향도 결과에 보태졌습니다. 인산이나 유기질이 많을수록 많이 산다는 경향성을 찾아낸 것입니다.

이렇게 변영호의 애씀 덕분에 우리나라는 긴꼬리투구새우의 서식 실태와 생활 모습에 대한 기록을 갖게 됐습니다. 발생과 소멸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도 처음 파악됐습니다.(물론 한계도 있어서, 변영호는 긴꼬리투구새우가 소멸할 때는 농약을 치지 않아도 한꺼번에 자취도 없이 싸그리 사라지는데, 그 까닭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4. 서식지 특정도 하고 구체 보호방법도 내놔

변영호의 동맹 세력.


동맹 세력의 토론회.


가장 큰 성과는, 긴꼬리투구새우의 서식지가 남부 지방의 민물 웅덩이, 못자리, 논가장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뚜렷하게 밝힌 데 있습니다. 서식지를 특정(特定)했습니다. 묵정논이나 (흐르지 않고) 고인 물에서는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혔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환경부는 2005년 2월 긴꼬리투구새우 서식지를 경북 경산과 경남 거제도로 못박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환경부의 '못박음'과 달리, 긴꼬리투구새우가 남한 전역에 살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물론 사는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습니다. 논을 메우는 개발 탓이지요.

변영호는 보호 방법에 대해 "대규모 발생이 특성이므로 개체 한 마리가 아니라 서식지 중심으로 보호 정책의 초점을 옮겨 그런 논에 농약을 치지 못하도록 하고 그에 합당한 지원을 정부에서 하는 편이 이치에 맞다"고 짚습니다.

구체적인 보호 방법이 나온 것 또한 변영호가 처음입니다. 연구와 조사를 업으로 삼는 대학이나 연구 기관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는 지경입니다. 정부 당국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러니 정부 당국은, 조사·연구야 제대로 못한다 쳐도 변영호의 이런 말이라도 재빨리 알아듣고 실행하면 좋겠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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