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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수 2

송미영 이야기(8)착하게만 살진 않았다

지금까지 미영 씨의 희생적인 삶이 주로 소개됐지만, 그녀가 오로지 성실하고 착하게만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또한 자신의 삶도 결코 평탄하진 않았지만, 아들(13·현재 중학교 1학년)에게도 평생 씼을 수 없는 고통을 줬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조순자 선생과 그렇게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랜 병석에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미영 씨의 나이 스무 살 때였다. 장례식에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빈소에 줄을 이었다. 어느새 어머니는 '앵벌이 장애인들의 대모'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은 슬펐지만, 한편으로는 미영 씨에게도 자유가 주어졌다. 비로소 어머니의 병수발에서 벗어난 것이다. 게다가 몇 개월 후 아버지가 재혼을 했다. 덕분에 양 손목이 없는 아버지와 장애인들 뒤치다꺼리에서도 해방될 ..

송미영 이야기(3)팔도 없고 눈도 없이 살아남는 법

미영 씨가 혹독한 시집살이와 노동으로 거의 탈진할 때쯤이었다. 불쑥 친정 아버지가 구미의 시댁까지 찾아왔다. 어젯밤 꿈에 딸이 나왔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딸의 앙상한 모습을 확인한 아버지는 사돈 양반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딸 가진 죄인이 딸 데리러 왔습니다." 그 길로 딸의 등을 떠밀어 마산으로 데려오고 말았다. 애초 자신의 아버지를 모시는데 부정적이었던 남편 도연 씨도 곧 뒤따라왔다. 아버지 송병수(65) 씨는 5살 때, 아니 정확하게는 만 4세 때 폭발물 사고로 양 손목과 두 눈을 잃은 중증 장애인이다. 송병수 씨를 만나러 가는 동안 뭔가 음울하고 어두운 기운이 그를 감싸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는 호탕하고 밝았다.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넘쳤다.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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