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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8

3.15의거 기념관에 웬 박정희와 박근혜?

서울에서 언론계 선배 세 분이 마산에 왔습니다. 여기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추모제에 참석하는 일정이었습니다. 한나절 동안 마산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어딜까 고민하다 첫 행선지로 3.15의거 국립묘지를 택했습니다. 분향대에서 묵념을 하고 김주열 열사를 비롯한 희생자들의 묘를 둘러봤습니다. 모두들 잘 왔다고 칭찬해주었습니다. 참배를 마치고 기념관에 들렀습니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와 이에 항의하는 마산시민, 그리고 3월 15일 1차 항쟁과 경찰 발포 및 학살,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에 떠오른 김주열의 참혹한 시신, 분노한 시민의 2차 항쟁, 4.19혁명으로 이어지기까지 과정 등을 잘 관람했습니다. 또한 대개 이런 기념관의 전시물이 시위대의 희생과 무용(..

잊지 말아야 할 악질 경찰 2명 공개합니다

두 악질 경찰과 두 독립운동가 4·19혁명 55주년이다. 올해는 해방 70주년이기도 하다. 일제 때 ‘아라이 겐기치(新井源吉)’라는 아주 악질 헌병보조원이 있었다. 부산헌병대에서 신상묵(신기남 전 국회의원의 부친)과 함께 활동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다 악랄한 고문을 자행하기로 유명했다. 다음은 해방직후 반민특위 조사기록 중 한 대목이다. “곤봉, 죽봉, 죽검 등으로 난타하고 2, 3일간 굶기거나 잠을 재우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화로를 머리 위에 들고 있게 하고, 두레박줄에 묶어 깊은 우물 속에 담구거나 이른 아침에 방화용 수조의 꽁꽁 언 물을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깬 후 결박한 채로 얼음물에 앉히고는 머리부터 빙수를 내리붓고는 거꾸로 매달아 전신을 얼음굴에 처박곤 했습니다. 이로써 실신하면 부채질이..

4.19 원흉 최남규는 일본경찰 출신이었다

대개 3.15의거나 4.19혁명 등 시민항쟁에서 시위대에 총질을 하거나 고문을 가한 악질 경찰관들의 전력을 찾아보면 일제 강점기 때 일본 경찰 출신들이 많습니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유기한 악질 경찰 박종표도 그런 케이스였죠. 그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 이미 포스팅했으니 참고하시고... ☞친일헌병 박종표는 김주열 살해한 원흉이었다 오늘 소개할 사람은 당시 경남경찰국장으로 3.15부정선거를 지휘한 주범이자, 3.15 마산의거 당시 시민들을 살해하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최남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15와 4.19로 이어지는 혁명 과정에서 최남규의 지휘를 받은 경남 경찰이 어떤 짓을 벌였는지 한 번 보시죠. 1960년 당시는 경찰력으로 정권을 유지하던 시절이었던 만큼 3·15 이후 부산지검 한옥신 부장..

민주주의전당, 마산에는 개 발에 닭 알

1. 마산은 민주주의와 반독재의 고장인가 민주주의전당이 있습니다. 2001년 6월 28일 국회를 통과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건립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과정에서 광주에 짓겠다고 공약했고요, 박근혜 현 대통령은 2012년 11월 28일 마산에 짓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마산에서는(행정통합이 됐으니까 이제는 창원이라 해야 맞겠네요.) 그동안 민간 차원 시민 사회에서 민주주의전당을 마산으로 끌어오자는 논의와 운동을 벌여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어쩌면 그 성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제는 민주주의전당을 마산에 두자는 얘기를 더 이상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산이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적 사건인 3·15의거와 10·18부마민주..

부정선거·부정축재, 뿌리를 추적해보니…

지금으로부터 50년전, 이땅의 모든 민중이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에 신음하고 있을 때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뭘 하고 있었나. 또 3·15의거 당시 모든 마산시민이 궐기했을 때 소위 지역유지와 지식인, 기업인들은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 그들 지도층의 당시 행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왜냐면 5·16군사쿠데타 이후 재빨리 지역 기득권을 되찾은 그들이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기록들을 철저히 은폐해 왔기 때문이다. 어쩌다 그런 부분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구체적으로 이름은 거론하지 않고 은근슬쩍 변죽만 울리다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광석씨(언론인·시인)가 쓴 '3·15정신과 마산문학'이라는 글은 김팔봉씨가 1960년 5월 를 통해 발표한 '부정선거와 예술인의 지성'이라는 글을 인용하면서 은근히 ..

'누나의 3월'에 나온 용공조작, 사실은 이랬다

어제(18일) 밤 10시 40분 MBC를 통해 4·19혁명 50주년 특집극 '누나의 3월'이 전국에 방송되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방송 직후 다음과 네이버 등 포털에서 실시간 인기검색어로 '누나의 3월'이 올라오는 등 시청자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준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 하고, 우선 드라마에 나온 내용 중 시위학생과 시민을 용공으로 몰았던 당시 이승만 정권과 경찰의 행태를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다시 한 번 정리해볼까 한다. 드라마에서는 '학생들의 호주머니에서 인민공화국 만세라고 쓴 비라가 나왔다'는 말이 잠깐 지나가듯이 나오는데, 자칫하면 실제 그런 비라가 나왔던 걸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 전말을 알려드릴 필요도 있겠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가상인물인 누..

1960년 4·19혁명을 부른 부정선거의 실상

"세계 역사상 대통령선거에 소송이 제기된 적이 있어? 법은 나중이니 우선 당선부터 시켜 놔야 돼. 콩밥을 먹어도 내가 먹고 징역을 살아도 내가 산다. 국가 대업을 위해 지시하는 것이니 군수와 서장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 뒷골목 깡패 보스의 말이 아니다. 일국의 내무부장관이라는 최인규가 3·15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전국 각 시·도 경찰국장과 사찰과장·경찰서장(165명), 군수(139명), 시장(25명), 구청장(14명) 등을 불러 모아놓고 한 말이다. 3·15의거와 4·19혁명 직후인 7월 8일 대법원에서 열린 최인규의 재판 진술내용을 보자. 재판장(정영조)=부정선거 방법을 지시하면서, 투표함을 바꿔쳐라. 그것이 안되면 불을 질러라. 그것도 안되면 기관총으로 드드륵 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면 된다..

고은 시집 '만인보'에 역사적 오류가 있다

요즘 마산은 흔히 3·15의거와 4·19혁명이라 부르는 1960년 3·4월혁명 49주년 기념행사가 한창입니다. 어제(11일)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앞바다에서 최루탄이 눈에 박힌 모습으로 떠오른 날이었습니다. 이 날을 기념해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는 오전에 시신인양지에서 열사의 고향이자 모교인 남원 금지중학교 교사와 학생, 그리고 열사가 입학식도 치르지 못하고 희생된 마산상고(현 용마고)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49주기 추모식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김주열 열사에 대한 학술토론회를 열었는데요. 여기서 얼마전 정운현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과 제가 번갈아 포스팅했던 친일헌병보 출신으로 대한민국 경찰이 되어 김주열 열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박종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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