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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연맹 29

꽃다발 들고 황점순 할머니 찾아뵙는 날

모처럼 반가운 소식 하나 알려드립니다. 지난달 이 지면을 통해 보도연맹 민간인학살 유족 황점순·이귀순 할머니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요.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누명을 벗겨달라며 제기한 형사 재심청구 소송이 검찰의 재항고로 인해 7년째 대법원에 계류 중이며, 망백(望百)이 넘은 할머니들이 끝내 판결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탄식이었죠. 그 후 창원유족회 노치수 회장도 대법원에 호소문을 냈더군요. “특히 4명의 피고인 중 제일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는 ‘망 이용순의 처 황점순 할머니’는 돌볼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노파로 지금 한 요양원에서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여 있는데, 남편의 형사 재심 재판이라도 보고 세상을 떠나실 수 있도록 선처해주시길 호소합니다.” 이런 글이 대법관들에게 전해..

1950년생 황정둘의 경우

1950년생 황정둘. 우리 나이로 70세. 그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죽었다. 20세였던 엄마 이귀순은 지금 90이 되었다. 열일곱 살에 마산 진전면 곡안리로 시집와 정둘을 임신했을 때 남편 황치영을 잃었다. 남편 나이는 22세였다.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었다. 열서너 마지기 농사를 지으면서도 멀리 고성의 저수지 조성공사 현장까지 막노동을 하러 다녔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터졌고 7월초 진전지서에서 부른다며 집을 나선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내 지서 갔다가 저녁 때 (실안골에 풀어놓은) 소 찾아 오꾸마.” 이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가 지서에 불려간 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된 맹원이기 때문이었다. 흔히 보련원이라 불렀다. 이승만 정권은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

부산, 만만해도 녹록잖고 버거워도 살아지는

탐방 루트 임시 수도 기념관 →0.7km 동아대학교 박물관 →2.8km →중앙공원 3.8km →남포동·광복동일대 0.5km →자갈치 시장 1.0km → 보수동 책방골목 0.4km →부산근대역사관 1.1km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40계단문화관) 임시수도기념관-이승만 대통령 임시청사 부산이 지금은 국제적인 영화제가 열리고 외국인 관광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화려한 국제도시로 탈바꿈했지만 6.25전쟁 당시는 전국에서 밀려든 피란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1950년 8월 18일부터 9.28 서울 수복 이후 10월 27일까지, 그리고 1.4후퇴로 서울을 내어준 뒤부터 휴전협정이 성립될 때까지 부산은 대한민국의 임시 수도였답니다. 임시수도기념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3호) 건물은 일제강점기 경남 진주에 ..

가본 곳 2014.06.02

민간인학살 피해배상 판결문 전문을 보니...

울산 보도연맹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은 1심 승소, 2심 패소, 대법원 승소로 결론이 났습니다. 지난 6월 30일 대법원 1부의 판결이었지만, 판결문 전문이 나온 것은 최근이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한국 현대사의 미해결 과제 중 하나인 민간인학살 사건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덕분에 울산 이외지역에서도 유사 사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거 관련기사 : 민간인학살 상반된 판결 왜 나왔나? ☞과거 관련기사 : 민간인학살 국가상대 손배소 줄 잇는다 ☞과거 관련기사 : 국가가 입 막아놓고 이제 와서 시효소멸? 이번 소송에서 가장 핵심은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를 언제로 볼 것이냐는 것이었는데, 이번 대법원 재판부..

그 자리에 진보 노동운동가는 없었다

'한국노동운동의 선구자 고(故) 소담(昭潭) 노현섭 선생 추모회'라는 긴 제목의 모임이 2일 오후 6시 마산M호텔에서 열렸다. 노현섭(1921~1991) 선생이 타계한 지 20년, 누명을 쓰고 투옥된 지 50년만에 처음 열린 지역사회 차원의 추모행사였다. 묻혀진 노동운동의 선구자 추모행사 참석자들의 면면을 기록삼아 적어 보면 이렇다. 김재윤 전 경남대 교수, 이순항 전 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 홍중조 전 경남도민일보 논설실장, 황창규 전 항운노조 위원장, 김명호 경남항운노조 위원장과 간부들, 최광주 경상남도 새마을회 회장, 백한기 3·15의거기념사업회장, 김종배 전 3·15의거기념사업회장, 조민규 합포문화동인회 이사장, 김종대 창원시의회 의원, 허진수 전 경남도의원, 김영만 전 열린사회희망연대 대표, 권광..

