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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섬

오동동 아케이드에서 70년대의 흔적을 담다 1970년 마산 회원천을 복개해 그 위에 건축한 오동동 아케이드(자유시장)가 40년만에 헐린다는 이야기는 앞서 몇 차례 포스팅한 바 있다. ☞마지막 남은 70년대 술집촌을 찾아서 ☞2010년에 마지막으로 보는 70년대 풍경 ☞마산 오동동 아케이드를 아시나요? ☞37년만에 사라지는 '오동동 아케이드'(이승환 기자) ☞정동재 마산자유시장번영회장이 전하는 40년사(이동욱 기자) 오동동 아케이드는 마산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 노동자들이 5만여 명에 이르자, 이들 소비층을 흡수하기 위해 만든, 당시로선 꽤 현대적인 시장이었고, 그 주변은 각종 술집으로 넘쳐났다. 40년이 지나 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도 간판에는 '새시장'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붙어 있다. 지난 6월 12일 철거되기 전 마지막 모습을 남겨두기 위해 .. 더보기
마산 오동동 아케이드를 아시나요? 이제는 영원히 사라지는 70·80 청춘남녀 해방구 70·80년대 마산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함섬의 노동자 수가 5만여 명에 달할 때, 이들의 소비문화를 흡수한 곳이 있었다. 바로 마산 오동동이었고, 그 중심에 오동동 아케이드(자유시장)가 있었다. 1967년 한일합섬이 마산에 둥지를 틀었고, 1970년 수출자유지역(현 자유무역지역)이 들어서자 갑자기 불어난 이곳 노동자들의 소비를 감당할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1970년 회원천을 덮어 그 위에 세운 건물이 바로 오동동 아케이드다. 공식적인 시장이름은 마산자유시장이지만, 마산사람들은 모두들 오동동 아케이드라고 부른다. 당시만 해도 꽤 현대식 시장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기존의 재래시장과 구분하여 현대식 이름으로 느껴지는 아케이드로 불리웠지 않나 싶기도 하다. 어쨌.. 더보기
마산 한일합섬 터엔 이런 기념물조차 없다 1. 2만명 넘었던 한일합섬은 자취도 없지만 한일합성섬유주식회사는 한 때 마산을 대표하는 기업이었습니다. 지금도 어쩌면 마산과 한일합섬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한일합섬의 쇠락이 마산의 쇠락을 결정하는 그런 구실까지 했다는 측면에서요. 한일합섬이 망하게 됐을 때 지역에서는 한일합섬을 살리자는 운동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일합섬 자본은 그런 가운데서도 공장터를 팔아먹고 떠날 궁리만 했습니다. 김인규 당시 마산시장한테 뇌물을 썼습니다. 5000만원을 받았다고 사실로 인정돼 김 시장은 감옥살이를 톡톡하게 했습니다. 2001년 3월 13일 대법원에서 징역 5년 추징금 5000만원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공장터의 용도변경은 당연히 자본한테 유리하게 했습니다. 1998년, 공장용지는 자본에게 아무 부담.. 더보기
마산 한일합섬 터에 섬유박물관이 왜 없지 2009년 12월 16일 저녁 경남 마산시 양덕동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에서 서익진 경남대 교수 초청 강연 '마산, 새로운 길을 찾다'가 있었습니다. 이날 저는 늦게 참여한 데다 무엇이 피곤했는지 꾸벅꾸벅 졸기까지 해서 제대로 내용을 챙기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 정신으로 들은 부분만 해도 생각할 거리가 있는 것 같아, 늦었지만 몇 자 적어 올립니다. 제 일터가 있는 마산이 제대로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는 데 더해, 더 많이 더 깊이 생각하는 서익진 교수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던 까닭도 있습니다. 서 교수는 자기가 쓴 책 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 현재의 창원 중심부까지 편입시켰던 마산은 명실상부 전국 7대 도시의 명성을 얻었다. …… 마산은 1980년대 말까지 국가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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