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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안리 2

차별당해도 국적 못 버리는 재일동포 2세

일제 강점기 건너간 재일동포들은 인생사나 가족사에 굴곡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강제노역 등 일제에게 끌려간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해방 이후 남북 대립이 심해지면서 겪게 된 어려움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본인들의 차별과 멸시는 지금껏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적을 바꿔 일본으로 귀화만 해도 겪지 않아도 되는 어려움을 온몸으로 감당하는 재일동포 2세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4월 21일 어머니 아버지의 고향이 있는 마산으로 왔습니다. 이상재(62·일본 교토시)씨 일행입니다. 남자 셋 여자 넷 모두 일곱 사람이었습니다. 앞서 이씨는 경남도민일보가 만든 사회적 기업인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에 자기들 고향 탐방을 기획하고 안내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해딴에는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이들과 의논해 창원시 ..

11년만에 밝혀진 미군의 곡안리 학살

어제(14일)는 참 기분좋은 날이었다. 기자로서 정말 뿌듯한 날이기도 했다. 1999년 10월 4일 처음으로 '곡안리 재실(齋室)에서 일어난 민간인학살 사건'을 세상에 알린 후, 약 11년만에 한국정부 차원의 공식 진실규명 결정이 난 사실을 다시 우리 신문지면으로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마산 곡안리 학살 '진실' 확인 : 경남도민일보) 최초 보도에서 마무리까지 11년이란 세월이 걸리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 신문이 둘 다 단독보도를 하게 된 것이다. 당시 나는 1999년 5월 11일 창간된 경남도민일보의 창간기획으로 지역현대사를 발굴해 보도하는 '지역사 다시읽기'라는 기획시리즈 기사를 20회째 연재 중이었다. 그 해 여름부터는 1950년 마산지역에서 발생한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을 내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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