열 일곱 학생까지 학살, 의혹이 사실로…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이 중·고생까지 보도연맹에 가입시켜 학살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저는 2001년 이같은 의혹을 를 통해 제기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국가기관으로부터 공식 확인된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 위원장 이영조)가 최근 유족들에게 통보한 '경남 마산·창원·진해 국민보도연맹사건 진실규명 결정서'에서 밝혀졌습니다. ☞관련 글 : 집단학살 진실규명 결정을 보는 특별한 감회 진실위 결정서에 따르면 1950년 7월 초순경 마산중학교 4학년생이던 당시 창원군 내서읍 감천리 송규섭(17·호적상으로는 1934년생) 군이 학교 교문 앞에서 해군방첩대 요원에게 연행되었으며, 이후 행방불명된 사실과 참고인들의 진술로 보아 보도연맹 사건..

집단학살 진실규명 결정을 보는 특별한 감회

마산형무소 재소자 학살에 이어 마산·창원·진해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의 진실이 마침내 밝혀졌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 위원장 이영조)가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진실위의 내부적인 결정은 지난달에 이루어졌습니다만, 관련 법률에 따라 국회 보고를 거친 후 공개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오늘에야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 또한 진실위는 아직 공식발표하지 않았지만, 확인된 희생자 유족들에게 전달된 '진실규명 결정서'를 제가 입수해 보도함으로써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적지 않은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이 있었지만, 특히 저는 이 사건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1961년 5·16쿠테타 세력이 진상규명운동에 나선 유족회 간부들을 ..

1960년 동아일보의 충격적인 '학살'보도

충격적인 기사 하나를 소개한다. 동아일보 1960년 5월 22일자 3면에 보도된 기사다. 제목은 '남녀 모두 옷 벗겨서 살해'라는 주제목 옆에 '수십 명씩 한꺼번에 묶어 수장 떠오르면 또 총질'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명패는 '통영 양민학살 사건의 상보'이며, 이 기사를 보도한 기자는 '충무시에서 김영호 부산분실 기자 21일발'로 되어 있다. 지역의 뉴스를 사회면인 3면에 두 번째 머릿기사로 올린 것도 요즘엔 보기 힘든 일이다. 이 기사는 얼마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마산 위령제 때 쓸 자료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구유족회 이광달 회장이 보관해오다 제공한 자료를 검토하던 중 발견한 것이다. 이는 동아일보 PDF를 통해서도 재차 확인한 것이다. 다음은 당시 동아일보의 기사 전문이다. 한자는 한글로 고쳤..

49년전 피학살유족회 결의사항을 보니…

지난 한 주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두 번의 강의를 했고, 두 건의 사내 행사(블로그 강좌, 지면평가위 워크숍)를 제가 속한 부서 주관으로 치러냈으며, 금요일(16일)엔 1960년 이후 49년만에 부활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마산지역 합동위령제' 행사를 도왔습니다. 위령제 준비과정에서 제가 맡은 것은 행사 안내 팸플릿과 마산 민간인학살 자료집을 편집, 발간하는 일이었습니다. 팸플릿은 24페이지, 자료집은 145페이지 분량의 소책자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책(冊)을 만드는 일이라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마산유족회 발행, 김주완 편저, 비매품)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자료집은 '한국전쟁 전후 마산지역 민간인학살에 대한 유족과 시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오빠 영정 안고 나온 81세 할머니의 눈물

지난 16일(금) 오후 1시30분부터 4시까지 마산종합운동장 올림픽기념관에서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독재정권에 의해 무참히 학살된 2000여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합동위령제가 열렸습니다. 학살된지 59년만에 열린 위령제였습니다. 1960년 4·19혁명 직후 첫 위령제가 열렸으나, 이듬해 5·16쿠데타로 인해 강제로 중단된 지 49년만에 열린 제2차 위령제입니다. 이날 위령제에는 당시 23살의 나이로 학살된 오빠가 학창시절에 찍은 영정 사진을 들고 나온 할머니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임홍련(81) 할머니는 "철도 회사에 다니던 오빠가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영문도 모른채 끌려 나가 마산 앞바다에서 학살, 수장당했다"며 울먹였습니다. 오빠의 이름은 '임홍규'라고 했습니다. 임 할머니는 "나보다 오빠가 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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