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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유족회 2

검사와 재판장이 치고받고 싸운 사연

'5·16쿠데타 직후의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당시 혁명검찰부부장과 혁명재판소 재판장이 민간인학살 유족회 간부들에 대한 유죄판결 여부를 놓고 재판소 복도에서 치고받고 싸운 일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와 주목된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은 이번 결정문에서 당시 경상남북도와 금창(김해·창원), 동래·창원·경산·밀양 피학살자 장의위원회 사건의 주임검찰관이었던 이OO의 진술을 공개했다. 이OO 전 주임검찰관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피고인들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박창암 혁명검찰부 부장과 심판부 제5부 재판장이 혁명재판소 건물 복도에서 치고받으며 싸웠습니다"라고 진술했다. ※관련 글 : 60년대 진보인사들 명예회복 길 열렸다 이 전 검찰관에 따르면 당시 이택돈 심판..

49년만에 부활된 위령제 취재해주세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7~8월 사이 무려 2000여 명의 마산시민이 군경에 의해 무참히 학살된 사실을 아시나요? 당시 이승만 정권은 전시라는 혼란을 틈타 자신의 영구집권에 방해가 될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마산에서 2000여 명의 민간인을 구산면 원전 앞바다인 '괭이바다'에서 수장, 학살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60년 4·19혁명 직후 마산을 비롯하여 전국 곳곳에서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가 잇따랐으나, 이듬해 5·16쿠데타 세력은 유족회를 강제해산시키고 간부들을 구속시켰으며, 유족들이 어렵게 찾아 안장한 합동묘를 파헤쳐 유해마저 없애버리는 부관참시까지 자행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가족들은 국가권력에 의해 입도 벙긋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진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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