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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26

70년대 병영 학교와 미네르바 구속

1. ‘미네르바’가 10일 구속됐습니다. 구속 사유를 보니 ‘인터넷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돼 있습니다. 70년대 80년대식으로 달리 말하자면 ‘유언비어(流言蜚語) 유포’를 했다는 것입니다. 역사에서 지배집단은 스스로가 허약하다고 생각할 때 남의 ‘입’을 단속합니다. 박정희 유신 정권이 대표적입니다. 강고한(또는 그리 보이는) 무력으로 통치했지만, 사람들 수군거리는 몇 마디에도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고 여겼다는 얘기입니다. 자신 있는 정권은 그리 하지 않습니다.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학생들 ‘데모’를 심각하게 탄압한 보기가 없는데, 이는 그런 조그만 움직임조차도 정권을 위협하는 단초가 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런 허약한 정권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와 같은 집단뿐만 아니라 개..

10월 유신에 얽힌 마지막 기억

유신은, 60년대에 태어난 우리에게는 선험(先驗)이었습니다. 경험 이전에 주어진 무슨 당위 같은 것이었습니다. 국민학교 때는 동요 산토끼 가락에 “시월의 유신은 김유신과 같아서~~” 무슨 이런 가사를 붙여 부르곤 했습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 많이 불렀고요, 무슨 투표를 할 때마다 제가 살던 경남 창녕군 창녕읍 시골마을까지 어떤 긴장이 느껴지는 분위기였습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출 같은 것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어른들이 목소리 낮춰 수군대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큰형은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10월 유신 헌법을 제정해 영구 집권을 하려 했을 때 대학 전자공학과 3학년이었고 79년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대학원에 다니면서 대학에 강의도 나갔습니다. 큰형과 아버지는 “이런 이야..

10.26만 되면 생각나는 사람

1. 1979년 10월 26일의 일상 1979년이면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그 해 10월 26일도 저는 별 일 없이 지냈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체육을 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집은 동아일보를 보고 있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다음날 저녁 신문에 ‘박 대통령 有故’라고, 주먹만하게 활자가 찍혀 나왔습니다. 아시는 대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알에 맞아서 경호실장 차지철과 함께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안가(安家)에서 술을 마시다 처참하게 숨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권력이란 좋은 게 못 돼.’ 생각했고, 한 달 남짓 뒤에 미국 잡지 타임인가에 ‘General Chun Takes Power.’ 기사가 실렸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전 장군 권력을 잡다, 쯤이 되겠는데요, 아..

김재규가 실패한 까닭?

10월 9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주도라는 데에 갔습니다. 제주도에는 제가 아는 몇몇이 살고 있습니다. 마산 창원 일대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이런저런 상처를 입고 귀환한 이들이지요. 저보다 나이가 두세 살 적기는 하지만 가까운 벗처럼 지냈던 이들입니다. 이런 가운데 한 사람이 문용포입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이튿날 아침에 문용포를 만났습니다. 곶자왈 작은학교라고 적혀 있는 자동차를 몰고 왔습니다. 도들오름에 올랐습니다. 도들오름은 도두항 가까이에 있습니다. 바닷가에 돋아 있다고 해서 도들오름이고 여기서 도두항이 왔다고 말해 줬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곶자왈이 어디요?” 문용포는, “하하. 곶자왈이 꼭 지명 같지요? 그런데 땅이름이 아니고 제주도 특수한 화산 지형 가운데 하나지요.” 화산이 터져 생긴 바위에..

경주에서 발견한 박정희 송덕비

저도 대학 땐 적잖이 데모도 해봤지만, 한총련과 그 이전의 전대협이 내놓는 유인물이나 대자보에서 유난히 거부감을 느꼈던 게 있습니다. '000 의장님께서 연행되셨습니다'는 따위의 어처구니 없는 존대어 때문이었습니다. 대외적으로 발표되는 성명서 같은 데서 '~님께서 ~되셨습니다'는 식의 표현을 쓰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더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수 국민이 대통령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게 상식이고, 전대협이나 한총련 의장 또한 그 조직을 구성하는 학생 대중의 대표 심부름꾼일 뿐 대중보다 높은 사람은 아닙니다. 저는 한총련이나 전대협이 그런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스스로 북한 추종주의를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위원장께서 교시하시었습니다' 따위의 표현을 쓰기 때문이..

인혁당 재건위, 4월 9일은 암흑의 날이었습니다

4월 9일은 총선투표일만이 아닙니다. 그날은 33년 전 죄없는 한국의 청·장년 남자 8명이 박정희 독재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다는 이유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라는 누명을 쓰고 '사법살인'을 당했던 날입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중앙정보부를 통해 사건을 조작한 후 75년 4월 9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8명을 하루도 지나지 않은 1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사형시켜버렸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국제법학자회의는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의 날로 선포했고, 사건 이후 32년이 지난 작년(2007년) 1월 23일에야 대법원의 재심에서 무죄로 번복되었습니다.33년 전 사법살인의 최고책임자였던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한나라당 정치인이 되어 있고, 당시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할 때 참여한 판사였던 이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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