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학살 19

"아버지, 이제야 60년 한을 풀었습니다"

올해 72세 노인의 주름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60년에 걸친 원한을 마침내 풀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결정이 났다는 전화를 받고, 전화통을 붙든 채 울었어요. 나뿐만 아니라 온 식구가 함께 울었지요." 함양군 수동면 도북마을 차용현 씨는 열 두 살 나던 해인 1949년 9월 20일 아버지와 당숙을 한날 한시에 잃었다. 큰아버지도 함께 끌려 갔으나 군인에게 돈을 써서 겨우 살렸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대위 계급장을 단 군인에게 돈을 주면서 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당숙을 함께 풀어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날 큰아버지만 풀려나왔다. 돈을 받은 대위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한 사람만 먼저 풀어줬다"고 했다. 돈이 모자라서 그런가 싶어 다시 집으로 돌아와 돈..

학살 유족 "지리산을 동해에 던지고 싶었다"

1949년 빨치산에 협조했다는 명목으로 국군과 경찰에 의해 무참히 학살됐던 경남 함양군 민간인희생자 86명에 대한 명예회복이 60년만에 이뤄지게 됐다. 알다시피 함양은 1951년 2월 7일에도 유림면과 휴천면에서 인근 산청군 금서면 주민을 포함한 민간인 705명이 무참히 학살된 지역이다. 한반도의 남쪽 내륙지방인 함양에서 왜 이렇게 많은 민간인학살사건이 일어났을까? 함양은 1953년 휴전 이후에도 가장 오랜 전쟁을 치른 곳이었다. 빨치산 토벌이 거의 마무리되는 1954년까지도 함양군은 전쟁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함양군민에게 한국전쟁은 가히 '7년 전쟁'이라 할 만 하다. 하지만 함양 사람들 중에는 '15년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마천애향회가 1994년 펴낸 는 "다른 지역에서는 한..

한국군 민간인학살, 60년만에 진실규명 결정

공교롭게 되었습니다. 지난 12일(월), 이 블로그에서 '이스라엘군 민간인학살, 한국군 학살은?' 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 국제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을 계기로 삼아 60년이 다 된 지금까지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의도로 작성된 글이었습니다. 다행히 약 5만 여 명에 가까운 분들이 글을 읽어주셨고, 또한 적지 않은 분들이 '비교 대상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저의 글 의도는 이스라엘군의 학살이 대단치 않다는 뜻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수십 년의 세월동안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한 채 한맺힌 삶을 살아온 유족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자는 취지였습니다. 또한 과거사 진..

이스라엘군 민간인학살, 한국군 학살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의 한 마을 집에 민간인 110명을 몰아넣은 뒤 포격을 가해 어린이를 포함한 30여 명을 학살했다는 사실이 지난 9일 전 세계 언론에 타전됐다. 유엔은 보고서를 통해 "집안에 갇혀 있던 팔레스타인인의 절반가량은 어린이들이었다"면서 "가자지구 침공이 시작된 이후 가장 심각한 사건 중 하나"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하루 전날인 8일, 한국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48년 발생한 여순사건과 관련, 국군과 경찰이 반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439명을 불법적으로 집단학살했다며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순천지역 희생자는 439명으로 확인됐으나,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거나 사건 이후 멸족된 사례 등을 고려하면 실제 희생자 수는 2000여 명을 상회할 것으..

함양 마천면에도 학살 암매장터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지난해부터 전국의 민간인학살 유해매장 추정지에 대한 유해발굴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암매장 터가 발견됐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의 재조사와 함께 암매장 터에 대한 유해발굴도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지난 9일부터 20일까지 함양군 마천면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취재를 벌인 결과, 마천면 군자리 군자마을과 가흥리 사이에 볼록 솟아 있는 '솔봉'에서 최소 50여 명의 민간인이 국군에 의해 학살된 후 암매장된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사건을 목격했다는 노인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1950년 한국전쟁 개전 초기 함양과 진주가 인민군에 의해 함락되기 직전이던 7월 25일께 국군이 후퇴하면서 자행한 전형적인 불법 민간인학살 사건으..

1951년 '의문의 학살' 베일 벗겨질까

57년 전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에서 벌어진 의문의 집단학살에 대한 진실이 드러날 수 있을까. 최소 500여 명의 민간인이 총살·암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지리산 외공리 학살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유해발굴작업이 시작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는 지난 19일 오후 2시 산청군 시천면 덕산중·고등학교 강당에서 개토제(흙을 파기 전에 올리는 제사)를 열고 본격 유해발굴에 들어갔다. 개토제에 참석한 진실화해위 김동춘 상임위원은 인사말에서 "유해는 땅 속에 묻혀 있는 진실"이라며 "60여년 전 어둡고 외진 지리산 골짜기까지 온 사람들은 누구이며, 왜 그들을 몰고 와서 집단학살했는지, 무엇이 두려워 은밀하게 죽였어야 했는지 등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근 산청군수도 인..

현대사 진실규명 힘빼기 나선 정부

김동춘 교수와 민간인학살 김동춘. 그는 사회학자다. 그는 현재 입법·사법·행정 3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국가기구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차관급 상임위원이기도 하다. 나는 2000년 봄에 그를 처음 만났다. 전라도 구례인가에서 열린 학술심포지엄 자리였다. 학자도 아닌 내가 거기에 참석했던 것은 심포지엄 중 '민간인학살'에 대한 세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게 반 세기 동안 묻혀 있던 민간인학살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제각기 고군분투하던 전국 각지의 활동가와 기자, 학자들이 처음으로 함께했던 자리였던듯 하다. 그동안 각 지역에서 고립분산된 상태로 제기돼온 학살문제를 어떻게 전국화할 것이냐는 논의가 있었고, 전국조직 결성에 대한 제안도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김동춘 위원 "정권 바뀐후 진실규명 위축"

경남 산청군 원리와 외공리 민간인학살사건 희생자의 유해발굴을 위한 개토제(흙을 파기 전에 올리는 제사)가 19일 오후 2시 산청군 시천면 덕산중고등학교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관계자와 유족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개토제 행사에 참석한 진실화해위원회 김동춘 상임위원(전 성공회대 교수)는 '정권이 바뀐 후 진실규명 작업이 위축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는데, 실제로 그렇냐'는 질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놨다. 김동춘 상임위원은 "새 정부 출범 이후 3명의 조사관이 충원되지 않고 있으며, 파견왔던 공무원들이 복귀한 자리도 후임인사를 하지않는 등 인력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내년 예산 확보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을 국회 쯤 (정부의 의도대로) 과거사 관련 기구들..

58년 전 억울한 학살 규명될까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학살 희생자에 대한 국가기관의 유해발굴작업이 경남에서는 처음으로 산청에서 시작된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진실화해위)는 오는 주말부터 경남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산 214번지 일대와 원리 덕산중고등학교 뒷편 유해매장지에 대한 발굴작업을 벌이기로 하고, 19일 오후 2시 산청군 시천면 덕산중고등학교 강당에서 개토제(흙을 파기 전에 올리는 제사)를 연다고 밝혔다. (그 날 나도 가볼 생각이다.) 진실화해위는 경남 산청 외에도 작년부터 해온 경산코발트광산과 청원 분터골 및 지경골에 대한 발굴을 계속하며, 전남 진도군 갈매기섬과 전남 순천시 매곡동에 대한 발굴작업도 곧 착수할 예정이다. 경남의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은 지난 2000년산청 외공리 일부와 마산 진전면 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